"협력업체 중국 업체로 바꿔라" 대놓고 요구 ...전기차 배터리 삼성SDI·LG화학도 따돌림

베이징현대 3공장 전경.<사진=현대기아차>

[위클리오늘=염지은·김성현 기자] "현재로선 마땅히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딜레마다.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데 끝이 안 보인다."(현대·기아차 관계자)

중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로 자동차 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사드를 핑계로 중국 시장내 한국 자동차 업체들을 밀어내려 하고 있어 사드 사태 진정 후에도 한국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 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중국 현대차 실적 ‘반토막’

현대·기아차의 상반기 중국내 판매 대수는 사드 배치 이후 반한 감정이 확산되면서 반토막 났다. 43만947대로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52.3%나 급감했다.  

상반기 순이익은 2조319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4.3%나 감소했다. 2분기 당기순이익은 9136억원으로 2010년 IFRS(국제회계기준)를 도입한 이후 처음으로 당기순이익이 1조원 이하로 내려갔다.

지난해 6위였던 중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 순위도 15위까지 밀려났다.

특히 현대차 부품 협력업체들의 피해가 크다.

현대차의 중국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의 자금을 담당하고 있는 베이징기차공업투자유한공사(이하 베이징기차)가 협력업체에 납품대금을 제때 지불하지 않으면서 협력사가 납품을 거부, 현대차 공장 4곳이 가동 중단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 야심 드러내는 중국…‘사드’ 핑계로 한국자동차 밀어내기

현대차와 베이징기차의 갈등은 베이징기차가 자동차 생산을 담당하는 현대차 측에 단가 인하를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베이징기차가 약 25%의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한 것을 현대차가 받아들이지 않자 납품 대금 지불이 지연된 것이다. 납품 단가가 싼 중국 협력업체들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 베이징기차의 요구다.

협력사들의 공장 가동 중단 반복은 지난 9월 14일 베이징현대가 부품 협력사들에 그동안 밀린 대금을 조건없이 지급하며 일단락 됐다.

베이징기차의 납품단가 인하 요구 배경은 사드를 핑계로 향후 현대차와 협상 주도권을 확보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도 지배적 위상을 차지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베이징기차는 2002년 현대차와 합자회사 설립 당시에는 자체 승용차 생산 능력이 없었으나 지난해 141만대의 자체 브랜드 승용차를 판매하며 북경현대(110만 대)의 판매량을 넘어섰다.

중국 관영 언론인 글로벌타임스는 “현대차의 중국 파트너인 베이징기차가 합자관계를 끝내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다”며 베이징기차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거들고 나서기도 했다.

현대·기아차를 따라 현지에 진출한 한국 부품업체들도 버티지 못하고 철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145개 한국 자동차 부품사가 289개 중국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중 120여개 부품사가 현대·기아차와 함께 중국에 동반 진출했다.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계에 대한 중국의 견제도 노골적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한국 배터리 기업을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9월 1일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184개사 2538개 배터리 모델을 보조금 지급 대상으로 선정했지만, 삼성SDI·LG화학 등 한국산 배터리 탑재 차량은 모두 빠졌다.

SK이노베이션은 베이징 배터리 조립공장 가동을 중단한 상황이다.

국내 기업의 중국 전기차 배터리 인증도 답보상태에 빠졌다. 삼성SDI와 LG화학은 지난해 6월 중국 정부의 4차 인증에서 탈락했다. 현재 5차 배터리 기준 인증을 준비 중이지만 중국 정부가 사드 여파를 핑계로 한국 배터리 산업을  견제하면서 인증 획득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서류는 다 준비해놓고 있지만 인증 공고가 정기적으로 예정돼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언제 인증이 다시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4월 2020년까지 1000억 위안 규모의 자동차 부품사 육성, 2025년까지 로컬 자동차와 부품회사를 글로벌 TOP 10에 진입 등의 목표를 제시한 자동차 중장기 청사진을 내놓으며 세계 자동차 시장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 정부 대책 ‘절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9월 초 화교 출신의 '중국통' 담도굉 부사장을 베이징현대 총경리에 임명하는등 중국 시장 정상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 6월 100여명 규모의 '중국 시장 경쟁력 강화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한데 이어 8월에는 중국 상품전략과 연구개발 업무를 통합한 '중국제품개발본부'를 신설했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진 것은 없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빠른 의사 결정을 위해 조직 개편도 해보고 여러 가지 것들을 해보고 있지만 국가간 벌어지는 일이다 보니 직접적인 해결책은 아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또 미국 판매까지 감소하며 재고가 쌓여 감산에 들어갔다. 상반기 미국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7.4% 줄었으며 8월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4.6%나 감소했다. 5월 이후 4개월 연속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중이다.

중국발 리스크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숙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강남 삼성동의 신사옥(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립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컨소시엄을 구성해 2014년에 한국전력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사들였다. 2021년까지 2조5721억원의 공사비를 더 추가해 신사옥을 세울 예정으로 매년 2조5000억원이 넘는 순수 투자비용이 투입돼야 한다. 

하지만 사드 여파에 따른 판매 부진과 통상임금 인건비 부담 등으로 10조원이 넘는 자금 조달에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한편, 정부가 산업통상자원부를 주축으로 자동차 업계 간담회, 한중통상점검 TF 등을 연속 개최하며 사드 피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기업들의 피해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특히 정부는 대기업의 경우 아직 자금 여력이 있다고 판단, 이렇다할 지원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중국 진출 자동차 부품 협력업체들에 대한 지원도 현대·기아차 몫이었다. 현대·기아차는 이달 중국 동반 진출 협력업체들의 경영애로 완화를 위해 5~6년에 걸쳐 분할지급하고 있는 부품업체의 금형설비 투자비 2500억원 규모를 일괄 선지급하는 상생협력방안을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동차항공과 관계자는 “현대·기아차 같은 완성차에 대한 지원은 쉽지 않다. 현대기아차도 협력업체들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정부의 절실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각도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데 빠른 대책이 안 나와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위클리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