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딸 서연양 사망 미스터리 '그것이알고싶다'...공소시효, 스모킹건 난제

[위클리오늘=설현수 기자] 1996년 1월 6일, 가수 김광석은 서른두살에 세상을 떠났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경찰의 결론이었다. 숨진 김광석을 처음, 유일하게 발견한 건 그의 아내 서해순(53)씨였다. 

경찰이 도착했을 당시 현장은 원형을 복원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상태였다. 경찰은 김광석 목에 난 전기줄 상흔 이외에는 사인을 규명할 별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경찰은 "자살" 이라는 서해순씨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사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김광석 부모를 비롯한 직계가족들은 지금도 "(김광석이) 자살할 사람도 아니고, 이유도 없었다"고 항변한다.

김광석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의혹은 꾸준히 제기됐다. 

목을 맨 채 발견된 김광석의 주위에 딛고 올라설 의자 같은 물체가 없었다는 점, 평소 메모광이었던 김광석이 유서는 커녕 죽음의 단서조차 남기지 않았다는 점 등이 근거다.

경찰 발표와 달리 김광석이 우울증을 앓고 있지 않았으며 약도 복용하지도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해순씨가 김광석과 결혼 하기 전 이미 혼인한 경력이 있었고, 이런 이유 등으로 김광석 부부가 이미 별거상태로 파경 위기에 있었으며, 김광석이 사망하기 전날 서해순씨에게 이혼을 통보했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김광석의 외동딸 서연양도 이미 10년 전 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서연양은 발달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해순씨는 그동안 딸의 행방을 묻는 지인들의 질문에 "미국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당시 16살이어던 서연양도 공교롭게 집에서 쓰러졌고, 목격자도 어머니 서해순씨가 유일했다.  아버지 김광석이 사망할 때 상황과 흡사하다.  

경찰은 "2007년 12월 23일 오전 5시 경 서연양이 경기도 용인 소재 자택에서 쓰러진 것을 서해순씨가 발견해 119에 신고, 수원 소재 대학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서연양의 사인은 폐질환(급성 화농성 폐렴)이었고, 외상은 관찰되지 않으며, 약독물 검사 결과 기침감기약에 통상 사용되는 성분 외에는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서연양은 살아있었다면 아버지 김광석의 유산과 음악저작권의 유일 상속권자다. 
김광석 사망 후 재산권 분쟁을 벌인 김광석의 아버지와 서해순씨의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 

서연양의 유산은 지금은 유일한 직계 혈족인 어머니 서해순씨가 모두 승계한 상태다.

김광석 유족과 다큐영화 '김광석' 이상호 감독 등은 9월21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장을 접수했다. 김광석과  서연양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취지다.

의혹의 초점은 서해순씨에게 모아진다. 서해순씨는 2006년 김광석 10기 추모행사에 참석한 이후 공식적인 자리에서 더 이상 목격되지 않고 있다.

◆ 김광석 재수사 가능할까

김광석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면 사법당국의 재수사와 재판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공소시효가 걸림돌이다.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2015년 7월31일 일명  '태완이법' 시행으로 폐지됐다. 

하지만 이 법 규정은 소급적용되지는 않는다. 형사소송법 개정 전 발생한 살인 범죄의 경우에는 범행 당시 공소시효가 적용된다.

이 때문에 '태완이법'의 계기가 됐던 김태완군 황산 테러사건도 개정 법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영구 미제로 남았다.

김광석 사망 당시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었다. 사건 발생 시점이 1996년으로 20년이 넘은 만큼 공소시효는 진작에 끝난 셈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일명 '김광석법' 이 거론된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 등이 추진중이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살인사건에 대해 재수사에 착수할만한 중대한 단서가 발견되어 진실규명이 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해당 사건에 한해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김광석법의 요지다.

문제는 위헌 여지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을 다시 수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헌법의 적법절차 원칙과 형벌불소급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입장이다.

헌재는 1996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내란죄 등 사건에서 이 문제를 심리한 적이 있다.
 
당시 논란이 된 5ㆍ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5ㆍ18민주화운동법 )은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행위에 대하여 해당 범죄행위의 종료일부터 1993년 2월 24일까지의 기간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했다.

12.12, 5.18. 사건의 경우 발생일로 부터 계산하면 1996년 당시 이미 15년이 지난 상태여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에 대한 공소시효도 모두 끝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5ㆍ18민주화운동법은 신군부 쿠데타 부터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1993년 2월24일까지는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을 사실상 할 수 없었던 만큼 그 기간동안은 공소시효 진행을 정지시킨다는 내용이다.

이도 결국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의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소급입법'이었고, 헌재도 이런 측면에서 심리를 진행했다.

헌재 재판관들은 5대 4로 의견이 나뉘었다. 

당시 김용준 헌재 소장 등 5명의 재판관들은 위헌 의견을 냈다.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된 경우에 그 뒤 다시 소추할 수 있도록 법률로써 규정하는 것은 헌법 제12조 제1항 후단의 적법절차의 원칙과 제13조 제1항의 형벌불소급의 원칙 정신에 비추어 헌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위헌적인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이들 재판관은 "형벌은 신체의 자유와 직결되기 때문에 적어도 범죄구성요건과 형벌에 관한 한, 어떠한 공익상의 이유도, 국가적인 이익도 개인의 신뢰보호의 요청과 법적 안정성에 우선할 수 없다"며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되어 소추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뒤에 뒤늦게 소추가 가능하도록 하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형벌에 미치는 사실적 영향에서는 형벌을 사후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범죄구성요건의 제정과 실질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라고 위헌 판단 이유를 밝혔다. 

반면 김진우 재판관 등 4명은 합헌의견을 냈다.
 
이들은 "진정소급입법(공소시효가 만료된 후 시효를 연장하는 입법)이라 하더라도 기존의 법을 변경하여야 할 공익적 필요는 심히 중대한 반면에 그 법적 지위에 대한 개인의 신뢰를 보호하여야 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어 개인의 신뢰이익을 관철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관들은 공소시효 연장이 정당화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로 ▲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거나 ▲ 법적 상태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웠거나 하여 보호할 만한 신뢰의 이익이 적은 경우 ▲소급입법에 의한 당사자의 손실이 없거나 아주 경미한 경우 ▲ 신뢰보호의 요청에 우선하는 심히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소급입법을 정당화하는 경우 등을 들었다. 

결국 헌재 다수 의견에 따르면 김광석법도 '진정소급입법'인 만큼 위헌이라고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소수의견인 합헌 의견에 의하더라도 김광석법이 헌재가 예시한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김광석 사건 진실규명과 관련자 처벌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 신군부의 국헌문란 행위와 같은 수준의 공익성을 가지는 사안인 지 논란이 불가피한 것이다. 

헌재가 공소시효 연장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보일 수도 있다. 
5.18특별법 위헌심판도 20년전 일인만큼 헌재 재판관들이 이 문제를 원점에서 검토한다면 김광석법이 위헌으로 판단된다고 예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공소시효 제도의 존재목적은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증거 판단이 곤란하고 ▲ 사회적 관심이  약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생활 안정을 보장해주어 법적 안정성을 도모한다는 데 있다.

이 중 가장 큰 명분이 '증거소멸'로 인한 진실규명의 곤란성이다. 하지만 과학수사 기법의 발달로 최소한의 단서만 있으면 수십년 전 사건도 해결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해졌다. 

헌재가 이런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경우 공소시효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 소송사기 의혹이 물꼬?  

2006년 1월22일 서울 창신동 안양암에서 열린 김광석 10주기 추모식에서 부인 서해순씨가 제를 올리고 있다. <출처=인터넷커뮤니티>

김광석 사망 건과 달리 서연양 사건은 여전히 공소시효가 남아있다. 애초 알려진 병사가 아니라 타살을 의심할 수 있는 증거가 나오면 재수사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김서연 양 사망과 관련해서도 당장 재수사가 가능할 정도의 스모킹건, 결정적인 증거가 있는 상황은 아니다.

다만 ▲ 서연양의 사인이 폐렴인데 병원 도착 전, 또는 도착 직후 사망한 것으로 의심되는 점 ▲ 서해순씨가 딸의 장례식도 치루지 않고 사망 사실을 10년 동안 숨긴 점 등으로 인해 어머니 서씨에게 의혹이 집중된 상태다.
   
서해순씨가 김광석 유산 분쟁과 관련해 김광석 부친 등과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딸 서연양의 사망 사실을 법원에 알리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는 소송사기 의혹도 제기됐다.

병원 차트에 남아 있는 서연 양의 사인은 급성폐렴이다. 

김광석 유족측은 “급성폐렴인 환자가 내원하자마자 사망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의혹을 제기한다. 

유족측 김성훈 변호사는 “서연 양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망을 했다고 한다”며 “어린 딸이 폐렴에 걸렸음에도 병원에 오기 전 사망하게 했다는 건 석연치 않다”고 말했다. 

안민석 의원은 “경찰 발표는 서연 양이 폐렴으로 119구급대에 의해 한 대학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한 것으로 돼 있는데, 내가 확인한 병원 진료차트에서는 사망한 상태에서 병원에 도착한 것으로 돼 있었다”고 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서해순 씨에 대해 긴급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연양이 이미 사망한 상태에서 서해순씨가 딸이 살아있다고 언론 인터뷰까지 하면서 유산 소송 재판부를 기만했다는 것이다. 

진 의원은 "사망한 아이의 양육비에 돈이 들어간다며 재산을 취득했다"며 "소송사기죄가 아닌지 긴급 수사해 의혹을 해결해야 한다. 소송사기죄의 공소시효는 10년, 아직 남아있다"고 말했다.
  
김광석은 1996년 사망 전 자신의 저작인접권을 아버지에게 양도했다. 하지만 서해순씨가 상속 권리를 요구하면서 시댁과 며느리 간 송사가 일었다.

그러다 양측은 소송을 취하하고 김광석의 음반 4장에 대한 권리를 부친이 갖는 대신 부친이 숨진 뒤에는 모든 권리를 딸 서연양에게 양도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서씨가 이 약속을 어기고 김광석 부친이 저작인접권을 가진 노래들로 음반을 제작하면서 다시 소송전이 벌어졌다. 

김광석 부친은 최종 판결 전인 2005년에 사망했다. 이후에도 김광석의 모친과 형이 이어 받아 소송은 계속됐고 2008년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왔다.

당시 대법원은 "1996년 합의서에서 향후 제작할 음반의 계약은 김광석의 아버지와 아내가 합의해 체결키로 했지만, 이 합의가 음원 자체에 관한 것은 아니므로 저작인접권을 공유한다고 해석할 수 없다"며 음반저작권이 서연양에게 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당시 서연양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는데 서해순씨는 이를 법원에 고지하지 않았다. 

서해순 씨는 서연양의 죽음을 외부에 알리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장례도 치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상호 감독은 “서해순 씨는 김광석과 몇 개월 간 별거 끝에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저작권 소유에 대해서는 배제됐다. 하지만 김광석 사망 후 서연 양을 키우고 공부시키려면 저작권 수입이 필요하다며 김광석의 부모를 압박해 저작권을 뺏어냈다”고 주장했다.

김성훈 변호사도 "유족들 간의 저작권 법정 다툼이 끝날 무렵 서연양은 숨졌고 서 씨는 이를 알리지 않은 채 재판을 진행해 조정에 이르게 됐다"며 서씨의 소송사기를 의심했다.

서해순씨 소송사기 의혹에 대한 고소·고발도 접수된 만큼 수사당국의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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