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오늘=오경선 기자] 금융당국이 소비자 보호를 위해 가상통화에 대한 규제안을 내놓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팽배하다.

규제안에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가상통화 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에 대한 처벌 방안도 포함했지만 국내에서 적용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분석이다.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가상통화 사설 거래소에 대한 규제방안도 사실상 백지 상태다.  

사설 거래소를 통한 가상통화 거래 규모가 코스닥 수준에 달한 만큼 대형 금융사고가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규제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통화에 대한 법적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실효성 있는 규제도 힘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인접국인 중국, 일본 등은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가상통화에 대한 대응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 한국, ICO규제 국내 실정과 맞지않아...거래소 규제도 미비

금융위원회 등 10여개 관계 부처가 9월4일 합동으로 발표한 '가상통화 현황 및 대응방향'에 따르면 가상통화를 이용해 자금을 조달하는 ICO가 지분증권‧채무증권 등 증권발행 형식으로 이뤄질 경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처벌된다.

하지만 국내 블록체인 업체 중 지분증권이나 채무증권 등 증권발행 형식으로 ICO를 했거나 예정하고 있는 곳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위원회 전자금융과 주홍민 과장은 "금융 소비자들은 미래 수익을 기대하고 ICO 투자를 하겠지만, 비제도적 절차로 자금을 모집할 경우 투자정보와 관련해 완벽하게 설명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며 "ICO는 의사결정권이나 배당수익금을 주면서 자금을 모으는 행위인데, 공식적인 공모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자본시장법 위반이라고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까지는 이 규제에 해당하는 ICO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시장에서 이를 위반하는 행위가 있는지 경찰과 검찰, 금융감독원에서 단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 'ICO의 증권법적 평가와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ICO는 투자자에게 신규 가상통화만 주거나 가상통화와 함께 프로젝트 관련 권리들을 묶은 '토큰'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토큰'은 투자자에게 신규 가상통화 이외에 미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배당금, 수익금을 배분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토큰은 증권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해석이다. 

우리 금융당국은 가상통화를 금융투자상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ICO 업체가 투자자에게 가상화폐만 줄 경우에는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

예컨대 국내 게임회사가 신규게임 런칭 자금조탈을 위해 ICO를 진행하는데 토큰이 아닌 가상통화만 발행하는 경우에는 위법성을 판단할 근거법이 없다.

가상화폐를 금융투자상품으로 볼 경우에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법률'(자본시장법)로 규율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그럴 여지가 없는 셈이다.

자본시장연구원 천창민 연구위원은 "별도의 법적 조치가 없는 한 규제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우려가 없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이 규제 방안 전후로 이뤄진 사안들 중 규제에 해당하는 ICO가 없다고 언급한 것은 국내 ICO가 투자자에게 가상화폐만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토큰이 아닌 가상통화만 발행하는 형식이라도 ICO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여전히 상존한다는 데 있다.

법적 규제를 받는 증권공모에 비해 ICO는 발행 회사에 대한 불안정성이나, 투자자의 정보비대칭성 등의 문제를 안고 있어 소비자 피해 우려가 크다.

미국 체이낼러시스(Chainalysis) 분석에 따르면 올들어 8월까지 전 세계적으로 ICO 관련 금융사기 피해금액은 2억2500만달러, 피해 투자자수는 3만260명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가상통화의 법적 성격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국제금융센터 황수영 팀장은 "궁극적으로는 가상화폐가 결제수단으로 가능한 지, 준화폐로 인정 가능한 지에 대한 법적인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이를 규정하는 것은 가상화폐 거래나 투자가 제도권으로 들어와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가상통화 거래소에 대한 규제에도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량의 약 20%가 한국 가상통화 거래소를 통해 거래되지만, 당국은 거래소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비트코인 정보제공 사이트 코인힐스에 따르면 9월22일 기준 국내 거래소 빗썸의 가상화폐 거래량은 전세계 거래량의 14.61%를 차지한다. 세계 가상통화 거래소 중 거래 비중이 가장 크다.

해킹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 피해가 불가피하다. 일본에서 거래소 건전성이나 안정성을 감시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다.

금융당국은 가상통화 규제안에서 현행 법 테두리 내에서 실행가능한 규제방안으로 가상통화 취급업자의 이용자 본인확인 강화, 가상통화 취급업자와의 거래 시 은행의 의심거래보고 강화 등을 제시했다.

가상통화 취급업자에 맡긴 고객자산의 별도 예치 등 소비자보호 사항을 취급업자 자율규제안에 반영토록 권고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황수영 팀장은 "이번에 금융 당국이 급하게 가상통화 관련 규제를 마련했지만 이는 글로벌 추세와 비교했을 때 늦은 조치"라며 "정부에서 거래소에 대한 규제를 마련하는 부분이 중요하지만, 거래소 신설 허가제가 마련될 경우 정부에서는 가상통화에 대해 국가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발생해 부담스러워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거래소 운영이 등록·신고제로 가능하기 때문에 건전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본금, 정보보안 등에 대한 감시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만약 거래소 해킹이 발생하면 투자자의 가상통화에 대한 보호 장치가 없다"고 언급했다.

업계 관계자도 "가상통화는 거래소를 중심으로 규제하는 것이 전세계적 추세이지만, 이번 금융당국의 규제에서는 이 부분이 빠져있다"고 말했다.

◆ 일본, 정부차원 과세 시행...법제화 통한 시장 감독

일본은 가상통화 등록업과 관련해 구체적인 법안을 마련해놓고 있다. 최근에는 가상통화 수익에 대한 과세안을 내놓으며 규제 측면에서 한발 앞서는 모습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9월13일 일본 금융청이 10월부터 30명 규모의 전담 팀을 구성해 가상통화 거래소 감시에 나선다고 보도했다. 현재 등록 기관의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 통화의 회계 규칙을 둘러싼 논의도 병행해 진행된다. 전담팀은 가상통화를 매개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인 가상통화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에 대한 대응 등을 포함해 빠르게 확산되는 가상 화폐 시장의 감시와 육성의 양립을 목표로 한다.

또한 일본 정부는 가상통화를 통한 수익을 근로소득으로 간주하고 소득액에 따라 5~45%의 누진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거래 차익이 4000만엔 이상이 되면 최대 45%의 세율이 매겨진다.

일본은 가상통화교환업에 대한 규제 내용을 담은 개정자금결제법을 시행하고 있다. 가상통화가 자금세탁이나 테러자금 조달에 사용되는 것을 막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만들어졌다.

일본은 자금결제법과 관련해 가상통화를 물품 구매나 용역 제공 시 대가로 사용할 수 있는 재산적 가치로 인정하고 있다.

가상통화교환업에 대한 등록제를 도입해 가상통화 매매∙교환 및 중개와 관련해 소비자의 금전이나 가상통화를 관리할 때,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또한 가상통화교환업자 업무에 관한 규제나 감독을 시행하고 있어 소비자 보호나 정보안전관리 등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 공인회계사나 감사법인의 감사를 받도록 하고, 이를 정부에서 감독한다.

무등록으로 가상통화교환업을 영위하거나, 소비자에 대한 보호관리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제도도 마련해두고 있다.

◆ 중국, 가상통화 집중규제...ICO금지∙거래소 폐쇄 강수

중국 당국은 ICO 금지에 이어 자국 내 거래소 폐쇄라는 강수를 뒀다. 10월 18일 열리는 공산당 대회를 앞두고 자본유출로 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분석된다.

또한 중앙집권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중국 당국으로서는 중앙 컨트롤 장치가 필요 없는 분권형 사이버머니인 가상통화로 인해 탈중앙화가 이뤄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민은행, 은행감독위원회, 증권감독위원회 등 7개 부처는 공동으로 각종 가상통화의 발행과 융자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고, 중국 3개 가상통화 거래소 폐쇄를 지시했다.

중국 매체 차이신(Caixin)에 따르면 중국 인민 정치 협상 회의 중앙위원회는 9월 4일 발표문을 통해 ICO를 '본질적으로 불법적인 선전금융'이라고 선언하고 전면 금지시켰다.

중국 산업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이전 중국에서 진행된 ICO프로젝트는 5건에 불과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만 65건이 진행돼 누적 금융 규모 2억6160만 위안에 달했다. 

중국 당국은 ICO를 현행 법규에 부합하지 않는 불법적인 자금조달행위로 판단했다.

ICO금지가 지속적으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중국 감독당국은 ICO에 대한 각국의 규제 태도를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증국 당국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를 비롯해 스위스, 싱가포르, 일본, 러시아, 한국 등의 ICO 관련 규제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중국 3대 가상통화 거래소인 비트코인 차이나(BTC∙Bitcoin china), 오케이코인(OK Coin), 훠비왕(火幣網)에 대해 거래중지를 지시했다. 이들은 9월 말부터 거래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가상통화의 경우 명확한 가치 기준을 가지지 않은 만큼 위험성이 높다는 게 중국 당국의 기본적인 관점이다. 

최근 강경조치들도 시장 가격이 급격하게 변동할 경우 일반 투자자의 손실이 우려된다는 명분으로 취해졌다. 

익명을 이용한 투기∙돈세탁 리스크와 범죄행위 가능성도 우려 요인이다.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은 "중국 감독기관이 최근 가상통화를 강력하게 제재하는 이유는 과거 중국 증시 폭락에서 찾을 수 있다. 2015년 중국 증시 폭락으로 감독기관의 리스크 예방 부실이 질책을 받았다"며 "일부 전문가들은 감독기관이 가상통화의 급격한 가격 상승과 규모 확대에 경계심을 갖고 있으며 10월 개최되는 당대회까지 금융 리스크 예방 및 안정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ICO와 가상통화 거래금지 조치를 계속 유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3년에도 비트코인 거래를 금지했다가 철회한 적이 있었고, 공산당 대회를 앞두고 시급하게 규제하는 측면이 있는 만큼 거래소 폐쇄가 영구적인 조치는 아닐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저작권자 © 위클리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