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김성현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MB)도 검찰 포토라인에 설 것인가. MB 입장에선 사면초가다.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의 정치·선거 개입,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공영방송 장악 의혹 등 사방에서 MB를 겨냥한 나팔소리가 요란하다.  지나간 노래가 된 줄 알았던 4대강 비리, BBK 주가조작 의혹도 다시 꿈틀거린다. 

검찰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MB를 소환할 수 있는 상황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와 공동 명의로 국정원의 '박원순 제압문건'과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소·고발한 상태다.

블랙리스트 건과 관련해서도 문성근씨, 김미화씨 등의 피해자들이 고소장을 내면 어떤 형태로든 MB를 상대로 한 피고소인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제는 결정적 증거, 스모킹건이다. 이것저것 나팔소리는 요란하지만 전직 대통령을 검찰 토포라인에 세울만한 결정적·핵심적 범죄혐의는 아직 현출되지 않는 상태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검찰이 이런 상황을 조기에 매듭지을만한 카드를 내놓지 못하면 MB 수사는 정치공방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MB쪽은 지금 상황을 되레 역전의 기회로 반전시킬 수도 있다. MB에 대한 압박을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몰고가 범보수 진영의 대동단결 효과를 유도해 내년 지방선거까지 끌고가면 판세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실제로 보수 야권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수사가 적폐청산을 빌미로 한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나온다.

이명박 정부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부싸움 끝에 자살했다'는 선동적인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전직 대통령 시절의 적폐를 청산한다면 MB뿐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사건도 재수사 리스트에 올려야 한다는 논리다. 

아무튼 MB 관련 수사는 단기간에 끝날 모양새는 아니다. 국정권 정치개입 사건도 징역4년형을 선고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대법원에 재상고한 상태고, 블랙리스트와 방송장악 등에 대한 수사는 아직 시작단계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수사 여부도 감사원의 감찰결과가 나오는 연말께나 결정될 예정이다.

◆ 국정원 정치개입, 원세훈의 윗선?

국정원의 정치·선거개입 사건은 MB관련 수사 중 그나마 진도가 가장 많이 나간 상태다.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뛰어넘는 ‘윗선 캐기’에 화력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검찰에 따르면 9월 21일, 22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국정원 수사팀의 조사를 받은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추선희 전 사무총장은 이명박 정권 시절 국정원의 자금 지원이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명박 정권이 여론조작을 위해 우파, 친정부 단체를 선별하고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단체에 자금 등을 지원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핵심적인 진술인 것이다.

화이트리스트의 경우는 블랙리스트와 그 성격이 다르다. 블랙리스트의 경우는 할 수도 있는 지원을 안하는 ‘통치행위’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돈을 지급한 화이트리스트는 국고손실, 횡령, 배임 등 형법규정에 직접 저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씨에 따르면 어버이연합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10여회에 걸쳐 약 3000만원의 기업후원금을 받았다. 추씨는 당시 자신에게 돈을 건넸던 기업인이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이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민병주 전 단장은 같은 시기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외곽팀’의 불법 선거운동·정치관여 활동을 하며 수십억원을 국가예산으로 지급한 혐의(국고손실) 등으로 9월 19일 구속된 상태다.

검찰은 앞서 국정원 댓글 활동의 책임자를 민병주 전 단장이 아닌 원세훈 전 원장이라고 판단했다.

이미 원세훈 전 원장이 고등법원에서 실형(징역 4년)을 선고받은 상황에서 검찰이 지속적으로 수사를 벌이는 것은 관련자들의 처벌을 넘어 청와대의 개입을 밝히기 위한 과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의 조사결과 블랙리스트외 관련해서는 청와대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정황이 나왔다.

검찰은 9월 중으로 원세훈 전 원장을 소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을 상대로 국정원 댓글 활동 외에 관제 시위, 블랙리스트 등 여론조작 활동 전반에 대한 지시 여부를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원 전 원장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라 국정원장 위의 ‘윗선’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9월 18일 배우 문성근씨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피해자 조사를 받기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국정원 수사팀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청와대의 개입 

이명박 정부 시절 이뤄진 일명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는 9월 18일, 19일 피해자 배우 문성근씨와 방송인 김미화씨, 배우 김규리씨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국정원 개혁위에 따르면 원세훈 전 원장은 2009년 2월 취임 이후 ‘반(反) 이명박’ 여론을 주도한다고 판단되는 문화·예술계 특정 인물·단체의 퇴출 및 반대 등 압박활동을 하도록 지시했다.

당시 국정원은 ▲문화계의 이외수, 조정래, 진중권 등 6명 ▲배우 문성근, 명계남, 김민선 등 8명 ▲영화감독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등 52명 ▲방송인 김미화, 김구라, 김제동 등 8명 ▲가수 윤도현, 신해철, 김장훈 등 8명을 대상으로 좌편향, 선동을 이유로 각 분야별 퇴출활동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유광년 전 국정원 심리전단 팀장은 문성근씨와 배우 김여진씨의 합성 나체사진을 만들어 유포하기도 했다. 유씨는 9월 22일 ‘정보통신만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상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국정원 개혁위에 따르면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과 홍보·민정수석 등 지휘부가 지속적으로 문화·연예계 특정 인물을 견제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청와대의 직접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조사결과가 나온 것이다.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조사해야하는 직접적인 정황이다.

실제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와 함께 국정원 개혁위가 밝힌 ‘박원순 제압문건’의 피해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포함한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해당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안3부에 배당돼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핵심 피고발인이 이명박 전 대통령인 만큼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피고인 조사를 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박원순 시장측은 국정원이 정치관여 등의 내용을 청와대에 직접 보고 했으며, 청와대는 원세훈 전 원장의 보고 등을 받고 특정 인물 압박, 정치개입 부서 확대 등을 직접 지시한 만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개입됐다고 주장했다.

고소장에 기재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자들의 혐의는 정치관여죄, 직권남용,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명예훼손 등이다.

블랙리스트 피해 문화·연예인들도 고소·고발장을 검찰에 접수하고 있는 만큼 검찰이 이를 무시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 방송장악, 범죄 수혜자는 청와대

국정원의 방송장악 의혹에 관해서는 9월 25일부터 본격적인 피해자 소환조사가 진행된다.

검찰은 26일 최승호 전 MBC PD(현 뉴스타파 PD)를 불러 참고인 조사를 한다. 앞서인 25일에는 정재홍 PD수첩 작가가 검찰에 출석할 예정이다.

국정원 적폐청산 TF에 따르면 국정원은 원세훈 전 원장 시절 ‘방송장악’을 목적으로 MBC, KBS 등 공영방송의 PD, 기자, 작가 등의 성향을 파악한 문건을 생산했다.

국정원은 이 중 정부에 비판적 성향이 강하다고 분류된 이들에 대해 방송사 사장 등을 통해 압무배제, 좌천성 인사 등 압박 활동을 펼쳤다.

검찰은 최승호 PD 등 외에도 방송장악 블랙리스트 피해자로 분류된 PD, 기자, 작가 등을 추가로 소환할 예정이다.

피해자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국정원 관계자를 포함해 청와대의 개입 여부를 규명하기 위한 피의자 소환 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는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와 성격을 같이하는 방송장악 블랙리스트에 관해서도 청와대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 원세훈 전 원장이나 국정원의 위법행위가 청와대와 당시 여당,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이 역시 조사 결과에 따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로 이어질 수 있다.

◆ 4대강 사업, 끝나지 않은 의혹 연말이 분기점

검찰이 조사 중인 사건 외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안고 있는 불안요소는 또 있다. 바로 4대강 사업이다.

22조 2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에 투자됐지만, 이후 끊임없이 문제가 발견됐으며 뇌물 등의 각종 비리도 드러났다.

올해 6월 감사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4대강 사업 정책 감사 지시에 따라 4대강 사업에 대한 4번째 감찰에 돌입했다.

감사 범위는 정책결정과정부터 성과까지 광범위하다.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22조원이 넘는 역대급의 국책사업임에도 예비타당성조사 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업 도중에는 장석효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수천만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포착돼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수질검사용 로봇물고기 개발 연구를 맡은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이 억대의 뇌물을 받기도 했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GS건설, SK건설, 현대산업개발, 포스코건설, 대림산업 등의 국내 대기업 건설업체들의 담합도 발각됐다.

감사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감찰은 올해 말에나 종료될 예정이다. 다만 다가오는 국정감사에서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에 대한 책임이 언급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9월 19일 보도자료를 내고 "단군 이래 최대 환경적폐라 할 수 있는 4대강 사업을 강행한 진상과 책임을 묻고자 한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신청할 것이라 밝혔다.

이 밖에도 여당의 다수 의원들이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녹조현상, 생태계 파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책결정부터 성과에까지 너무도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의 올해 말 발표에 따라 대대적인 검찰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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