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준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블록체인연구센터장

▲ 박성준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블록체인연구센터장.

[위클리오늘=오경선 기자] "블록체인 시대, 5년이면 옵니다"

최근 암호화폐(가상화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4차산업혁명 핵심 기술로 손꼽히는 블록체인(Block Chain)도 주목받고 있다.

블록체인은 거래정보를 하나의 덩어리(블록)로 보고 이것을 잇따라 연결한(체인) 모음이다. 블록에는 일정 시간 동안 확정된 암호화폐의 거래내역이 암호로 보관되며 네트워크에 있는 모든 참여자에게 전송돼 저장된다.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참여자가 공동으로 거래내역을 기록하고 관리하기에, 정부가 통제하는 중앙 서버를 통해 묶여있는 현행 인터넷 체계를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제2의 인터넷'으로 불린다. 개인과 개인이 직접 연결된 구조로 정부나 기존 금융 기관의 간섭을 받지 않는 구조다.

데이터의 위ㆍ변조가 불가능한 기술적 특성을 갖고 있어 암호화폐뿐만 아니라 사물인터넷(IoT), 인증정보 관리, 콘텐츠 서비스, 저작권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이 가능하다. 중앙집중형 서버 시스템보다 블록체인이 더 효과적이라면 세상이 흘러갈 방향성은 분명해진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꼽히는 블록체인은 우리 일상에 생각보다 가까이 와있었다. 박성준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블록체인연구센터장(58)은 종이, 인터넷을 잇는 블록체인 시대의 도래를 이르면 5년 뒤, 늦어도 10년 이내로 봤다. 박 센터장은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블록체인 전문가다.

블록체인 전도사인양 그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올 들어 참석한 강연과 회의 횟수만 170회에 달한다고 했다.

'블록체인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문과생이냐'는 센스있는 답변으로 응수한 박 센터장을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나 블록체인이 던지는 미래 화두에 대해 들어봤다.

▶ 아직까지 블록체인은 생소한데.

"쉽게 말하면 제2의 인터넷이자 새로운 컴퓨터 그 자체다. 컴퓨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CPU(중앙처리장치)와 메모리로 구성돼 있다. 2개의 CPU가 있으면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2개의 CPU를 1개처럼 움직이기 위해서는 로직(논리적 이론)이 필요한데 그것이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을 통하면 전세계 PC를 모아서 하나의 컴퓨터로 만들 수 있다.

P2P(peer to peerㆍ개인 대 개인) 파일공유시스템인 토렌트가 이미 블록체인 형태를 띄고 있다. 중앙관리시스템으로 연결된 전 세계 PC를 관리하고, 일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PC들이 서로 함께 관리한다. P2P에 메모리를 저장하면, 내 파일은 내 PC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돼 있는 PC에 있는 파일을 활용해서 저장한다. 그 파일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옆에 있는 것처럼 쓴다. 여러개의 PC에 있는 파일과 메모리만 빌려서 커다란 하드디스크를 만든 것이다."

▶ 토렌토와의 차별성은.

"토렌토는 신뢰기술(Trust)이 없다. 블록체인은 P2P에 신뢰를 위한 컨센서스(합의) 메커니즘을 넣은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토렌토는 파일(메모리)만 공유하는 것이고, 블록체인은 각 컴퓨터가 가지고 있는 CPU까지 공유한다. 메모리와 CPU는 컴퓨터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앞서 설명했다. 컴퓨터가 연결되기 위해 기본적으로 네트워킹시스템(인터넷)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블록체인은 인터넷이자 네트워크이자 컴퓨터다. 그래서 나는 블록체인을 한마디로 트러스트 월드 컴퓨터(Trust world computer)로 정의한다."

▶ 왜 블록체인을 혁명이라 하는가.

"블록체인은 비지니스와 정치, 경제, 사회 등 우리가 실생활에서 경험하는 모든 분야에서 적용 가능하다. '암호화폐' 비트코인 때문에 금융분야에서의 활용이 많이 언급되지만 이는 실상을 잘 모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통시스템을 보면 유통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단계마다 생기는 정보는 각자만이 알고있어 타인을 속일 수 있다. 소비자가 물품을 받았을 때 제품에 하자가 있을 경우 어느 부분이 잘못됐는지 알기 위해서는 각 주인(단계)이 가진 정보를 다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반의 유통이 진행되면 신뢰를 기반으로 한 투명성이 가능해진다. 즉 모든 정보가 공유돼 누군가를 속일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원래 인터넷의 목적은 모든 사람들의 정보를 같이 공유하고 잘 활용해 적은 비용으로 쓰기 위한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평등하게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신뢰성 확보의 목적 하에 정보는 오히려 독점됐다. 페이스북, 유투브, 우버, 에어비엔비, 네이버, 카카오톡이 그렇다.

과거에 중앙 기관이 없는 형태에서는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신뢰성을 확보해줘야만 했다. 그런데 블록체인이 등장하면서 탈 중앙화된 상황에서도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 비트코인을 가상화폐가 아닌 '암호화폐'로 명명했는데.

"암호화폐가 원어(cryptocurrency)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가장 정확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currency의 정의가 화폐냐 통화냐 돈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crypto를 '가상'이 아닌 '암호'로 불러야 한다. 블록체인을 쓰지 않는 가상화폐는 이미 많이 있다. 교통카드(티머니)도 일종의 가상화폐이지만 중앙관리기관이 있다는 면에서 암호화폐와는 다르다. '암호'라는 단어 속에 블록체인 기반이라는 의미가 들어간다."

▶ 블록체인 시대 수용의 사회학적 의미가 있다면.

"지난해 촉발된 촛불집회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참여자들이 인터넷 상의 '디지털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해 논의했다. 많은 지식인들이 찬성했지만 결국엔 이뤄지지 않았다. 촛불집회 참여자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인터넷 사이트화되면 중앙화된다. 자발적 모임인데 누군가가 관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블록체인이 있다면 어떤가. 이것이 블록체인의 사회학적, 정치적, 경제적 의미다. 그래서 엄청나다.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일을 진행할 때 신뢰성을 획득하기 위해 기존에는 정부, 은행 등 기관에 의존했다. 그러나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3의 관리기관이 필요없어진다. 그래서 탈 중앙화라고 말하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우리끼리의 합의 메커니즘을 통해 신뢰가 필요한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기술. 그게 문과적 의미의 블록체인이다."

▶ 탈 중앙화는 탈 규제와도 맥락이 같은가.

"블록체인이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중앙 기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부나 은행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렇지는 않다. 블록체인은 하나의 기술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합의를 통해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뭐든지'에 대한 제한이 없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블록체인 생태계에 대한 기본적인 룰은 정부가 정해줘야 한다.

블록체인 생태계를 활성화시키는 것을 '전술적 합의'라고 본다. 우리끼리 합의하는 것이다. 블록체인의 전술적 합의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 그것은 '전략적 합의'다. 어떤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불법적인) 대마초를 거래해서는 안되지 않은가. 그 사회가 원하는 최소한의 가치기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들이 모두 합의하는 기본 가치가 필요하고, 정부나 은행은 이 과정에서 코디네이션 역할을 해줘야 한다. 국가에서 비트코인이나 암호화폐에 대한 법적 지위를 달라고 하는 것은 결국 전략적 합의에 대한 정책을 펴달라는 것이다."

▶ 기술적인 면에서 정부 개입 여지도 있나.

"있다. 비트코인은 신뢰해도 거래에 대한 신뢰는 다른 부분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에스크로 제도다. 에스크로 제도란 은행 등 제3자가 소비자의 결제 대금을 예치하고 있다가 상품 배송이 완료되고 나면 그 대금을 통신판매업자에게 지급하는 전자거래안전장치다. 즉 판매자와 구매자가 거래할 때 제3의 중계기관을 통해 신뢰를 확보하고 대금을 결제하는 제도다. P2P거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에스크로 제도를 통해 안전성을 높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종이문서 세상에서의 정부의 역할, 인터넷 세상에서의 정부의 역할, 블록체인 세상에서의 정부의 역할은 다르다. 정부의 역할이 변해야 하는 것이다."

▶ 블록체인 시대 대비를 위한 법ㆍ제도의 방향성은.

"3가지를 추구한다. 먼저 블록체인에 저장된 데이터가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블록체인기본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블록체인의 데이터에 대한 법적 효력을 받아 응용 서비스 만들라는 의미다.

둘째는 '암호화폐법'이다. 암호화폐에 대한 법적 효력을 정의해달라는 것이다. 화폐는 전자서명거래를 위해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기에 독립적으로 분리돼야 한다. 수표, 카드, 상품권 등도 거래에서 가치를 정하는 여러 가지 수단들에 해당한다. 암호화폐도 어떤 조건 하에서는 어떤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정의해 달라는 것이다. 지불을 위한 새로운 채널이 생겼으니, 이에 대한 법적 지위를 요청하는 것이다. 즉 암호화폐를 마음껏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법이다.

마지막으로 '스마트계약법'은 탈 중앙화된 P2P서비스들에 대한 법적 효력을 달라는 것이다. 블록체인으로 만들어지는 비지니스에 대한 법적 효력을 부과하기 위한 것이다.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시장은 모든 영역이다. 우리가 그 시장을 선점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1990년대 인터넷진흥정책처럼 '블록체인진흥정책'을 주창하며 다닌다. 법과 규제는 최소화하고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 블록체인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 됐던 것처럼, 블록체인 강국이 되기 위해 국가적인 최우선 정책이 필요하다."

박성준 센터장은 암호학 박사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한국정보보호센터를 거쳤다. 온라인 문서 보안 업체 비씨큐어를 창업했고, 현재는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산하 블록체인연구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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