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삼성LCD 판결에선 질병원인 입증책임 회사측에 전환

<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김성현기자] 대법원이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퇴사 7년후 뇌종양 진단으로 사망한 직원에게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단을 했다.

8월 29일 삼성전자 LCD공장 산업재해 인정 판결에 이어 약 두달만의 삼성 관련 산업재해 대법원 판결이다.

LCD공장 산업재해 판결이 피해 노동자의 질병원인에 대한 입증책임을 회사측에 돌리는 혁명적 판결이라는 평을 받았다면, 이번 판결은 인과관계의 명확한 증명이 없더라도 개연성이 있다면 산재를 인정한 사례다.

14일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고(故) 이윤정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씨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내 업무와 뇌종양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씨는 사업장에서 약 6년2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여러 가지 발암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며 "발암물질의 측정수치가 노출기준 범위 안에 있다고 해도 여러 유해인자에 장기간 노출되거나 주·야간 교대근무 등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건강상 장애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이씨가 입사 전에는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지만 퇴직 후 우리나라 평균 발병 연령보다 훨씬 빠른 만 30세 무렵에 뇌종양이 발병했다는 부분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해당 사업장과 근무환경이 유사한 반도체 사업장에서 뇌종양 발병률이 한국인 전체 평균 발병률이나 이씨와 유사한 연령대의 평균 발병률보다 유달리 높다면 이는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하는데 유리한 사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씨는 199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2003년 퇴직했다. 이후 7년이 지난 2010년 5월 뇌종양(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뇌종양이 산업재해라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질병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를 거절했다.

이씨 측은 당시 유해물질에 노출됐고 주·야간 교대근무와 높은 노동 강도로 뇌종양이 발생했다며 2011년 소송을 냈다. 하지만 소송 도중인 2012년 5월 결국 사망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에 따르면 2007년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삼성반도체와 관련한 사망자는 총 118명에 달한다.

대법원이 이씨에 대해 산재를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만큼 비슷한 피해자들도 승소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산업계로 보면 근로자가 산재를 인정받을 범위가 대폭 완화된 것이다.

그 동안은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피해 당사자가 명확한 증거에 따른 업무상 재해 증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전문적인 증명없이도 인과관계만 충분하다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산재 청구의 범위 자체가 넓어질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한편 앞선 2심에서는 이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벤젠 등의 검출량에 비춰 뇌종양이 유발됐다고 보기 어렵고 유해인자가 공기를 통해 이씨에게 노출됐을 가능성은 낮다"며 "이씨가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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