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짓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뉴시스>

법원, MB 국방부 댓글공작 핵심 피의자 김관진· 임관빈 잇단 석방

변창훈 검사 투신 자살- 전국 지검장들도 윤석열 수사에 집단 반발

"적폐청산 수사 좌초 땐 '文정권 실패한 정치보복' 오명만 남을 수도"

[위클리오늘=김성현기자] 턱밑까지 따라붙는듯 하던 검찰의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에 급제동이 걸렸다.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연이은 피의자 석방, 전국 지검장들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지검장에 대한 반발, 정치호 변호사와 변창호 검사의 자살 등으로 그 동안 순풍을 탔던 전 정권 적폐수사는 동시다발적인 암초에 봉착했다.

윤석열 지검장 스스로도 전 정권 수사에 압박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이라는 고지는 멀기만 하다.

신광렬 서울중앙지검 부장판사에 의해 석방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왼쪽)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 <사진=뉴시스>

◆ 신광렬 판사의 반격?...‘석방’ 또 ‘석방’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1부(부장판사 신광렬)는 11월 24일 국군 사이버사령부 정치공작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된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에 대한 구속적부심에서 석방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일부 혐의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거나 증인 등 사건 관계인에게 위해를 가할 염려가 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없다”며 “보증금 납입을 조건으로 석방을 명한다”고 했다.

검찰은 원색적으로 목소리로 반발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신광렬 부장판사 재판부는 앞선 11월 22일에는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서도 구속적부심을 통해 석방을 결정했다.

당시 신 부장판사는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김 전 장관의 석방 이유를 설명했다.

이 둘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방부를 통해 정치공작을 벌였다는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할 핵심적인 피의자였다.

국정원 정치공작 수사를 순조롭게 마친 검찰은 이제 국방부 수사를 거쳐 이 전 대통령이라는 종점만 앞뒀다. 신 부장판사의 결정으로 발목이 묶이게 된 만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신광렬 부장판사는 서울대학교 법대, 제29회 사법시험 합격, 제19기 사법연수원 수료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친밀한 경력을 갖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우파성향을 가진 법관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신광렬 부장판사가 두차례 연이어 MB정권의 국방부 정치공작 핵심 피의자를 석방한 데는 단순한 법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판단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배경이 어찌됐든 검찰은 국방부 정치공작 수사에 있어 최악의 환경을 만났다.

김관진 전 장관은 11월 7일 검찰 조사에서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방부 사이버사의 댓글 활동 실적을 청와대에 매일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일보고에는 국방부 댓글 활동을 통해 MB정부에 우호적인 여론이 조성됐다는 내용이 주로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 전 장관은 이 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사이버사의 증원을 지시했다는 것도 인정했다.

이 전 대통령이 직접 국방부의 정치공작을 지시했다는 핵심적인 진술이다.

이 경우 이 전 대통령에게는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당시 검찰관계자는 “우선 국방부 수사가 종료되면 다음 단계에 돌입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김 전 장관을 포함한 주요 피의자에 수사가 끝나면 1차적으로는 MB정권 청와대 지휘라인을 소환할 방침이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의 보고가 이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다고 보는 만큼 최종적으로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진행될 가능성이 높았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지검장. <사진=뉴시스>

◆ 변창훈의 자살, 진실규명보단 인권보장

검찰의 MB정권 수사에 제동을 건 것은 법원뿐만이 아니다.

11월 6일 MB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댓글 수사’를 은폐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은 변창훈 서울고등검찰청 검사가 투신했다. 경찰은 변 검사의 투신을 자살로 규정했다.

변 검사는 투신을 결심한 당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사전구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변 검사의 자살은 국정원 정치공작 수사에 대한 검사 내부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11월 9일 문무일 총장이 전국 지검장들과 가진 회의에서 전국 지검장들은 검찰의 국정원 정치공작 수상에 대해 비판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에서는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를 하다가 인사 불이익을 당한 검사들이 국정원 수사를 계속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지검장에 대해 직접적인 불만이 동료 고참 검사들에게서 표출된 것이다.

2013년 MB정권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의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 지검장은 당시 검찰 지휘부와 마찰을 빚으면서 좌천됐다.

이날 전국 지검장과의 회의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인 윤석열 지검장만 빠진 것을 보면 해당 회의가 변 검사의 자살에 대한 다른 지검장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전국 지검장들과의 회의 바로 전 날인 8일에는 문무일 총장이 윤석열 지검장을 불러 업무보고 등을 받았다.

대검찰청은 그날 오후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국정원 관련 수사에 대해 사건 관계인들의 인권을 더욱 철저히 보장하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해 진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수사 중 관련 피의자의 죽음이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에 제동을 건 것은 이미 수차례 전례가 있는 일이다.

윤 지검장의 입장에서는 연기원 동기 검사의 자살에 이어 검찰총장의 언질, 전국 지검장들의 반발 등으로 인해 수사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 윤석열의 존재이유...‘스모킹건’은 어디에

더 심각한 일은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기에는 아직 이렇다할 ‘스모킹건’이 없다는 점이다.

국정원과 국방부의 정치공작 수사가 순조롭게 마무리된다 해도 이 전 대통령에게 적용되는 혐의는 ‘직권남용’ 수준일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의 직권과 통치행위의 범위에 대해 여전히 명확한 구분을 짓기 힘든 상황에서 직권남용 혐의만으로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거나 구속하기는 힘들다.

결국 정치공작 수사를 발판으로 다스 등을 통한 ‘뇌물죄’ 수사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 순서다.

하지만 법원과 검찰 내부의 반발로 인해 뇌물죄 수사는 커녕 직권남용 수사조차도 실무자 수준에서 마무리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다수 법조계 인사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지검장을 중앙지검 수장에 앉힌 이유가 과거 정권의 ‘적폐’를 파헤치기 위함이라고 보고 있다.

윤석열 지검장의 존재 이유로까지 확대 해석되기도 한다.

다만 김관진 전 장관과 임관빈 전 실장 석방 당시 여과없이 불쾌감을 드러낸 검찰 반응을 보면 적어도 수사 의지만큼은 꺽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국정원·국방부를 시작으로 한 박근혜·이명박 정권 수사가 실패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청산’도 ‘실패한 정치보복’이라는 오명만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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