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의 2년간 밀행과 규제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

배재광 벤처법률지원센터 대표

 지난 3월 6일 금융위원회가 2년간 밀행에 밀행을 거듭하며 준비해 온 한국판 규제샌드박스, 혁신금융지원특별법(안)(이하 ‘본 특별법’이라 한다)을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하였다. 그간 법안의 내용에 대해 궁금하여 수차 내용검토를  위해서 자료를 요청하였으나 철통 보안(?)으로 오늘 국회에 발의되고서야 보았다. 영국의 규제샌드박스의 취지를 정확하게 벤치마킹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졌다. 물론, 항용 모방이 선행자의 모순과 문제를 극복하는 선순환으로 나타나기 보다는 장점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개악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4차 산업의 핵심 혁명 중 한 분야인 금융을 와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으로 이끌고, 혁신창업을 통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금융위라서 무언가 다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나의 기대는 철저히 무시 되었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근본적으로 이전 정부와 구별된다. 민주주의적 정당성을 완벽히 가졌으며, 정치와 경제 혁신에, 정권의 철학적 함의까지 모두 갖춘 정권이다. 우리가 이렇게 완벽한 정권을 수천년래 가져 본 기억이 있었던가. 그런데 거기서 일하는 금융위원회 관료들은 아직도 2016년 6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크라우드 펀딩플랫폼 핀테크를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소멸케 하였고, 2017년 2월 ‘P2P 대출 가이드라인’을 규정하여  P2P금융업의 성장세를 일거에 되돌려 놓았던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모바일결제 시장을 대기업들의 상품권화한 것도 기존 은행과 카드사를 중심으로 진행한 핀테크 혁신의 결과물이다. 인터넷은행을 허가한 것을 대단한 혁신을 한 것인양  떠벌리는 양태는 국내 혁신가들에게 일응 감내하지 못할 모욕감을 주었다. 특정기업에게 은행업을 허가하여 특혜를 준 것이 그 실상임에도, 무언가 했다는 것만으로 기저효과를 누린데 불과하고 핀테크 혁신과는 관련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본 특별법이 영국의 규제샌드박스와 비교하여 어떤 점이 다르며, 혁신을 추진하려는 입법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는지도 아울러 살펴 보겠다.

먼저,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하는 ‘혁신심사위원회’ 구성이다. 혁신심사위원장을 금융위원장이 당연직으로 담당하고(법 제5조 제3항), 나머지 14명까지 임명되는 위원의 자격도 중앙행정기관의 차관, 대학 부교수, 법률가 등으로 규정되어 중앙행정기관의 일반위원회 구성내용과 차별성이 없다. 금융위원장이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하는 업무를 맡고자 위원회 조직으로 구성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혁신금융서비스 사전심사업무를 위원회로 구성한 것이나 금융위원장이 직접 위원장 맡는 것은 지정심사의 신속성, 기밀성, 전문성을 고려하면 타당성을 발견하기 어럽다. 위원장과 위원 구성으로만 보면 제2의 금융위원회라 해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조직은 그 기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의 조직구성을 보면 그 조직의 기능과 활동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규제샌드박스 제도의 목적 중 하나가 혁신적인 핀테크 서비스가 시장에 출시되는데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려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규정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규정이다. 지정신청 후 심사기한을 최대 90일까지 연장할 수 있게 한 것도 위원회 구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금융위원회 전자금융 과장은 법령상 존재하는 규제의 일시적 면제심사라서 금융위원장이 직접 담당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본 특별법 제7조 제1항에서 금융위원회가 혁신심사위원회 심사결과에 따라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취지를 몰각한 주장에 불과하다. 설마 금융위원장님께서 그 자리를 탐(?)하여 지금같은 참사를 빚었을리는 없고 국민에 대한 충성대신 윗선에 대한 충성(?)이 지나친 관료들을 탓할 수 밖에 없겠다. 규제샌드박스를 국가의 국정전반을 아우르는 전략으로 선택한 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부팀(FCA Innovate,  영국)이 담당하고 있다. 지극히 정합성 있는 조직구성이다.

영국, 호주 등 규제샌드박스는 은행, 카드 등  기존 금융업계에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가진 핀테크 기업들을 진입하게 한다. 시장에 진입한 핀테크 기업들은 와해적 혁신을 무기로 기존 금융기관과 경쟁을 촉진하고(It is committed to promoting effective competition in the interests of consumers. Disruptive innovation is a key part of effective competition), 혁신창업을 활성화(growth in financial services)한다. 이를 규제샌드박스 제도의 목적으로 명료하게 규정하고 있다. 
반면, 본 특별법은 입법취지에서만 혁신과 경쟁을 촉진한다고 만연히 언급하고 있을 뿐,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 신청할 수 있는 자를 금융회사와 국내에 주소를 둔 상법상 회사로 한정하고 나아가 실제 주된 대상이 새로운 금융상품을 내놓으려는 기존 금융회사에 있음을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게 규정하였다(제4조 제1항 제1호 및 제2호, 제2조 제1호 내지 제3호). 결국 혁신적인 기술로 무장한 핀테크 기업들이 와해적 혁신을 통하여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금융소비자의 편익을 향상시키려는 입법취지 조차 본 특별법의 구체적인 규정속에서 사실상 폐기되고 말았다. 
지난 정권 3년간 금융위원회는 핀테크 혁신을 창조경제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인 양 선전하였지만 이제 유효하게 살아 남은 핀테크 기업은 열손가락으로도 꼽을 수 있는 반면, 그들의 기술 혁신은 은행, 카드사, 보험사 등 기존 금융회사가 모두 향유하고 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규제해소라는 반사적 이익과 함께. 은행 등 금융그룹들이 지난해까지 매년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고 표정을 관리하는 모습에서, 혁신의 이익이 어떻게 혁신가나 국민을 배신하고 소수에게 귀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규제샌드박스는 혁신 서비스나 비즈니스모델을 ‘ test-and-learn’방식으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혁신서비스나  비즈니스모델에 적합한 맞춤형 규제를 안출하려는 것인 반면, 본 특별법은 기존 금융회사의 금융상품을 기존 규제틀을 적용하지 않고 출시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효과로 상정하고 법을 규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혁신금융사업자는 지정기간 만료 후에 해당 금융관련법령상 인허가 등을 신청할 수 있게 하고(제22조 제1항), 혁신금융위원회가 해당 인허가 등의 요건 중 일부 또는 전부의 충족 여부에 대해 의견을 금융위원회에 제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같은 조 제2항). 다만, 혁신심사위원회는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금융위원회 및 관련 행정기관에 법령의 제 ・개정을 권고할 수 있다고 소극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같은 조 제4항). 규제샌드박스에서 와해적 혁신을 통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핀테크 기업들을 위한  맞춤형 규제를 안출할 수 있는 적극적인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문재인 정부가 혁신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그 첫걸음을 시작하였다. 금융규제해소를 위한 본 특별법은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내용상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후 총5차례에 걸쳐 한국형 규제샌드박스인 ‘금융혁신지원특별법(안)’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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