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다저스와 6년간 390억원 계약

 

<위클리오늘 정창수 기자>
한국 프로야구를 거쳐 최초로 메이저리그 직행
“10년 내 박찬호 124승 기록 깨겠다” 각오

 대한민국의 좌완 에이스 류현진(25)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계약하면서 야구팬들의 눈길이 다시 메이저리그로 대거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 대회에서도 기량을 인정받으며 대한민국 야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성장한 류현진이 마침내 메이저리그에 입성했으니 팬들의 관심이 메이저리그로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것도 6년간 3600만달러(약 389억원)에 이르는 연봉대박을 터뜨리며 31년의 한국 프로야구사에 큰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을 일으켰기에 온 국민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이후 13번째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된 ‘괴물 좌완’ 류현진이 1990년대 ‘박찬호 신드롬’을 과연 재현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
 
스타성을 비교하자면 박찬호와 류현진은 분명 차이가 있다. 박찬호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라는 칭호를 얻었다. 류현진은 국내 야구를 평정하고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루려는 예비 슈퍼스타다. 류현진이 박찬호가 이룬 성적을 뛰어넘을지, 박찬호가 일으켰던 신드롬을 몰고 올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지만 스타성은 충분하다. 한국 프로야구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선수는 류현진이 사상 처음인 데다 한국야구의 위상을 한껏 드높이며 메이저리그 무대로 가는 길까지 활짝 열어젖힌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박찬호와 류현진은 올해 한화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우연치고는 기막힌 우연이다. 박찬호는 이제 은퇴했고, 류현진은 박찬호가 걸었던 길로 막 들어섰다. 류현진이 박찬호 이후 15년만에 미국에서 한국인 신드롬의 주인공이 될지는 내년 봄이면 지켜볼 수 있다. 무엇보다 류현진도 박찬호와 똑같은 선발투수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5일마다 등판하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기다리는 설렘이 있다.
 
박찬호가 풀타임 선발 첫 해였던 1997년부터 자유계약선수(FA) 대박을 터뜨린 2001년까지 그가 등판하던 날 국내팬들은 새벽잠을 설치며 TV 앞에 앉았다. 다저스의 연고지 LA는 한국과 16시간(미국의 서머타임 적용)의 시차가 있다. 다저스가 홈에서 낮경기를 하면 새벽에 일어났고, 야간경기를 하면 오전에 관전할 수 있었다. 팬들은 박찬호가 던지는 이닝 뿐만 아니라 다저스의 공격 이닝도 집중해서 봤다.
 
류현진도 똑같은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데뷔전은 물론이고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마운드에 오를 경우 국내 팬들은 그의 등판날을 손꼽아 기다릴 것임에 틀림없다. 박찬호가 풀타임 선발 첫 해 그랬던 것처럼 내로라하는 강타자들을 삼진을 돌려세우며 인상적인 투구를 이어간다면 류현진 신드롬이 몰아칠 수 있다.
 
박찬호가 등판하던 날 경기가 끝나면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박찬호 이야기가 대화의 기본주제였다. 이제는 류현진이 그 주인공이 될 위치에 섰다. 더구나 TV를 통해 볼 수밖에 없었던 박찬호 시대와 달리 지금은 모바일로 시간, 장소의 제한없이 메이저리그를 즐길 수 있다. 류현진 팬층이 더욱 폭넓게 형성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류현진 자신도 최근 LA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10년 안에 박찬호의 124승 아시아 투수 역대 최다승 기록을 깨뜨리겠다”고 당당하게 호언했다. 
 
그렇다면 류현진이 야구의 본고장 미국땅에서 어느 정도 통할 지가 관심을 모은다. 류현진이 2006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할 당시 감독이었던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기술위원장은 류현진이 미국 무대에서 12승 정도를 올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2009년 감독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류현진을 에이스로 키워냈기에 그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한화 이글스에서 달고 뛰던 99번을 그대로 달게 된 류현진은 내년 2월부터 본격적인 ‘생존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거액을 받고 입단한 만큼 성적으로 그 진가를 입증해야 한다. 아울러 첫해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메이저리그에 연착륙할 수 있다.
 
류현진은 한화에서 데뷔 후 7년간 통산 190경기에서 98승52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2.80을 기록했다. 1269이닝을 던지며 1238탈삼진, 8차례 완봉 포함해 27차례 완투 경기까지 기록했다. 메이저리그가 탐낼 만 했다.
 
다저스의 스프링캠프는 내년 2월13일 차려진다. 투수와 포수가 먼저 미국 애리조나주 캐멀백랜치 스타디움에 모여 몸을 푼다. 야수는 나흘 뒤 합류하는 게 보통이다. 2월24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경기부터 3월말까지 열리는 34차례 시범경기가 류현진의 첫 실전 테스트 무대다.
 
류현진은 우선 체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다. 팀당 133경기인 한국과 달리 메이저리그는 162경기를 치른다. 게다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곳까지 이동해야 한다. 인터리그때에는 시차도 극복해야 한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일찌감치 지쳐 제 기량을 떨칠 수 없다.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는 만큼 류현진은 최대 33~34차례의 등판을 소화해야 한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투구 이닝도 200이닝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류현진은 한국에서 2006년과 2007년 각각 201과 3분의 2이닝, 211이닝을 던졌다.
 
류현진이 초호화 선발투수진을 자랑하는 다저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체인지업을 좀 더 예리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류현진은 미국에서 ‘뚱보 투수’ 데이비드 웰스와 비슷하다는 평을 들었다. 외형 뿐만 아니라 투구 스타일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웰스의 주무기가 각도 큰 커브라면 류현진의 필살기는 예리한 체인지업(changeup)이다. 체인지업은 ‘오프 스피드 피치(off-speed pitch)’라고도 불리며 말 그대로 공의 속도를 줄여 타자의 타격 타이밍을 뺏는 것이 주 목적이다. 직구에 비해 시속이 10~16km 정도 떨어지는 체인지업의 가장 큰 장점은 투구동작이 직구와 같다는 것이다. 직구와 체인지업의 투구 동작이 많이 다를 경우 체인지업의 효율은 크게 저하된다.
 
류현진은 한국에서 체인지업을 앞세워 탈삼진 타이틀을 석권했다. 오른손 타자 바깥쪽에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타자의 타격 타이밍을 무너뜨렸다. 특히 힘은 좋지만 유인구에 잘 속는 빅리그 타자를 제압하려면 체인지업의 각도를 더욱 날카롭게 갈고 닦아야 한다. 일본에서 7년 통산 93승38패, 평균자책점 1.99를 남기고 2012시즌 초 미국으로 건너간 다르빗슈 유(26·텍사스 레인저스)가 빅리그에 데뷔한 올해 평균자책점 3.90을 기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르빗슈도 다양한 변화구를 장착했으나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힘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체인지업이 밋밋하면 장타를 허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류현진은 체인지업을 효과적으로 던지려면 직구 스피드도 함께 높여야 한다.
 
류현진의 목표는 두 자리 승수다. 류현진이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올해 다저스가 속한 내셔널리그에서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둔 투수는 총 16팀에서 46명. 다저스 투수 가운데 클레이튼 커쇼(14승), 크리스 카푸아노(12승), 채드 빌링슬리·조 블랜턴·애런 해렁(10승) 등 5명이 10승 고지를 밟았다. 3~4선발이 유력한 류현진은 최소 10승 이상을 올려야 이름값을 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다저스가 속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는 올해 월드시리즈 우승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필두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콜로라도 로키스 등 다섯 팀이 있다. 다저스는 162경기 중 같은 지구의 팀과 각각 19번씩 총 76차례 격돌한다. 동부·중부지구 팀과 66차례 맞붙는다. 순위 싸움은 같은 지구 라이벌과의 대결에서 갈리는 이상 류현진은 4팀 타자들의 습성을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샌디에이고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팀은 리그 팀 타율 6위 이내 오를 만큼 방망이 실력이 나쁘지 않아 방심은 금물이다.
 
류현진이 첫해부터 돌풍을 일으킨다면 다르빗슈가 올해 작성한 일본인 투수 빅리그 데뷔 최다승(16승) 경신도 노려볼 만하다. 류현진의 뒤에는 애드리언 곤살레스, 헨리 라미레스, 맷 켐프 등 강타선이 버티고 있어 불가능한 기록도 아니다. 한국의 간판 투수와 일본의 대표가 미국에서 선의의 경쟁을 벌일 예정이어서 양국 팬들의 관심도 지대하다. 그보다도 류현진이 2010년부터 3년 내리 가을 잔치에 빠졌던 다저스를 포스트시즌에 올려놓는 데 큰 힘을 보탠다면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할 수도 있다.
 
류현진이 미국무대에서 출중한 기량을 떨쳐야 제2, 제3의 류현진이 나올 수 있다. 류현진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개인의 아메리칸 드림 뿐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류현진을 ‘개척자’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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