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오늘=설현수 기자] 석양의 무법자(원제: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리 반 클리프, 엘리 왈라치/제작: 1966년 이탈리아, 스페인/러닝타임: 150분/나이등급: 15세.

12일 EBS 세계의명화  '석양의 무법자'에서는 기존 서부극과는 달리 신출귀몰하는 영웅 같은 정형화된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며 남군과 북군의 전투는 결코 숭고하지 않고 무의미할 뿐이다. 

떼죽음 당한 병사들의 시신이 널린 전장. 그곳을 바라보는 총잡이는 살인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허무하고 쉽게 죽는 것은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로 참혹하기만 하다.

3명의 메인 캐릭터들은 각각 The Good, The Bad, The Ugly로 상징되지만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돈을 쫓는다는 점에서 이들의 속성은 서로 일맥상통한다. 

이들에게는 남군과 북군의 이념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이득에 따라 어디에나 빌붙을 뿐이다. 

블론디와 투코는 양군이 다리를 놓고 치열한 격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돈이 매장된 장소가 남군 측 진영이라는 이유만으로 군인들의 전쟁터를 다른 지역으로 돌리기 위해 다리를 폭파해버리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북군 하사이기도 한 엔젤 아이스는 군인의 신분임에도 마음대로 부대를 이탈해서 돈을 받고 살인을 저지르고 의뢰인마저 쏴 죽인다. 

영화는 20만 달러를 놓고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통해 물욕이란 절대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이란 점을 강변한다.

# '석양의 무법자' 줄거리

남북전쟁이 한창인 미국. 현상수배범 투코(엘리 왈라치)는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신세. 자신을 습격한 3명의 추적자들을 간신히 해치우고 도망치는 와중에도 한 손에는 먹던 고깃덩어리를 놓지 않는 추잡스런(The Ugly) 남자다. 

엔젤 아이스(리반 클리프)는 의뢰인들의 목숨까지 앗아가며 챙길 수 있는 돈은 다 차지하는 지독한 악당(The Bad)이다. 

그는 어느 날 청부살인을 하러 갔다가 20만 달러라는 거금을 숨겨둔 자의 가명이 ‘빌 칼슨’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한편 또 다른 3명의 추격자들에게 붙잡힐 뻔한 투코는 블론디(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현상금 사냥꾼에서 다시 붙들리는 신세가 된다. 

블론디는 현상금을 받고 투코를 보안관에게 넘겨버린다. 하지만 투코가 교수형에 처해지기 직전, 블론디는 멀리서 총을 쏴서 투코의 목에 걸린 밧줄을 끊어버린다. 

소란을 틈타 도망치는 투코는 블론디(The Good)와 다시 만나 현상금을 반으로 나눈다. 이들은 그런 식으로 현상금을 계속 갈취해 나간다.

한편 엔젤 아이스는 ‘빌 칼슨’이 산타페로 떠났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추격을 계속하고, 블론디와 투코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입장이 완전히 바뀐 상태가 돼버린다. 

투코는 자신을 사막에 내버렸던 블론디를 붙잡은 뒤 다시 사막으로 데려가 자신이 당했던 것과 똑같이 복수를 하려다 우연히 ‘빌 칼슨’을 만난다. 

다 죽어가는 빌 칼슨에게 20만 달러가 숨겨진 공동묘지 이름을 전해들은 투코는 잠시 물을 가지러 간 사이에 빌 칼슨이 블론디에게 묘비명을 얘기하고 죽어버린 사실을 알게 된다. 

20만 달러를 손에 넣으려면 일단은 블론디를 살려놔야만 하는 상황. 결국 투코는 블론디와 함께 20만 달러 추격에 나서지만 곧바로 북군의 포로로 붙잡히는 신세가 된다. 

그런데 이들이 실려 온 포로수용소의 북군 상사이기도 한 엔젤 아이스는 블론디와 투코 일행이 20만 달러의 행방을 알고 있음을 눈치 채고 블론디를 앞세우고 부하들과 함께 묘지로 향한다. 

블론디와 투코는 기지를 발휘해서 이들의 손아귀를 빠져나갔다가 남군과 북군의 치열한 전투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결국엔 묘지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들을 끝까지 추격하던 엔젤 아이스도 묘지에 나타나고 결국 셋은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데...

# '석양의 무법자' 감상 포인트

총잡이 블론디와 범법자 투코가 우연히 20만 달러가 묻힌 묘지를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추격전을 그린 스파게티 웨스턴.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시리즈 <황야의 무법자 (A Fistful Of Dollars, 1964)>, <석양의 건맨 (For A Few Dollars More, 1965)>에 이은 완결판으로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서부영화 하면 떠올리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으로도 유명하다.

‘존 웨인’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고전적인 서부영화는 영웅주의와 개척정신을 내세우며 영웅이 악당을 물리치지만 스파게티 웨스턴의 대표작에 해당하는 '석양의 무법자'에서는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 

오로지 20만 달러에 달하는 돈만이 이들이 싸우는 이유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기존 서부극의 형식을 빌어 미국의 자본주의가 완성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영화의 배경인 남북전쟁을 ‘노예 해방 전쟁’이 아닌 산업화 과정의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자본주의의 속성으로 보고 있다. 

블론디와 투코, 엔젤 아이스를 각각 자본가와 노동자, 불로소득을 취하려는 악당으로 대입시킨다면 서부극 최고의 명장면으로 손꼽히기도 하는 최후의 대결장면에 담긴 감독의 또 다른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굳이 비평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더라도 영화 '석양의 무법자'는 충분히 재미있다. 

각 캐릭터들은 결코 평면적이지 않은 모습을 선보이는데, 주인공에 해당하는 잘생긴 블론디가 조연급에 해당하는 못생긴 투코에게 사막에서 온갖 고초를 겪는 장면은 기존의 서부극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파격이다. 

또한 남군과 북군의 대규모 전투씬은 기존 전쟁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스펙터클하며 마지막 결투장면과 그 이후의 결말은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국내에서도 1960~70년대에 서부극을 한국식으로 풀어낸 ‘만주 웨스턴’이란 장르의 영화들이 만들어졌는데 2008년에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만주 웨스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은 본 작품에 대한 강렬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 '석양의 무법자'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Sergio Leone / 1929-1989)

'석양의 무법자'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는 이탈리아 로마 출생으로 무성 영화감독인 빈센조 레오네의 아들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영화계에 입문했다. 

2차 대전으로 황폐화된 유럽 영화산업이 그 주도권을 미국에 내준 시점에 유럽에서 작업하던 많은 미국영화의 조감독으로 감독 경력을 시작했다. 1960년 <오드의 투기장 (The Colossus Of Rhodes, 1960)>이란 작품으로 연출가에 데뷔 했으며 ‘스파게티 웨스턴의 탄생’을 알린 <황야의 무법자 (A Fistful Of Dollars, 1964)>로 시작해서 <석양의 건맨 (For A Few Dollars More, 1965)>,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 <옛날 옛적 서부에서 (1969)>등의 작품으로 미국식 영웅 신화를 깨트리는 자신만의 작품세계로 확실히 자리잡는 데 성공한다. 

이후 <옛날 옛적 서부에서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1968)>와 <석양의 갱들 (A Fistful Of Dynamite, 1971)>을 발표한 뒤 오랫동안 은둔에 들어갔다가 1984년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라는 그의 최대 걸작을 발표한다. 

스파게티 웨스턴 전문이라는 오명을 떼어버리게 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미국으로 건너온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삶을 4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 동안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독특한 편집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후 등장한 어떤 작품도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필름누아르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그는 ‘옛날 옛적 러시아에서’라는 프로젝트로 러시아혁명을 담아내려고 했지만, 1989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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