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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탐방] 소설 ‘상록수’ 주인공을 닮은 사람…함양·산청 농민운동가 박종호 ②

“지역발전을 위해 책임있는 일을 고민 중이다”

문화·역사 담은 스토리텔링으로 마을 살리기에 전력

문화 도록(都錄) 살피다 고려 대학자 목은(牧隱) 선생 흔적 찾아내

2017년 11월 유림면에서 열린 '해피빌리지마을' 추진 회의. 군·면 관계자 등과 박종호 국장이 사업 추진을 위해 회의를 하고 있다.

[위클리오늘=김국동 기자] 지리산 품속에 안겨있는 함양군에 심훈(본명 심대섭) 장편소설 ‘상록수’의 주인공인 ‘채영신’을 닮은 이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함양을 찾았다.

녹음이 짙은 지리산을 안고 도는 엄천강 풍광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듯 유림면 함허정(涵虛亭) 앞에 다다른다.

엄천강의 급하던 물살은 이곳에 이르러 오뉴월 밝은 햇살을 담아내는 맑은 명경(明鏡)이 된다. 여름을 담은 거울 속엔 물잠자리 떼가 사랑을 속삭이고 옥수수가 흰구름 그늘에서 키재기를 하고 있다. 마치 심훈의 장편소설 ‘상록수’의 배경 속에 들어온 듯하다.

소설 ‘상록수’는 1935년부터 ‘동아일보’에 연재된 일제강점기 대표 농촌계몽소설이다.

저자는 농촌 계몽 운동가 두 남녀의 순결한 애정과 이들의 농촌 계몽을 위한 헌신적 의지를 담아 당시 지식인의 관념적 농촌운동과 일제의 경제적 침탈을 비판했다. 이로써 현실 정세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과 극복이란 요소를 실천하자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마침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 닮은 이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함양에서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한우 아버지’ 박종호(57)씨와 그의 아내 김성숙씨를 만났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느낀 점은 농촌과 축산업에 대한 관심과 열의, 지역문화와 역사에 대한 애정을 듬뿍 가진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 그 자체였다.

유림면 발전협의회 사무국장 소임을 맡고 있는 그는 40도에 육박하는 찜통 더위 속에서도 ‘상록수’ 주인공 남녀처럼 아내와 함께 200두가 넘는 한우를 돌본다고 구슬땀을 흘리며 여념이 없어 보였다.

박 국장은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축산업에 대한 도전을 염소 30마리와 한우 2마리를 가지고 시작했다. 2년 정도 지나면서 낙농업에 대한 자신이 생기자, 경기 포천에서 젖소 송아지 22마리를 사들여 본격적으로 축산업에 접어들었다.

박 국장은 이 과정에서 낙우회, 농민회, 농업경영인회에 참가하면서 점차 사회의 현실적인 면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여러 단체에도 꾸준히 참여하면서 축산업과 사회생활을 병행했다.

박 국장은 이에 대해 “나 혼자가 아니라 농민들이 같이 잘 살아야 지역이 잘 산다는 마음이 절실했었고, 무엇으로 농촌의 소득을 올릴까 무척 고민하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특히 2008년 정부로부터 산청 생초면 대포마을이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게끔 마을공동체의 씨앗을 뿌린 이가 바로 박 국장이다. 총 사업비 2억 원을 지원받아 마을공동 체험장, 민박, 농가식당, 농산물 판매장 등 농촌체험 공간으로 조성되는데 주된 역할을 해왔다.

뿐만 아니라 산청군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동의보감촌’도 그의 노력과 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최고의 힐링휴양지로 일컬어지는 경남의 명소 ‘동의보감촌’도 처음엔 경남약초작목반의 소규모 조직에서 시작됐다.

당시 회원은 박 국장을 비롯해 산청에서 10명, 함양에서 1명밖에 되지 않는 미약한 조직이었지만 여기서 시작된 생각들이 ‘산청한방테마파크’라는 큰 보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산청군에 생기를 불어넣고 지역경제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동의보감촌은 산청군의 새로운 관광수입 블루칩으로 각광받고 있다.(전편 요약)

박종호 국장에게 산청군에서 함양군으로 이사 온 연유를 물어봤다. 2002년 ‘루사’ 태풍에 그가 사랑과 노력을 쏟아 붓던 농장도 모두 물에 잠기게 됐다.

박 국장은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마을 정리를 하고 있다가 정작 내 축사가 물에 잠긴 줄도 몰랐다”고 덤덤히 그 때를 회상했다.

자신의 농장이 물에 잠긴 것은 이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강가에 있던 대포마을은 불어난 강물에 다리가 유실돼 고립된 와중에 4일 간 전기도 끊기는 등 최악의 피해를 봤다.

태풍 ‘루사’가 한반도에 끼친 손실은 당시 5조4696억 원으로 역대 태풍 중 재산상 가장 큰 피해를 준 태풍으로 기록됐다.

박 국장은 대포마을 등이 특별재해지역 지구로 지정되기 위해 주민들과 군청을 항의 방문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행히 재해지구 지정으로 지역민들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박 국장은 낙동강특별법에 따라 하천 근처에 더 이상 축사를 짓지 못하게 되면서 2005년 생가 근처인 함양 유림면 국계마을에 정착하게 됐다.

그는 이곳에서도 주민들로부터 열정을 인정받아 유림면 청년회장을 지내고, 유림면 발전협의회 사무국장과 유림초등학교 운영위원장, 해피빌리지마을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유림면은 함양의 읍면 가운데 면적이 가장 작은 지역이다. 서쪽으로는 화장산 줄기가 경계를 이루고 동남쪽으로는 강이 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유림면은 명승유적 하나 없고 유원지도 없는 곳이다. 함양읍으로 나오는 교통이 불편하고, 예전에는 중학교 학군도 인접 타군 산청에 편입될 정도로 낙후된 곳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박 국장은 청년회장을 맡으면서 빈약한 유림면을 어떻게든 사람들이 찾을 수 있게 만들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

박종호 국장이 목은 이색 선생 탐방길 이정표 앞에서 설치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박 국장은 두 발로 직접 뛰면서 결국 유림면 국계마을이 고려왕조 말기 목은 이색 선생 등 명인들이 머물러 살기도 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그는 이 점에 착안해 목은 선생의 국계 우거(寓居) 흔적을 되살리는 일을 추진했다.

박 국장은 “돈 안들이고 유림면을 쉽게 살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다가 문화와 역사를 생각하게 됐다”며 “스토리텔링을 찾기 위해 문화도록을 살피다 국계마을이 목은 선생이 서재터와 낚시를 즐기던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국계(菊溪)는 제계(蹄溪)라고도 한다. 제계마을은 고려 말기 목은 선생이 마을에 은거하면서 서재를 짓고 제계서재(蹄溪書齋)라고 한데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목은 선생은 고려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삼은'은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선생을 일컫는다. 포은과 야은 선생은 모두 목은 선생의 제자였으며 조선의 정도전, 하륜, 윤소종, 권근 등도 그의 제자였다. 김종직, 변계량은 목은의 학문을 계승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유림면 청년회는 국계마을을 중심으로 목은 선생의 제계서재, 낚시를 다닌 길, 낚시터, 목은 들[野]의 표지와 안내판을 만드는 등 향토역사 발굴에도 노력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박 국장은 유림면 특화를 위해 ‘함양웰촌체험관광 사업계획서’를 만들기도 했다. 여기서 착안한 것이 2015년 시작된 유림면 화장산 산나물 축제다.

앞서 박 국장은 산나물·축산업 등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2014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창업대학원에 등록해 1학년 과정을 마쳤다. 열정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지식으로 지역을 위해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가까운 지인들과 함양·산청 군의원들은 이런 그를 두고 “늘 변치 않고 농촌과 지역만을 생각하는 ‘상록수’ 같은 사람이다”라고 귀뜸했다.

박 국장은 “인생을 나쁘게 살지는 않은 것 같다”며 “지역발전을 위해 ‘뭔가 책임있는 일을 해야하지 않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담을 끝내고 ‘부자 농촌’ 만들기에 전력투구하는 '마을 머슴' 마을 공동체의 씨앗을 뿌리는 '농촌운동가' 축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우 아버지’ 박종호 국장과 헤어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함양·산청군에 상록수 주인공 같은 박 국장이 있다는 게 그들로서는 큰 행운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농장을 떠날 때 갑자기 장대같은 소나기가 퍼부었다.

때마침 내린 단비로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폭염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이 비가 그치고 폭염이 또 기승을 부리겠지만 그 때는 또다시 세찬 소나기가 목마른 대지를 다시금 적셔줄 것이다.

마치 박종호 국장처럼...

김국동 기자  kkd@one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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