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대법원 판단 이후 14년 만에 판례 변경

▲ 대법원. <사진=뉴시스 제공>

[위클리오늘=강인식 기자]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입영을 기피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병역기피의 정당한 사유로 '양심'을 인정하지 않았던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이후 14년만에 그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모(34)씨의 상고심에서 대법관 다수 의견으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개인의 양심과 종교적 신념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는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본 첫 판단이다.

재판부는 "국가가 개인에게 양심에 반하는 의무 이행을 강제하고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가하는 것은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이 경우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감수하지 않는 이상 내면적 양심을 포기하거나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를 파면시켜야 하는 상황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병역의무 불이행에 따른 어떤 제재도 감수하겠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며 "이들에게 집총과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를 강제하고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위협이 된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한 과정에서 피고인의 가정환경, 학교생활, 사회경험, 삶의 모습 등도 아울러 살펴봐야 한다"며 "이 사건에서는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오씨는 2013년 7월에 현역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입영일로부터 3일이 지나도록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오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법정에서 "종교적 양심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것으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병역법 제88조 제1항은 현역 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불응하면 '3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심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정당한 입영 기피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2심도 "종교적 양심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하는 것이 병역법 88조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1심과 같이 유죄로 판단했다.

그동안 법원은 병역법 88조1항을 근거로 종교적·정치적 사유 등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것은 처벌된다고 봤다. 개인의 양심이나 종교에 따른 병역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급심도 종전 판례를 인용해 병역법 시행령상 병역 면제가 되는 최소 실형인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는 정형화된 판단을 해왔다. 하지만 2004년부터 하급심에서 무죄 선고가 나오면서 대법원의 판단을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잇따랐다.

또 헌법재판소가 지난 6월28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이번 선고가 전향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 왔다.

이번 판결로 향후 대법원과 하급심에서 진행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들도 같은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1일 기준 대법원에 계류 중인 관련 사건은 현재 227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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