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배터리·윤활유 사업다각화...고도화·시설보수 등 생산효율 제고

▲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 4사 실적 합계. <자료=각사 분기보고서>

[위클리오늘=문영식 기자]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 이른바 정유빅4는, 유가 고공행진에 힘입어 최근 3년 동안 전에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이들은 최근 오히려 이전보다 더 진지하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한다.

정유사업은 업종 특성상 유가나 정유마진 등 외부환경에 크게 노출될 수 밖에 없는데, 최근 업황이 좋을 때 이러한 구조적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라는 업계의 설명이다.

■ 최근 3년간 유가 상승세...정유빅4 역대 최고 이익 실현

▲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오피넷

한때 배럴당 100 달러를 넘나들던 유가가 2014년 1 년여 만에 20 달러대까지 5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중동지역의 정쟁과 미국, 러시아의 정치적 대립이 큰 이유였다.

당연히 정유사들의 영업도 크게 감소해서 분기마다 1조원 내외의 이익을 내던 정유4사는 2014년 4분기에 1조 원이 넘는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2015년 시무식에서 정유4사 CEO들은 직원들에게 비장한 신년사를 전하며 뼈를 깎는 고통을 주문했다.

2015년부터 유가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정유4사의 영업실적도 급상승해서 2015년에는 흑자로 돌아섰고, 2016년에는 회사마다 역대 최고 이익을 내며 4사 합계 7조9153억 원의 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7조8697억 원으로 8조원 가까운 이익을 냈다.

올해도 3분기까지 5조8천억 원의 이익을 내며 연간 8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특히 올해는 지난 2년간의 대규모 이익에도 좀처럼 상승세를 타지 못했던 매출도 큰 증가폭을 보이고 있다.

정유4사가 2015년부터 올해 3분기까지 실현한 누적 영업이익은 25조원에 육박한다. SK이노베이션이 10.8조원, GS칼텍스가 5.3조원, S-OIL이 4.8조원, 현대오일뱅크가 3.7조원 등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 “호황에 안도하면 안된다”...사업다각화, 생산효율 제고에 전력투구

역대급 이익실현으로 마음이 느긋해 질 듯도 하지만, 정유사들은 이때가 아니면 사업다각화나 생산효율 제고와 같이 많은 자금과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을 다시 못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회사마다 지난 4년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 규모를 넘어서거나 그 규모에 육박하는 자금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유가변동 따라 분기마다 들쑥날쑥하던 사업구조를 이번 기회에 안정화시킨다는 의지로 이해된다.

▲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 연구원이 배터리 연구설비를 응시하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최근 4년 동안 10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실현한 SK이노베이션은 앞으로 3년 동안 최소 10조 원의 자금을 사업다각화에 투입키로 했다. 그동안 번 돈을 모두 미래에 투자하는 셈이다.

SK이노베이션 김준 사장은 “차세대 먹거리로 배터리·화학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회사를 지속 성장이 가능한 구조로 변화 시키겠다”며 “이를 위해 배터리·화학 등 비정유사업에 2020년까지 1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1년 SK에너지, SK종합화학 등의 분사와 2013년 SK인천석유화학,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설립으로 SK루브리컨츠 등과 함께 정유, 화학, 배터리, 윤활유 등의 사업다각화를 추진해 왔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1월 14일 폭스바겐과 전기차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앞으로 SK이노베이션의 미국과 유럽 공장에서 생산하는 전기차 배터리가 폭스바겐을 통해 미국과 유럽 전기차에 장착될 예정이다. 회사는 이를 위해 헝가리와 미국, 중국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해서 모두 20GWh에 달하는 배터리 공장 글로벌 체인을 완성할 계획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화학사업에서 1조3772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역대 최고실적을 달성했고 윤활유도 5049억원의 이익을 냈다. 올 3분기 잠정실적 발표에 따르면 회사전체 영업이익에서 비정유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66%로 늘어났다.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유가변동의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사업구조를 갖춰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최근 상업생산을 시작한 S-OIL 올레핀 하류 시설 설비. <사진=S-OIL>

지난 4년 동안 4.8조 원의 영업이익을 실현한 S-OIL은 지난 9일 그동안 총 4.8조 원을 투입한 잔사유 고도화 시설(RUC)과 올레핀 하류시설(ODC)을 본격적으로 상업가동했다.

또, 다음 단계 프로젝트를 위해 울산 온산공장 부지 40만㎡를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매입했으며 2023년까지 총 5조원 이상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2016년부터 진행된 창사 이래 최대 프로젝트에 대해 업계에서는, S-OIL이 새로운 수익성과 경쟁력을 갖춰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S-OIL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정유분야에 치중됐던 사업구조를 석유화학으로 분산하고 기존 석유화학 비중을 14%에서 19%까지 확대해서, 진정한 ‘사업다각화’를 이룰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상업생산에 돌입한 RUC 시설은 원유정제 후 남은 ‘원유 찌꺼기’를 프로필렌, 휘발유와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는 시설이다. 이를 통해 정유원가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ODC 시설은 RUC를 거쳐 생산되는 프로필렌을 통해 폴리프로필렌(PP), 산화프로필렌(PO) 등을 만들어 내는 시설이다. PP와 PO는 전자제품, 단열재, 자동차 범퍼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어 S-OIL은 자동차부터 가전제품,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등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S-OIL관계자는 “사업포트폴리오 확대를 통해 유가 변동에 대한 영향을 줄이고 회사 영업실적을 안정화할 계획”이라며, “이뿐만 아니라 건설과정 중에 연평균 270만 명, 상시 고용 400명 이상의 인원이 동원될 예정으로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전경. <사진=현대오일뱅크>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5월 자회사인 현대케미칼을 통해 올레핀과 폴리올레핀 등 신 사업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케미칼은 2021년까지 총 2조7천억 원을 투자해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을 생산할 수 있는 HPC(Heavy Feed Petrochemical Complex) 공장을 건설한다.

원유정제 후 남은 ‘원유찌꺼기’를 주 원료로 사용하는 HPC는 정유 부산물을 60% 이상 투입해 원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하는 시설이다. 이정도의 시설은 현대오일뱅크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3개 정유사만 생산하는 희소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부산물 투입 비중을 8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이에 앞서 정유분야 효율성 강화를 위해 2017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총 800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 중 2400억 원이 투자된 SDA (Solvent De-Asphalting) 공정도 지난 8월 완공했다.

이밖에도 올해 정기보수 기간 중 원유정제시설과 고도화설비의 증설도 마무리해서 고도화율을 40.6%까지 높였는데 국내 정유사 중 40%대 고도화율을 달성한 것은 현대오일뱅크가 처음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이러한 생산효율 제고와 함께 그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사업다각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2014년 쉘과 합작 설립한 현대쉘베이스오일을 통해 윤활기유 사업에 진출했고, 2016년에는 현대케미칼 혼합자일렌을 통해 아로마틱 석유화학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또 올해 2월부터는 OCI와 합작한 현대오씨아이 공장을 준공함으로써 카본블랙 사업에도 진출했다.

회사는 이렇게 사업영역을 확장해, 비정유부문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유가변동에 선제적으로 대비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오일 관계자는 “2015년 이전 10% 미만에 머물던 비정유부문 비중은 2017년 30% 대까지 높아졌다”면서 “올해 착수한 HPC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2022년에는 이 수치가 45%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까지 최근 4년 동안 전례 없는 이익을 낸 정유사들이 벌어들인 이익을 사업안정성 강화와 미래먹거리 창출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연 정유사들의 이런 노력이 수시로 요동치는 유가변동으로부터 정유사들의 경영실적을 안정적으로 지켜낼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진다.

저작권자 © 위클리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