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미쓰비시중공업 상대 근로정신대 피해자 손배소송 원고 일부승소 판결

▲ 지난해 8월11일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김재림씨와 고 오길애씨의 동생 오철석씨가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위클리오늘=정상우 기자]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를 동원한 미쓰비시중공업은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의 이같은 판결은 근로정신대 관련 소송에 대한 첫 판단이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29일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87)씨 등 5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양금덕씨 등은 제국주의 일본의 노동력 조달 정책 기조가 한창이던 1944년 5~6월 일본 나고야의 미쓰비시 항공기제작소 공장에서의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당시 이들은 14~15세에 불과한 소녀들이었는데, 학교 등으로부터 '일본에 가면 일하면서 돈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꼬임을 받아 일본으로 넘어가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양금덕씨 등은 공장에서 비행기부품에 페인트칠을 하거나 금속판에 비행기부품을 그려 나르고, 긴 파이프에 천을 꿰매는 등의 단순하거나 힘든 노동에 내몰렸다. 작업중에는 곁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작업환경은 열악했으며, 일본인 감독자로부터 구타를 당한 일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1944년 12월7일 발생한 동남해지진으로 사망하거나 크게 다치는 일도 있었다. 그 뒤 이들은 1945년 다른 공장으로 옮겨져 노동하다가 같은 해 8월15일 일본이 패망한 뒤 귀국했다.

조국에서 이들은 상당기간 근로정신대를 일본군 위안부와 혼동하는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자신의 피해를 알리지 못하고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그러던 양금덕씨 등은 1993년 3월 일본 나고야지방재판소에 미쓰비시측을 상대로 1인당 3000만엔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하지만 2005년 2월24일 나고야지방재판소, 2007년 5월31일 나고야고등재판소, 2008년 11월11일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모두 패소했다.

이후 양금덕씨 등은 다시 2012년 10월24일 광주지법에서 국내 소송을 시작했다. 이는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강제징용 소송을 원고 일부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한 2012년 5월24일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에 제기된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봤다.

1심은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소녀들은 학교에 보내주고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거짓말에 속아 고향을 떠나야 했고 일본에서 비인격적인 대우와 가혹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며 미쓰비시중공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 양금덕씨 등 원고들이 8000만~1억5000만원 및 지연손해금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2심은 원고승소 판단을 유지하면서 근로정신대와 군위안부 혼동에 따른 정신적 피해 부분을 비롯한 여러 사정을 고려해 미쓰비시가 양금덕씨 등 피해자들에게 줘야할 금액을 1억208만~1억2000만원으로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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