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오늘=김인환 기자] 적산불하(敵産拂下) 기업.

일제가 패망했을 당시 일본이 미처 처분하지 못한 남한 내 생산·산업 시설들을 이승만 정부가 환수, 몇 안되는 민간인에게 헐값에 넘긴 기업을 뜻하는 말이다.

이렇게 탄생한 적산불하 기업은 60년대 이후 군사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정경유착으로 몸집을 불려 재벌의 기원이 되기도 했다.

해방 당시 연 40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연 0~7%, 10~15년 상환 조건으로 기업을 불하한 것은 그야말로 ‘공짜’로 준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적산기업을 불하받은 이들은 대게 ▲해당 기업의 경영진·관리자 출신 ▲해당 기업에게 금원을 빌려 준 사람 ▲일제강점기 관료, 은행가, 기업가 등이다.

이들 대부분은 친일부역자였고 이승만 정부가 이들에게 대놓고 특혜를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대부분 그렇게 시작됐다. 공짜로 얻은 막대한 재산과 기술을 활용, 손대는 족족 더 큰 부를 축적해 갔다. 아마도 빈부격차, 정경유착의 시작점이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현대사에서 이 기업들이 이룬 공을 무시할 수는 없다. 황무지였던 남한을 세계 경제10위권 국가 반열에 들게 한 노고에 대해서는 오히려 고맙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사회를 위해 베푸는 이타(利他) 정신을 기대할 일은 별로 없는 듯하다.

이승만 정권의 적산기업 불하 이후 군사 정권을 지나면서 수 많은 정·경 유착이 있었고, 숱한 비리가 세상에 드러날 때마다 도마에 오른 기업들은 '사회기부 형식으로 금원을 환원하겠다'며 위기를 모면해 왔다.

특히나 '4대강 사업' 당시 담합 혐의로 철퇴를 맞았던 건설사들이 보여 준 행태는 그야말로 탐욕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해당 건설사들은 행정제재 이후 공사수주가 힘들어지자 박근혜 정부에게 2000억원 규모의 사회공헌기금 출연을 자진 약속하며 사면을 요청, 결국 이를 받아내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건설사들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4대강 사업에 투입된 혈세는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남았다.

최근 윤호중 의원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수년 간 해당 건설사들의 약속 이행률은 고작 3% 수준인 62억원에 그치고 있다. 심지어 당시 적발된 70여 개 건설사 중 50여 개 건설사는 아예 한 푼도 내지 않고 버티고 있다.

업계 상위 10대 건설사들 상당수는 적산불하 기업의 DNA를 물려받았거나 정·경 유착이나 담합으로 덩치를 키워 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자진 출연금 납부현황을 보면, 삼성물산 10억원, 현대건설 14.8억원, 대림건설 3억원, 대우건설 10억원, GS건설 7.9억원, 현대ENG 3.8억원, 포스코건설 3억원, 롯데건설 3억원, SK건설 2억원, 현대산업개발 2억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사면 이후 이들은 공공공사 부문에서 약 12조원, 해외공사 부문에서 약 600억 달러(한화 약 66조원) 이상의 수주실적을 기록했다. 여기에 민간공사 부문까지 더하면 총 190조원에 이른다.

국내·외에서 약 190조원에 이르는 실적을 올리는 동안 고작 62억원을 납부해 놓고도 해당 건설사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경기가 바닥이어서 돈이 없습니다.”

문제는 사면에 대한 반대급부로 맹약한 사회공헌기금 출연 약속의 무의미한 납부실적과 의지부족으로 사회공헌재단이 흐지부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는 점이다. 기금출연은 강제조항이 아니므로 버티면 그만이라는 얄팍한 인식이 낳은 참극이다. 

여측이심(如厠二心)이라고 했던가? 화장실 갈 때와 올 때 마음이 다르긴 다른 모양이다.

적산불하 기업. 공짜로 얻은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태생적으로 사회공헌에 대한 채무를 지니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건설산업사회공헌재단' 실상에 대해 문제 제기한 윤호중 의원의 의미 있는 후속조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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