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석 전 고양시장

[위클리오늘신문사] 감정평가사는 동산이나 부동산, 기타 재산의 경제적 가치를 감정하여 그 결과를 가격으로 표시하는 일을 하는 전문가이다.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용지의 취득이나 손실 보상을 위한 평가를 할 때는 이들에게 감정을 의뢰하도록 되어 있다.

감정평가사의 임무가 이처럼 중대하므로 감정평가사는 무엇보다 평가 업무에 철저한 '공정성'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 2015년 한국국제전시장 내 ‘업무시설’ 용지 감정평가서를 보면서 감정평가법인이 평가한 결과를 그대로 믿어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성 전 고양시장 재임 중에 고양시는 ‘과도한 고양시의 실질부채’를 갚기 위해 한국국제전시단지(킨텍스) 내 업무시설을 두 개의 감정평가법인에 토지 감정을 의뢰했다.

1만 2800여 평에 이르는 국제전시단지내 업무시설은 2012년 10월 토지 감정 결과 평당 1100만원으로 감정평가돼 2009년 평당 감정가 1600만원보다 평당 500만원이나 낮게 평가되었고, 이 가격으로 업무시설이 매각됐다.

당초 300세대 미만까지 허용했던 아파트를 1100세대 이하로 800세대나 늘려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오피스텔 이외 업무시설의 지상층 연면적을 25%에서 12.5%로 완화(용적률은 800%이하에서 690%이하로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혜택이 주어졌음에도 이렇게 낮은 가격으로 평가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소속 최성 전 고양시장 재임 중에 고양시는 업무시설은 감정평가사가 평가한 결과에 따랐을 뿐, 싸게 팔 아무런 이유도 없었고 그에 따른 아무 잘못도 없었다고 항변했다.

업무용지를 평가한 모 감정평가법인은 2009년에 비해 부동산 가격이 많이 하락하면서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었고, 당해 부지 면적이 너무 크기 때문에 낮게 평가가 되었을 따름이지 시(市)가 낮게 평가해 달라고 요청한 적은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근 업무시설용지(S1)는 2009년 매각공고가 598억원이었던 것을 2012년 596억원에, 2단계복합시설용지(C1)는 2009년 매각공고가 1175억원을 2013년 1014억 원으로 매각 공고할 정도로 거의 가격 변화가 없었다.

감정평가법인이 평가에 참고한 국제전시장 인근 아파트 가격은 2009년에 비해 2012년에는 18.7% 하락했는데도 국제전시장업무용지는 25.5%나 낮게 평가되고 매각됐다.

즉, 실제 인근 아파트의 실거래가보다도 6.8%나 낮게 팔린 것이다.

이 대명천지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모 감정평가법인이 주장하는 대로 평가를 제대로 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두 평가법인의 감정평가서를 구해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두 평가서가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지 않은가!

A평가법인의 평가서는 46페이지였고, B평가법인의 평가서는 40페이지였는데, B평가법인의 평가서와 A평가법인의 평가서는 1페이지의 평가개요만 약간 다를 뿐 나머지는 거의 완벽하게 똑같았다.

B평가법인은 A평가법인의 평가서를 도면 1면을 포함한 5개 면을 삭제하고 항공사진과 전경사진만 다르게 작성했을 뿐 나머지 부분은 거의 완벽하게 똑같이 만들었다.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약간은 미안했던지 서술어 중 ‘평가하였음’을 ‘평가하였습니다’ 정도로 고쳤을 따름이었다.

그러면서 가격 산정을 똑같이 할 수는 없었던지 지역 요인비교와 개별 요인비교는 똑같이 작성하고는 ‘비고’란만 약간 달리 기재하여 평가액에 약간의 차이가 나도록 만들었다.

즉, A사는 당시 ‘일산서구의 최근(2,3년) 부동산 가격 하락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열세임’이라고 ‘비고’란을 기재했으나 B사는 ‘일산서구의 최근(2,3년) 부동산 가격 추이에 비추어 약 15% 기타조건 하락 요인치가 발생합니다’로 기재했다.

이렇게 하여 산정한 토지가격은 A사가 ㎡당 산정단가 338만327원, 결정단가 338만원으로 평가가액이 1443억8853만원이었고 B사는 ㎡당 산정단가 334만1021원, 결정단가 334만원으로 평가가액이 1426억7979만원이었다.

평소 잘 아는 감정평가사에게 이렇게 해도 되느냐고 물어 보았다.

당연히 그래서는 안 될 것이지만 평가서를 작성하는 틀에 맞추다 보면 비슷할 수는 있어도 그렇게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똑 같게 작성했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B평가법인이 A평가법인의 평가서를 베꼈을 것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것은 6페이지의 도표 하단에 ‘2004년도까지 통계는 분구(分區) 전 일산구 전체 통계입니다.’라는 부분이다.

일산구 전체 통계가 아니라 고양시의 통계였던 것이다. 잘못 기록한 것 까지 그대로 옮겨 쓴 것이다.

최성 전 고양시장 재임 당시 고양시는 한국국제전시장 내 ‘업무시설’ 용지에 대한 감정평가서를 납품받으면서 이것을 제대로 검토했는지, 두 평가서가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똑같았다는 사실을 알고 납품받았는지 반드시 밝혔어야 했다.

두 감정평가서가 이렇게 똑같은 것을 알았다면, 그 감정 결과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함께 명명백백(明明白白) 밝혔어야 했다.

한국국제전시장 내 ‘업무시설’ 용지를 감정한 감정평가법인 또한 평소 토지나 건물을 감정하면서 함께 평가 업무에 참여한 다른 업체의 평가서를 이처럼 베껴서 제출했는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왜? 한국국제전시장 내 업무시설 용지평가서는 이렇게 거의 완벽하게 똑같게 만들어 납품했는지 꼭 밝혔어야 했다.

과거 고양시는 감정평가 결과에 따라 업무 용지를 팔았으므로 아무 잘못이 없다고 강변했다.

감정평가서를 납품받고 조금만 신경 써서 평가서를 비교해 보았다면 두 평가서가 거의 완벽할 정도로 똑같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는데도,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업무시설 감정평가를 한 법인에 고양시는 각각 6500만원씩 지불했다. 그렇다면 B사는 단순히 ‘베끼기’만 하고 6500만원이라는 거금을 챙긴 것이 된다.

그런데 B사는 어떻게 A사가 작성한 평가서를 입수하고 그렇게 베낄 수 있었을까?

A사와 B사가 그렇게 하기로 사전 공모를 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A사의 평가서를 B사에 그대로 넘겨주었을까? 이것은 범죄행위가 되지는 않는가? 의문은 끝없이 남는다.

이 의문을 그냥 의문으로 계속 남겨 두어야 하는 것일까? / 강현석 전 고양시장 

* 본 기고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견해(주장)임을 밝히며, 위클리오늘의 편집 방향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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