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돌풍의 핵 <광해> 매력 해부

▲ <광해> 주요 장면들.

‘희대의 폭군’인가, 아니면 ‘불운의 성군’인가. 극과 극의 역사적 평가를 받는 조선 15대 왕 광해군이 400년 시공을 넘어서 스크린으로 부활했다. 그런데 21세기에 등장한 광해군의 위세가 심상치 않다. 벌써 300만 명이 넘는 ‘백성’이 그를 ‘알현’했고, ‘왕궁’으로 향하는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다름 아니라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이야기다. 

몇 줄의 역사적 사실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팩션 사극에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사실 광해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우려먹은 소제거리다. 장르는 달라도 그 내용은 흡사했다. ‘성군의 자질을 지녔으나 극심한 정쟁과 역모 등을 겪으며 폭군으로 전락한 왕’ 정도다. 그렇다면 또 다시 등장한 ‘익숙한 광해군’에게 관객들이 바짝 다가가는 이유는 대체 뭘까. 이 영화에는 과거의 광해에겐 없던 ‘무언가’가 살아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천민 ‘하선’ 통해 진정한 왕 모습 그려
       탄탄한 플롯, 빼어난 연기로 흥행 견인

왕자 시절 광해는 누구나 인정하는 왕의 재목이었다. 임진왜란 때 적잖은 공을 세운 광해는 1608년 왕좌에 오르며 선정을 펴는 듯했다. 하지만 극심한 정쟁에 휘말리고, 도처에서 암살과 역모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희대의 폭군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데 ‘비사’(秘事)에 따르면 15년의 재위 기간 중 어느 15일간 그는 전에 없던 성군의 모습을 보였다. 

궁 내 가장 아랫사람들의 안위까지 두루 살폈고, 백성 스스로 노비가 되고 기생이 될 수밖에 없는 현세에 개탄했다. 왕위를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된 왕이 아니라 민생을 자기 일처럼 염려하는, 말 그대로 조선이 꿈꿔온 왕이었다. 

근거가 있는 이야기일까. 광해군 8년 2월 28일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일기’에는 이러한 글귀가 남아 있다.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조보)에 남기지 말라 이르다.” 이 ‘어명’과 함께 조선왕조실록에서 광해군 15일간의 미스터리 행적은 영원히 사라졌다.

      ‘사라진 15일’이 모티브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바로 이 한 줄의 글귀에서 비롯된다. 역사에서 사라진 광해군의 15일간의 행적을 놓고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광해군의 대리 역할을 했던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는 참신한 설정을 세웠다. 

영화는 독살 위기에 놓인 ‘광해’를 대신해 천민 ‘하선’이 왕의 대역을 맡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왕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천민이 진정한 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다채로운 재미와 함께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광해와 하선 사이를 오가며 1인2역을 훌륭하게 소화한 이병헌의 연기도 깊은 잔상을 남긴다. 

저잣거리에서 무능한 조정과 부패한 권력을 풍자한 만담으로 인기를 끌던 하선. 어느 날 하선은 영문도 모른 채 도승지 ‘허균’(류승룡 분)에게 발탁돼 궁중 생활을 시작한다. 암살의 위협에 시달리던 광해가 허균에게 자신의 대역을 찾도록 했고, 왕과 똑같은 외모에 타고난 말솜씨를 지닌 하선이 눈에 꽂혔던 것이다. 수백 명의 눈길이 늘 머무는 궁 안에서 하선이 가슴 조이며 ‘왕’을 ‘연기’하는 모습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말투와 걸음걸이는 물론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사소한 일상부터 국정에 이르기까지 생전 처음 접하는 왕의 법도를 익혀가는 과정은 하선 특유의 인간미와 소탈함으로 의외의 웃음과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허균이 지시하는 대로 왕의 대역 역할에 충실하던 하선이 자신도 모르게 진정한 왕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순간 영화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자신의 안위와 왕권만을 염려하던 왕 광해와 달리, 정치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사람과 백성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는 잘 아는 하선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한 감동과 여운을 선사한다. 

비록 은 20냥에 수락한 15일간의 왕 노릇이지만 상식과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그 어떤 왕보다 위엄 있는 목소리를 내게 되는 천민 하선. 권력의 가장 하위에 있는 천민의 모습을 빌어 조선이 필요로 했던 군주의 모습을 그려낸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진정한 리더를 바라고 꿈꾸는 2012년의 현대인들에게 함께 웃고 공감할 수 있는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남겨준다.

▲ 배우 이병헌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병헌 사극 첫 도전 

배우 이병헌의 첫 사극 연기는 영화의 또 다른 관람 포인트다. 한류를 이끄는 중심이자 세계적 스타로 활약을 펼치고 있는 배우 이병헌이 ‘광해’와 ‘하선’의 1인2역을 통해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장을 낸 것.

세계가 주목하는 아시아의 대표 배우로 성장한 이병헌은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왕 광해군과 천민 하선을 오가는 극과 극의 연기를 펼쳐 보인다. 

광해는 왕의 자리에 있지만 자신을 해하려는 무리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해 판단력을 잃고 폭군이 되어버린 인물. 반면 하선은 저잣거리의 천민으로 타고난 넉살과 소탈함을 지닌 인물이다. 독단적이면서도 예민한 카리스마의 광해와 만담꾼 특유의 재치와 여유를 지닌 하선은 이병헌의 섬세하고 탄탄한 연기력이 더해져 완연히 다른 존재감을 지닌 두 캐릭터로 완성됐다.

      ‘명품 배우’들의 완벽한 조연

영화의 완성도와 재미를 높여주는 ‘명품 조연들’의 연기력에도 관심이 쏠린다. 류승룡, 한효주, 장광, 김인권, 심은경, 김명곤 등 한국 영화의 흥행을 이끌어온 대표 주자들로부터 깊은 연륜의 연기파 배우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색깔의 배우들이 함께 어울려 완벽한 연기 호흡을 보여준다.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전설의 카사노바로 분해 독보적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458만의 흥행을 일군 류승룡은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왕의 대역을 만드는 비밀스런 작전을 계획하고 지휘하는 킹메이커 ‘허균’ 역을 맡았다. 

실제 역사 속 인물을 바탕으로 새롭게 창조된 허균 캐릭터는 왕과 나라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충신이면서도 자유로운 사상과 혁신적 사고를 갖춘 인물이다. 류승룡은 신중하고 빈틈없는 전략가이자 때론 나라를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릴 줄 아는 허균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로 완성해 내며 이병헌과 함께 극을 팽팽한 긴장감으로 이끈다. 

<동이>, <찬란한 유산> 등을 통해 20대 대표 여배우로 자리매김한 한효주는 두 명의 왕이 사랑한 여자 ‘중전’으로 분해 당당한 위엄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흡인력으로 스크린을 장식한다. <도가니>의 악랄한 교장으로 악역의 진수를 선보였던 장광은 ‘하선’의 정체를 알면서도 진심으로 그를 돕는 ‘조내관’ 역을 맡아 전작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따뜻한 캐릭터로 변신한다.

<해운대>의 ‘천만 배우’ 김인권은 왕을 의심하는 호위무사 ‘도부장’으로 분해 극의 긴장감과 밀도를 더한다. 여기에 <써니>의 히로인 심은경이 광해군의 나인 ‘사월이’ 역을 맡아 특유의 순수한 매력과 폭발적인 연기력을 선보인다. 12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배우 김명곤은 왕의 자리를 위협하는 ‘박충서’ 역으로 특별 출연해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연기력은 물론, 대중성과 흥행력을 겸비한 충무로 대표 배우들의 연기 호흡과 각기 다른 매력은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흥행 돌풍을 견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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