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혐의’ 처분에도 민사재판 중 ‘몰래카메라’ 촬영 파문

초상권 침해 vs 공공이익…‘답’은 의료 자문 제도 정비

[위클리오늘=전근홍 기자] “공공의 이익을 앞세워 몰래카메라를 찍는 것이 정상인가요”

불의 사고로 오른쪽 손목과 손가락에 60% 영구 후유장해를 입은 김씨(44·여)가 한숨 섞인 하소연을 쏟아내며 한 말이다.

김씨는 “정당하게 보험금을 청구했다고 생각했으나 돌아온 것은 보험사기 범죄자라는 낙인이었다”며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서 DB손보가 몰카를 촬영한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씨의 보험사기 혐의에 대해선 검찰이 ‘무혐의’ 종결했지만 보험금 지급을 위한 민사소송은 현재 진행형이다.

법원이 지정한 병원의 의료자문 결과 김씨의 장애사실이 인정됐다. 하지만 이를 못 믿겠다던 DB손보가 또 다시 몰래카메라를 들이댄 것이다.

정당한 청구액을 돌려받겠다는 가입자와 '몰카'는 늘어나는 보험사기 때문이라는 보험사 간 끝없이 반복되는 분쟁을 들여다봤다.

. DB손해보험 직원(좌측 하단)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몰래카메라를 찍고 있는 모습이 카페 CCTV 동영상에 담겼다. (사진=위클리오늘DB)

◆늘어나는 보험사기에 어차피 답은 ‘몰카’ 동영상?

이번 사례의 특이점은 법원이 지정한 제3 병원에서 진행된 신체감정 자문을 믿지 못한 DB손보가 재차 동영상 채증에 나섰다는 점이다. ‘보험사기’ 혐의점을 조금이라도 찾아내 결과를 유리하게 가져가겠단 의도로 풀이된다.

22일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보험사기 적발 금액은 지난 2017년 7302억원으로 2007년 2045억원의 3.57배, 10년 동안 연평균 증가율은 13.6%에 달한다.

구체적으로 보험사기 적발의 90%는 손해보험 영역이다. 이 중에서도 자동차보험과 장기손해보험이 가장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실손의료보험의 연성사기가 늘면서 장기손해보험이 보험사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5년 37.1%에서 2017년 41.7%로 4.6%포인트 늘었다.

보험업계의 안팎에선 ‘사무장병원’을 중심으로 입원기록·진단서 조작 등 조직적이고 고도화된 보험사기로 보험사 스스로 원하는 병원을 지정해 ‘셀프의료자문’을 벌이게 된 것이라고 평했다.

이 과정서 ‘몰카’ 동영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지 오래됐다는 것이다.

DB손해보험이 보험사기 혐의로 진정서를 제출한 뒤, 최종적으로 검찰이 내린 불기소 처분 통지서(사진=위클리오늘DB)

◆칼자루 쥔 보험사, 일부 판례 근거로…‘몰카’ 내부 가이드까지 운용

문제는 일부 인정된 판례를 근거로 보험사는 내부 가이드라인까지 운용하며 동영상 채증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밝힌 가이드라인은 사적인 장소가 아닌 공공장소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촬영해 거짓된 장해 진단을 가려낼 수 있도록 하는 것.

보험사 논리는 당연히 공익적 목적에서 '착한보험가입자'의 보험료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06년 대법원(2004다16280)이 보험사가 공공장소에서 쓰레기를 버리거나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장면 등을 8일 간 촬영한 사안에서, 초상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보호영역을 침범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몰카' 논란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서 하급심인 대구고법(2016나22753)이 장해지급률을 허위 청구한 가입자의 몰카 촬영을 두고 정당하다는 취지로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이를 근거로 칼자루를 쥔 보험사가 채증 절차상 위법이 없도록 동영상 촬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 사례를 두고 DB손보 한 관계자는 “생명·손해보험사 모두가 동영상 채증을 하고 있다”면서 “의학적으로 밝힐 수 없는 부분은 동영상으로 후유장해 정도를 가려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 당시 판결은 가입자의 보험금 청구가 허위 진술이 상당하다는 점이 입증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생활 침해’와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두 법익이 충돌할 경우,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어느 쪽이 더 중대한 지를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결 취지에 벗어나지는 않았다는 평이다.

◆보험사 ‘몰카’, 웃지 못할 ‘촌극’…답은 ‘의료 자문 제도’ 정비에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생명·손해보험사 의료자문은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만 9만2279건을 기록했다.

이 중 자문결과를 통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감액한 사례는 49%(3만8369건)에 달한다.

지금껏 논란이 된 것은 보험금을 청구한 가입자를 직접적인 진찰 없이 제출된 진단서 등 서류만으로 의료자문이 벌어져 왔다는 것이다.

보험사가 선임한 자문의가 결정을 내리다 보니 공정한 자문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 보험사와 대형병원 간 유착관계 의혹도 제기돼 왔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코자 지난 2014년부터 보험사와 가입자 간 의료자문 이견이 발생할 경우, 표준약관에 근거해 제3 병원에서 재차 자문을 받아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이를 아는 가입자는 드문 상황이다.

의료자문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화 움직임도 비교적 활발해진 상태다.

지난해 12월 국회 정무위에서 보험사 의료자문제도를 손질하기 위한 보험업법 일부 개정안이 상정됐다. 구체적으로 의료 자문을 시행 할 경우 보험 가입자를 직접 면담해 심사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제3 병원의 의료 자문 제도가 더욱 활성화되는 길이 최선이라고 본다”면서 “가입자가 제시한 진단서를 믿지 못하고 셀프의료자문에 목을 매는 보험사와 가입자 간 분쟁을 끝내는 길은 국가가 선임하고 관리하는 틀 속에서 의료자문의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답이 될 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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