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되려 선거판 못지 않은 '정치'도

유능한 프로야구 감독은 승리의 철학을 지녀야 하고, 선수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사심 없이 적재적소에 기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만큼 쉽지 않은 직업이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래 야구판에서 명멸한 한국인 감독(대행 포함)은 불과 50여 명이었다. 초창기 ‘해태 신화’를 일궈낸 김응룡 감독과 김성근, 김인식 감독 등 한국 프로야구 1세대 감독들은 장기집권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 그런 꿈같은 시대는 갔다. 지금은 ‘성적이 감독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기지 못하는 감독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과도 같다. 이대호 선수가 활약하고 있는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의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은 지난 25일 올 시즌 불과 9경기를 남겨놓고 전격 해임되었다. 오카다 감독은 평상시처럼 야구장에 나왔다가 선발 라인업을 짜기 전에야 경질 통보를 받았다. 리그 최하위의 성적에다 구단 사상 처음으로 11연패를 당하면서 평생 씻을 수 없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 김시진 전 감독. [사진=뉴시스]

    “이겨야 살아남는다”

승리에 대한 한국 프로야구 감독의 스트레스는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김재박 전 현대 감독은 경기 중 희생번트를 자주 대는 이유에 대해 “선수 시절, 성적 안 좋은 감독이 잘리는 걸 많이 봤다. 내가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만큼 프로야구 감독이라면 누구나 성적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그럼에도 수석코치들이라면, 아니 고참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감독이 되는 꿈을 꾼다. 선동렬 기아 감독은 삼성 수석코치로 갈 때 감독 자리에 욕심내지 않겠다고 김응룡 감독과 밀약까지 했지만 결국 김 감독을 사장으로 영전시키고 자신이 감독 자리를 꿰찼다.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은 취임 직후 뇌경색으로 자리에 누웠지만 불굴의 의지로 혹독한 재활을 통해 끝내 자리를 지켜냈다. 감독 자리에 욕심 없다는 코치나 전직 감독들의 말은 죄다 ‘거짓말’이다. 감독의 자진 사퇴란 없다. 오직 구단주와 프런트의 해고만이 감독을 그만두게 할 뿐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감독으로 불리는 이들은 현재 8명이다. 그중 두 자리가 비었다. 넥센과 한화 감독 두 자리를 놓고 지금 프로야구판의 여러 인사들이 꿈을 꾸고, 대선판 못지않은 정치가 한창이다. 감독 자리를 놓고 벌이는 물밑다툼은 8개 구단의 순위 경쟁 이상으로 흥미롭다. 

▲ 한대화 전 감독. [사진=뉴시스]

물밑정치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스스로 언론플레이를 하는 ‘자가발전형’이다. 한국 프로야구가 배출한 대스타 출신인 전 야구 감독 모 씨는 야구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왜 난 신문에 안 써주느냐”며 농담조로 말한다고 한다. 물론 그냥 웃으며 하는 말이지만 그만큼 본인 스스로 감독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마타도어형’이다. 일부러 유력한 경쟁자들의 이름을 소문으로 흘려 이미지에 상처를 입힌다. 언론에 후보로 많이 거론될수록 진짜 감독이 될 확률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고단수 전략이다. 머리싸움이 정치판 못지않다. 이 과정에서 신문의 오보도 많이 나온다. 한대화 한화감독 후임 자리를 놓고 조범현, 김재박 전 감독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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