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연속 KLPGA 준우승' 허윤경 스토리

“저도 이젠 우승을 하고 싶어요.”

9월 23일 강원도 평창 휘닉스파크골프장에서 막을 내린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T) KDB대우증권클래식에서 2위를 차지한 허윤경(22·현대스위스)이 18번홀 그린을 떠나면서 기자들에게 처음 던진 말이다. 3주 연속 2위에 머무른 데 대한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다. 사실 최근 허윤경의 경기를 돌아보면 그런 말이 절로 나올 만하다.

투어 대회에 참가하는 어느 선수인들 우승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허윤경에게 우승은 더욱 절실하다. 지난 9월 9일 끝난 한화금융클래식에서는 대원외고 동기동창인 유소연(22·한화)과 4라운드 18번홀까지 동타를 이루다 18번홀에서 두 번째 샷을 아웃오브바운드(OB) 구역으로 보내면서 우승컵을 내줬다. 그 다음 주 열린 KLPGA선수권대회에서는 정희원(21·핑)의 신들린 샷에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날 끝난 대우증권클래식에서는 13언더파 203타를 치며 종전 신지애(24·미래에셋) 등 3명이 세운 54홀 코스레코드(12언더파 204타)를 갈아치웠지만 ‘돌아온 골프여제’ 박세리(35·KDB금융)의 ‘16언더파 200타’라는 대기록 탓에 또다시 2위에 머물렀다.

▲ 17일 메트라이프 한국경제 KLPGA 챔피언십 2R기 열린 경기도 용인 88CC에서 허윤경이 세컨샷을 하고 있다. 사진= KLPGA 제공

      위너스클럽 향한 꿈

3주 연속 2위라는 진기록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심경이라는 허윤경. 그렇다고 마냥 행운이 없는 것만도 아니다. 한화금융클래식에서 우승한 유소연과 대우증권클래식의 박세리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뛰는 선수들이라 준우승 상금만으로도 시즌 상금랭킹 2위까지 올라간 것. 올 시즌 3승을 거둔 김자영(21·넵스)이 3억 7000만 원으로 선두인데 우승 없이도 3억 600만 원을 벌어들였으니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또 상금랭킹을 바탕으로 10월 19일부터 21일까지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장 오션코스에서 열리는 LPGA투어 외환·하나은행챔피언십과 12월 1∼2일 열리는 한일국가대항전에도 출전하게 됐다.

국가대표를 지낸 허윤경은 고교시절부터 이미 준비된 선수였다. 대원외고 시절 아마추어 메이저 대회인 송암배 우승을 차지하며 기량을 과시했다. 그러나 프로에 데뷔한 뒤로는 연속해서 시련의 시절이었다. 

데뷔 첫해인 2010년 출전한 롯데마트여자오픈에서 마지막 라운드 18번홀의 2m 남짓한 퍼트를 놓치면서 연장에 끌려가 김보배(25)에게 우승컵을 넘겨줬다. 그 뒤로 줄곧 수많은 후배들이 위너스클럽에 이름을 올리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3주 연속 준우승에 멈췄지만 허윤경은 올 시즌 국내에서 열린 13개 대회에 모두 출전해 전 대회에서 컷 탈락 없이 상금을 탔다. 그만큼 안정된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는 증거다. ‘위너스클럽’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한국여자프로골프에는 허윤경처럼 ‘그날’을 기다리며 샷을 가다듬고 있는 선수들이 넘쳐난다. LPGA투어에서 한국여자골프를 ‘마르지 않는 샘’으로 비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 시즌 KLPGT 우승자들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김효주(18·대원외고), 이예정(19·에쓰오일), 김자영, 정혜진(25·우리투자증권), 양수진(21·넵스), 양제윤(20·LIG손해보험), 이미림(22·하나금융), 김지현(21·웅진코웨이), 유소연(22·한화), 정희원, 박세리.

올 시즌 13개의 대회를 치른 KLPGT의 우승자들이다. 김자영만이 3승을 거뒀을 뿐이고 나머지 10명의 선수는 단 하나의 대회에서만 우승컵을 안았다. 더욱이 김효주는 아마추어 선수이고, 김자영을 비롯해 양제윤과 이예정, 정혜진, 김지현, 정희원은 생애 첫 승을 올해 거뒀다.신지애와 안선주(25), 서희경(26·하이트), 최나연(25·SK텔레콤) 등이 한 해 몇 승씩을 거두며 필드를 호령하던 몇 년 전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그렇다고 수준이 떨어진 것도 아니다. 신지애와 안선주, 최나연 등이 LPGA투어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우승후보군 20여 명

투어의 규모도 수준에 올라 있다. 올해 열리는 22개의 대회의 총상금 규모는 100억 원이 넘는다. 한화금융클래식은 무려 총상금 12억 원에 우승상금이 3억 원이나 되는 큰 규모였다. 2월부터 12월까지 전 세계를 돌며 29개의 대회가 열리는 LPGA투어와 비교해도 기후 때문에 4월부터 대회를 시작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전혀 뒤지지 않는 규모다.

지난주에는 정희원이 생애 첫 승을 거뒀다. 초등학교 때 유도를 했던 정희원은 중학교 2학년 때 전북 익산에서 혼자 서울로 와 골프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밤에는 찜질방과 친척집을 전전했다. 2년 전까지 대회장에 갈 때도 택시와 버스를 타고 다녔다고 하니 ‘한국여자선수들에게는 골프에 관한 우월한 유전자가 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여자골프계에는 ‘20여 명의 예비 우승후보군이 있다’는 말이 있다. 허윤경처럼 지금껏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언제든지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수두룩하다는 말이다. 이들은 매주 대회가 열리는 장소로 이동하며 우승컵을 들어올릴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상자 기사 /  한국 낭자군  점점 세지는 까닭

                   수준급 체력훈련과 심리치료 병행

여자골프가 뛰어난 기량을 바탕으로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선 것은 선수들의 기량 평준화가 가장 큰 요인이다. 정신력을 제일의 무기로 투어에 뛰어들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선수들이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데다 체력훈련과 심리치료까지 세계정상급 선수들 못지않은 수준으로 받고 있다.

한국무대에서뿐이 아니다. 지난 8월 27일 뉴질랜드교포인 리디아 고(15·한국이름 고보경)는 LPGA투어 캐나다여자오픈에서 LPGA투어 최연소 우승기록을 세웠다. 이에 앞서 김효주는 지난 5월 JLPGA투어 산토리레이디스오픈에서 역시 최연소 우승기록을 세웠다.

20여 명의 예비우승후보가 있는 KLPGT, 이미 세계정상급 대회에서 우승 경력을 갖고 있는 김효주와 리디아 고 등 낭자군이 절정기를 맞고 있는 한국여자골프를 한 단계 발전시킬 것으로 골프 관계자들은 믿고 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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