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대선, 6080-2040 팽팽한 전선구축

           

  

 

                     

 

6080세대 VS 2040세대 팽팽한 전선 구축

추석이 지나갔다. 연말 대선 민심이 한 차례 가닥을 잡는 시간이 지나간 것이다. 대선이 치러지는 해의 추석은 정치적으로 의미가 크다. 가족 단위로 대선에 대한 입장, 견해가 쏟아지는 장이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세대 간 견해가 소통하거나 충돌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대선 민심은 좀 더 다듬어지고 구체화하게 된다.

필자의 집안도 마찬가지다. 80대 큰아버지가 40대 조카에게 물었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냐. 박근혜가 어째 위태로워 보여.”, “어차피 박빙의 싸움이 될 겁니다. 그래도 야권이 단일화하면 박근혜가 어렵지 않을까요.”, “그러냐. 박근혜가 돼야 할 텐데….” 큰아버지의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  

이번 대선은 세대전쟁이다. 역대 대선에 비해 세대전쟁의 특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60∼80대 할아버지·아버지 세대와 20∼40대 아들·손자 세대간 대선 논쟁은 흔한 풍경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는 ‘박정희 향수’가 강한 세대이다. 6·25전쟁과 절대빈곤의 세월을 견뎌내고 압축성장의 산업화 시대를 이끈 세대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대한 애착의 뿌리다. 

“누구 덕분에 이만큼 살 게 된 건데”, “너희들은 6·25를 겪어보지 않아서 그래”, “니들이 보릿고개를 알아?”…. 할아버지·아버지 세대에서 흔히 써먹는 레토릭이다. 그들 세대라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런 인식과 정서가 팽배한 것이 사실이다. 5·16을 두고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던 박 후보의 역사인식은 이들 세대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이에 비해 아들·손자 세대의 역사인식은 확연히 다르다. 공은 공이고, 과는 과라는 인식이 보다 보편적이다. 산업화의 공으로 헌법정신과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 5·16쿠데타, 유신, 긴급조치, 2차 인혁당 사건의 ‘사법살인’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쪽이다. 잘한 것은 잘한 것대로 평가하고 인정하되 잘못된 일은 냉정히 평가해 후대가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역사인식이 강하다.  

     세대별 표 쏠림 현상 심해져

차기 대통령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는 이번 대선의 세대전쟁 특성을 극명히 보여준다. 9월23일 <한국경제신문>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후보는 50대 이상에서 압도적인 반면 40대 미만에서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에게 현저하게 뒤처졌다. 예컨대 60대 이상에서 박근혜 61.8%, 문재인 11.7%, 안철수 16.9%인 데 비해 30대에서는 박 22.3%, 문 26.5%, 안 41.7%로 세대 간 편차가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만 19세 포함)에서도 박근혜를 지지하는 비율이 27.7%에 그친 데 비해 ‘문재인 18.0%, 안철수 47.3%’로 둘을 합치면 65.3%에 달했다.

세대전쟁의 특성은 박빙의 승부와 맞물려 더욱 강렬해질 것이다. 세대별로 표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란 얘기다. 노년층에서는 박 후보 지지율이, 젊은 층에서는 문 후보든, 안 후보든 야권 단일후보의 지지율이 더욱 오를 개연성이 크다. 세대전쟁이 정점으로 치닫는 셈이다.

      20~30대 < 50~60대 유권자 수 역전
     50만 표 박빙승부, 단일화 과정이 변수

20·30세대와 50·60 이상 세대의 유권자 수가 처음으로 뒤집어진 선거 환경도 세대전쟁의 열기를 더하는 변수다. 이번 대선에서 50·60 이상 세대 유권자는 10년 전인 2002년 대선 때보다 약 579만 명이 늘어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9.6%로 뛰어올랐다. 반대로 20·30세대(만 19세 포함)는 약 126만 명이 줄어 38.6%로 떨어졌다. 2002년 대선 때는 20·30세대 비중이 48.3%였다. 5년 전인 2007년 대선 때도 50대 이상보다 약 394만 명 많았다. 그 결과 40대가 약 887만 명(21.9%)으로 30대(20.4%)를 제치고 처음으로 최다 유권자 세대로 떠올랐다. 20대는 1987년 대선 이후 처음으로 최저 유권자 세대로 내려앉았다. 

이 같은 인구의 변화는 박근혜 후보에게 좀 더 유리한 환경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승부를 가를 변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비중이 줄어든 만큼 그들의 투표동기, 표 결집은 더욱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역대 대선 중 최고로 치솟을 개연성이 작지 않다. 주목할 만한 관전 포인트이다. 20대의 투표율은 늘 다른 세대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특히 30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 저 <30대 정치학>은 이번 대선에서 이들 세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금의 30대는 197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다. 5년 주기의 대선 때마다 이들은 판을 뒤흔들었다. 이번 대선의 최대 특징인 ‘안철수 현상’의 뿌리도 20대와 함께 이들 30대이다. 저자는 이들 세대에 대해 “1970년대생이 2002년 대선 이후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보여 왔다”고 분석했다. 그들은 “유권자의 주권이 발양되는 새로운 정치 참여”, 즉 새로운 정치를 지향해왔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런 정치성향의 흐름이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2007년 대선 때는 이명박, 이번엔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저자는 30대가 세대를 통틀어 가장 진보성이 강하다고 말한다. “20대, 30대, 40대가 삼각편대를 이루어 범진보 진영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삼각편대의 꼭짓점은 30대다. 30대가 앞에서 끌고 20대와 40대가 뒤에서 민다. 이게 2040세대의 대형이다.” 

이들의 진보성은 이들이 몸소 겪어온 시대의 특성에 기인한다. 사회에 진출할 무렵부터 그들에겐 시련이 닥쳤다. IMF 외환위기, 취업 대란, 카드 사태, 부동산 활황과 거품 붕괴 등 십수년간 사회적·경제적 기반을 다질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 그들의 삶은 불안하다. 다른 세대에 비해 경제적 지위가 낮고 양극화의 체감도도 극심하다.  “그들의 족적을 살피니 선연해졌다. 그들은 참으로 재수 없는 세대다. 신자유주의 광풍을 가장 먼저 맞은 세대다. 신자유주의 광풍으로 세대 내 양극화의 쓴맛을 가장 먼저 맛본 세대다.” 저자는 그들을 이렇게 평했다. 

추석을 계기로 민심엔 변화가 일었다. 3자 대결에서는 여전히 박근혜 후보가 선두를 지키고 있으나 양자 대결에서는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에게 모두 뒤처지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한국일보>가 지난 2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 41.1% vs 안철수 49.7%, 박근혜 43.7% vs 문재인 47.0%로 양자대결에서 박근혜 후보는 야권 후보에게 모두 뒤졌다. 박 후보가 문재인 후보만큼은 여전히 누른 여타 조사도 있으나 전체적인 흐름은 양자대결에서 박 후보는 주춤하는 반면 야권 단일후보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3자대결에서는 박근혜 37.5%, 안철수 28.8%, 문재인 21.6%로 여전히 박 후보가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의미 없는 수치다.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는 결국 단일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심의 변화에 새누리당은 조급해졌다. 섣부른 선거조직 인선 발표로 혼선을 빚는 모습이 말해준다. 각계각층의 외부인사 영입 또는 영입검토 사실을 발표하면 당사자들이 부인하는 해프닝이 이어졌다. 지난달 28일 박근혜 후보가 런던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범 선수에게 대구·경북 공동선대위원장 임명장을 전달했으나 사흘 만에 이를 취소했다. 김 선수는 지난 1일 임명장을 반납한 뒤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에 “식사자리인 줄 알고 갔다고 이렇게 된 일”이라고 밝혔다. 배우 손숙·김성녀, 시인 김용택 씨 등 영입 발표도 ‘명단 삭제’로 끝나버렸다. 

친박 후퇴 갈등이 불거진 것도 이런 위기감의 반영이다. 지난 4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선대위 부위원장인 친박계 유승민 의원은 “후보를 못 바꾸니깐 나머지는 다 바꾸자”고 제안했다. “썩어빠진 친박이란 말은 나도 기분이 나쁘지만 그것이 현실일 수 있다. 나부터 부위원장을 내놓을 수 있다”면서. 전날엔 남경필 의원이 친박 인사들의 2선 후퇴를 제기했다. “이대로 가면 진다”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그러나 인적 쇄신은 쉽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부터 부정적 기류다. 그는 4일 밤 기자들에게 “당에서는 항상 다양한 의견이 있지 않느냐. 지금은 내일모레가 선거이기 때문에 힘을 모아서 선거를 잘 치러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야권 단일후보가 승리할 것이란 예단하는 것은 무모하다. 어차피 이번 대선은 박빙의 싸움이 될 개연성이 크다. 532만여 표 차이가 난 2007년 대선을 제외하고 1997년, 2002년 대선처럼 30만∼50만 표차 정도의 박빙 승부 말이다. 크게 벌어진다고 해도 100만 표 이상 차이가 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만큼 박근혜 후보를 지키려는 보수층, 노년층의 표 결집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할 것이다.

단일화 과정도 판세를 흔들 대형 변수다. 야권후보 단일화 지지율은 문재인 40.8%, 안철수 41%로 초접전 양상이다. 양측 신경전과 수싸움이 한층 격렬해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야권 단일후보의 경쟁력은 이 과정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어플레이로 신선한 정책경쟁을 벌여나간다면, 그래서 종국에 명분과 감동이 있는 단일화를 이뤄낸다면 그 효과는 극대화할 것이다. 그러나 공작과 꼼수의 구태가 출현한다면 단일화는 승리가 아니라 패배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주지했듯이 이번 대선은 세대전쟁의 성격이 짙다. 대선경쟁이 초박빙으로 치달을수록, 야권 후보가 단일화한 이후로 세대별 표의 응집력은 점점 강해질 것이다. 할아버지·아버지 세대와 30대를 축으로 한 20∼40대 아들·손자 세대의 대결에서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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