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오늘=신민호 기자] 일부 대형 보험사가 자회사에 손해사정 업무를 몰아줘 공정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또한 보험금 지급 주체인 보험사가 직접 심사 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보험금 산정의 객관성이 퇴색됐다며 손해사정 제도의 재정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손해사정 제도는 객관적인 손해사실 확인과 손해액을 산정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다.

보험업법 185조에 의하면 보험사들은 객관성을 위해 전문 손해사정사를 직접 고용하거나 외부 업체에 위탁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대형보험사의 경우 자회사를 통해 손해사정업무를 대부분 위탁하고 있으며 해당 건의 청구금액이나 계약 해지 같은 민원이 예상되는 건에 대해 본사가 직접 손해사정을 실시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보험업감독규정 9-16조에서 손해사정이 착수되기 이전에 보험계약자 등이 손해사정사를 직접 선임할 수 있도록 명시했지만 소비자의 선임의사를 검토할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다.

또한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손해사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만큼 선임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대부분 보험사의 결정에 따르게 된다.

◆100%에 육박하는 자회사 위탁률,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

28일 금융감독원이 한 여당 국회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생보사 중 손해사정사를 자회사로 운영하고 있는 곳은 세 곳(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이다.

이 중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의 경우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손해사정업무의 자회사 위탁률이 100%였으며 같은 기간 내 한화생명의 자회사 위탁률은 3년 간 99.3%였다.

지난해 대형 생보사 보험금 지급 심사 건수 <자료=금융감독원>

손보사 역시 마찬가지다. 자회사를 운영 중인 손보사는 모두 네 곳(삼성화재, DB손보, 현대해상, KB손보)으로 지난해 자회사 위탁률이 가장 높은 DB손보의 경우 99.3%의 위탁률을 기록했다. KB손보와 현대해상은 각각 98.9%와 94.1%를 기록했다.

지난해 대형 손보사 보험금 지급 심사 건수 <자료=금융감독원>

가장 낮은 삼성화재의 자회사 위탁률은 47.0%였지만 자동차 보험의 손해사정 건은 100%의 위탁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런 대형 보험사의 행태가 손해사정업계와 소비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에 등록된 손해사정업체들이 16년 말 1056개에서 지난해 8월 기준으로 1223개로 증가하는 등 손해사정업체의 수는 점차 증가하는 데 반해 손해사정업무의 수요는 한정돼 업권에서 일감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대형 보험사의 자회사 ‘일감 몰아주기’는 시장경쟁체제 내 더 나은 서비스가 아닌 보험사 입맛에 맞는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객관성이 우선시 돼야 할 손해사정 제도가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함께 나오고 있다.

◆자회사를 통해 심사되는 지급 보험금, 보험사 입맛대로

지난해 대형 생보사 세 곳의 지급보험금은 6조8834억원이다. 이 중 손해사정사에 위탁 심사된 금액 5조82억원이며 4조9689억원(99.21%)이 자회사를 통해 지급 심사됐다.

특히 삼성생명은 지급한 보험금 3조4516억원 모두를 자회사인 삼성생명서비스손해사정이 지급심사 했으며 교보생명 역시 지급 보험금 1조5027억원 중 손해사정법인에 위탁한 보험금 5125억원 모두를 자회사가 심사했다.

지난해 대형 생보사 보험금 청구 및 지급 심사 금액 <자료=금융감독원>

또한 대형 손보사 네 곳 역시 20조6474억원의 지급보험금 중 15조9063억원이 손해사정사에 위탁 심사됐는데 자회사를 통해 처리한 금액은 13조3238억원(83.76%)에 달한다.

이 중 가장 높은 위탁률을 보인 곳은 DB손보와 현대해상이다.

지난 해 DB손보는 지급보험금 5조3184억원 중 4조1434억원을 위탁 심사했으며 이중 3조8448억원(92.79%)이 자회사를 통해 처리됐으며 현대해상은 지급보험금 5조798억원 중 3조9909억원을 위탁 심사했는데 3조4073억원(85.38%)이 자회사를 통해 처리됐다.

지난해 대형 손보사 보험금 청구 및 지급 심사 금액 <자료=금융감독원>

문제는 보험금 지급 심사가 자회사를 통해 처리되는 만큼 고객보다는 보험사에 유리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를 반영하듯 보험금 산정과 지급에 관한 민원을 살펴보면 2016년 1만6898건에서 2017년에 1만7033건으로 증가했으며 지난해에는 더욱 증가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손해사정업무를 보험사가 직접 처리하거나 입김이 닿는 자회사를 통해 처리하는 만큼 보험금 산정의 객관성이 퇴색됐다는 지적과 함께 손해사정제도가 보험금 지급 거절이나 삭감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이를 두고 “자사에서 직접 관리하는 것과 타사에 위탁하는 것은 서비스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며 “고객 입장에서 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믿고 가입했는데 타사에 손해사정 업무를 위탁하게 되면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한 금융관계자는 “시장경쟁체제는 서로 간의 경쟁을 통해 보다 나은 서비스가 고객에게 제공되는 것이 기치”라며 “자회사에 몰아준 지급 심사로 소비자는 더 나은 손해사정 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상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보험금 지급의 주체인 보험사의 입김이 들어가는 데 객관성이 보장되기 쉽지 않다”며 “이는 보험사에 유리하게 적용될 여지가 충분한 만큼 손해사정 제도와 규정의 재정비가 시급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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