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전량구매계약’ 통해 혼합석유판매 ‘원천봉쇄’

▲ 사진=뉴시스DB

[위클리오늘=유명환 기자]정부가 석유판매가격 안정을 위해 지난해 9월 도입한 ‘혼합판매석유’ 제도가 정유사와 주유소 간의 ‘계약 관행’에 묶여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4일 주유소업계에 따르면 SK, GS, 에스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은 폴(브랜드 사용권한 등) 주유소 계약을 체결하면서 ‘전량구매’를 명문화 해 혼합석유판매를 봉쇄했다. 만약 폴 주유소가 계약을 위반하고 혼합석유를 판매할 경우, 정유사가 제공하는 상표 사용, 자금 및 시설지원 등 각종 혜택을 포기해야 한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08년 정유사들의 ‘전량구매계약’은 불공정거래행위라며 시정조치를 내렸지만 이 같은 불공정 관행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클리오늘〉이 단독 입수한 SK네트웍스와 경기도 소재 폴 주유소 간에 체결한 계약서(2012년 6월~2013년 6월)를 보면, 전량구매계약을 어기고 혼합석유를 판매할 경우 △계약 해지 △디-브랜딩(폴 철거) △보너스 및 제휴카드, 자금·시설 등의 지원이 중단된다.

각종 혜택 중단과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내용이 계약서상에 명시돼 있어, 사실상 혼합석유판매가 ‘원천봉쇄’됐다.

제보자 B모씨는 “전량구매계약에 따른 각종 혜택을 포기하면서까지 혼합판매를 선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계약도 그렇지만 정유사 영업직원과의 친분도, 주유소 점주들이 혼합판매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실제 전국 주유소 가운데 혼합석유를 판매하고 있는 주유소는 단 한군데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혼합석유판매 주유소 달랑 한곳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올 9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1만2720곳의 주유소 가운데 혼합석유를 판매하고 있는 주유소는 한 곳에 불과했다. 지난해 5월 산자부가 5845개 주유소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4302개 주유소가 ‘혼합석유’판매를 희망했던 것과는 천지차이다.

주유소를 운영 중인 E모씨는 “(주유소 업주들의)혼한석유판매 관심은 매우 높지만 정유사의 압박 때문에 선뜻 나서기 힘든 상황”이라며 “정부의 성급한 제도 시행이 오히려 정유사와 주유소 간 갈등을 고조시켰다”고 지적했다.

정유사들 역시 불만이 상당하다. 정부가 제대로 된 실태조사와 실익 등을 따져보지 않고, 무리하게 제도시행에 나서면서 상표권 침해 등 위험이 가중됐다는 주장이다.

정유사의 한 관계자는 “상표는 정유사의 고유재산이다. 정유사 상표를 내걸고 영업을 하면서도 해당 주유소가 상당량의 석유를 다른 곳에서 구매한다는 것은 심각한 상표 침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정유사 관계자 역시 “폴 주유소는 석유의 품질정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통로”라고 설명한 뒤 “만약 혼합석유 비중이 높을 경우 정보가 왜곡되고 정유사 브랜드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용어사전-

‘혼합석유판매제도’=정유사의 브랜드를 사용하는 폴 주유소에서 타사 또는 수입 석유제품을 혼합해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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