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표규 교수 / 단국대 해병대 군사학과

[위클리오늘신문사] 지난 6월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에 따르면 ‘통일문제와 경제문제 중 하나를 골라서 해결해야 한다면 경제문제를 선택하겠다’고 답한 사람이 설문 응답자 3873명 중 77.10%였다.

이는 통일이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단순하게 “통일이냐, 경제냐”라는 이분법적 질문에 대한 답변인 만큼 그 가치가 그렇게 높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구호로 국민들을 현혹하면서도 안보정책은 통일과는 다소 동떨어지게 수립하고 시행함으로써 남북 간 긴장관계를 해소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은 등한시 되었었다.

이론상으로 보면 안보정책 목표는 명확하게 설정되어야 하나, 명확하게 설정하면 역효과가 많이 일어나 통상 가시적인 것 위주로 설정된다.

이처럼 어려운 안보정책 상 목표를 현재 대치하고 있는 북한과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 낸 것이 ‘4.27판문점 선언’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9.19군사분야공동합의서’이다.

이들 중 ‘9.19합의서’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 및 신뢰구축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기 위해 지·해·공 등 모든 공간에서 적대행위를 전면 중단하는 등 군사적인 분야뿐만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 및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추동력을 제공하고 상호 신뢰할 수 있는 안보환경 조성을 위해 한강하구 공동수로 개발 등 비군사적인 분야까지 망라하고 있다.

이 합의서가 발표되자마자, 예비역 장성들과 학술적으로는 ‘네트워크중심전(NCW)’, '효과중심작전(EBO)', ‘분산작전(DO)’ 등의 논문들을 발표하던 군 출신 학자들이 대거 나서 정부가 우리의 전략적 이점을 포기하고 북한에게 유리한 협상을 하였다고 집중 포화를 날리기 시작하였다.

급기야는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약칭 대수장)’이 출범하여 한국의 안보 역량만 일방적으로 무력화시킨 합의서는 ‘대한민국을 붕괴로 몰고 가는 이적성 합의서’라며 ‘조속한 폐기가 그 정답’이라는 주장까지 내 놓았다.

그러나 이들이 제기하고 있는 여러 쟁점들 중 그나마 국민적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은 ‘NLL 포기 주장’과 ‘상호 균등한 GP 철수 숫자’ 등에 불과하다.

우리들 중 다수는 언론을 통해 해상과 문산, 철원 축선 등을 통한 북한의 초기 기계화 부대 기습공격이라는 6.25식 군사작전 프레임에 갇혀 있는 이들의 절규와 비판을 여과 없이 전해 들으면서 의아해 해야만 하였다.

그들의 주장이 걸프전을 통해 보병이 초기부터 기동하여 적과 전투를 벌이는 기동전이 아닌 미국 항모에서 토마호크 미사일과 스텔스 폭격기와 전투기들이 이라크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영상을 수없이 봐온 일반 대다수 국민들과 이러한 방식으로 전략게임을 즐겨하던 젊은 세대들에게는 ‘왜 그러는지?’ 하는 다소 의아한 시선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정말 그들이 주장하는 위협이 생겼고, 그 위협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으면, 국가방위를 책임진 군인들이 먼저 이의를 제기하였을 것이다. 동시에 군인보다 더 군을 잘 알고 있는 시민단체의 항의집회로 현 정부는 지금까지 지탱해 오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전쟁 가능성이 희박하기는 하지만 만일 미래에 북한과 전쟁을 하게 된다면, 대규모 기계화 부대가 남하하여 시작되는 기동전보다는 미사일과 스텔스 전투기들이 전장을 지배하는 최첨단 항공 및 화력전이 될 것이다.

우리는 현 정부를 우리의 손으로 택하였고, 문민정부시대에 정치가 군을 통제하고 지휘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특정 계층을 중심으로 사회적 지도자들이 막말발언을 통해 대통령과 정부를 비난하고 있지만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치·군사적 협의는 양자 간 ‘합의 또는 공통의 이해’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냉전 시대 유럽은 소련을 필두로 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와 나토군과의 군사적 대결을 완화시켜 정치적 신뢰구축에 도달하고자 끝없는 노력을 하였다.

비록 그러한 노력들은 개혁과 개방을 부르짖던 고르바초프의 일방적 중단거리 핵무기와 병력철수로 결실을 맺었다고는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형성된 군비통제 관련 이론들은 우리 남북한이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협의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다.

유럽은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들을 통해 정치적 신뢰가 구축되기 까지 20여 년의 세월이 소요되었지만 우리는 이미 ‘7·4 공동선언’, ‘6.15공동합의서 채택’ 등 정치적 신뢰구축이 선행하여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때마다 남북한 간 국지적인 군사적 분쟁이 발생하여 정치적 신뢰구축을 군사적인 차원에서 지원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한반도 남북한 간에는 여전히 정치·군사적 신뢰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또 다시 형성된 ‘4.27 평양 선언’ 등 정치적 신뢰구축 조치에 이은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인 ‘9.19군사분야합의서’는 지난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 전까지는 어떠한 위반도 없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의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남북공동 유해 발굴, 한강하구 민간선박 항행, 공동경비구역 개방 등의 분야는 남한 자체적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지난 5월 4일부터 시작된 미사일 발사시험이 한미 연합훈련이 실시되는 7월과 8월에는 더 잦아지고 있다.

이처럼 북한은 아마도 경제적 지원이 없는 일방적 군사교류 및 개방은 정권유지 자체를 위협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의 김정은은 친서를 이용,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사일 발사 시험에 대한 사과를 하면서도 미국의 일방적 북핵 폐기 정책을 지체시키고자 실무회담 개최일정을 지연시키고 있다.

또한 한미 연합훈련을 실시하는 남측을 견제하기 위해 단거리 미사일을 지속 발사하여 남남갈등을 유발함과 동시에 재래식 군비 관련 협정인 ‘9.19군사분야합의서’ 이행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실제 북한의 미사일 탄착지점과 남측의 한미연합훈련이 남북한 간에 있었던 군사분야합의서 내용 자체를 위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북핵문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 크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지만, 엄밀하게 2013년 3월 17일의 ‘유엔결의안 2094호’를 위반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북한의 행위에 흔들리지 말고, 자체 계획에 의거 북한의 위협이 증가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합의서 내용을 시행함으로써, 북한에게 우리의 합의서 이행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기존의 합의사항만으로 통일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등 지나친 환상을 국민들에게 심기보다는 국민적 합의와 지원이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국민적 감정을 자극하지 않도록 하는 속도조절 또한 필요하다.

특히 북핵 폐기에 있어 주도권이 없는 우리는 그나마 모처럼 합의된 군사적 신뢰구축조치인 ‘9.19군사분야공동합의서’ 내용들이 무력화 되지 않도록 최대한 유의하며, 추진해 나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노력들이 결집되어야만, 우리 한반도의 미래 가치인 한민족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통일의 시대를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단국대학교 해병대 군사학과 이표규 교수

※ 본 기고는 <위클리오늘>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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