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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내가 왜 '빅 사이즈'를 입어야만 하죠?

[위클리오늘=신유림 기자] 기자는 휴일이면 종종 어머니와 쇼핑을 한다. 그렇지만 항상 즐겁지만은 않다. 여성복 매장에 들어서면 마치 아동복 같은 사이즈의 옷들을 보며 기죽는 날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170cm가 넘는 신장을 가진 어머니와 그렇게 날씬하지 않은 기자는 매번 화려한 여성복 매장을 뒤로한 채 상실감만 안고 돌아오는 것으로 대부분의 쇼핑은 끝이 난다.

"외국에서 태어났으면 사이즈 걱정은 안 했을텐데..."라고 푸념하면서. 

하는 수 없이 외국 사이트에서 예쁜 옷을 직구해 어머니께 가끔 선물해 드리곤 한다. 기자의 어머니는 외국 기준에서 보면  빅 사이즈가 아닌 일반 사이즈 범위에 속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어느 순간 길을 걷다 눈에 들어오는 프리사이즈 옷을 발견해도 체념부터 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들이 말하는 ‘프리’하지 못한 체형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회가 원치 않는 체형을 가진 비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에 가끔 소외감과 박탈감마저 든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정상적인 체형임에도 기성복 사이즈가 맞지 않아 빅 사이즈 전문점에서 옷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빅 사이즈 쇼핑몰 후기만 보아도 대부분 날씬하고 건강한 체형의 아가씨들이 자신이 원하는 옷을 구매한 것에 만족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사실 ‘빅 사이즈’라는 말 자체가 불쾌감을 주는 단어인데도 말이다.

이에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내가 왜 빅 사이즈를 입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푸념하는 글도 종종 보이곤 한다.

국내 여성복은 프리사이즈가 대부분이지만 그에 맞는 체형을 가진 여성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국내 여성 프리사이즈는 이른바 '마른66' 까지 입을 수 있는 옷이다. 어떠한 사이즈의 체형에도 맞도록 제작됐다는 뜻의 프리사이즈가 사실은 마른 체형의 사람에게만 허락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프리’가 아닌 셈이다.

국내 여성복 사이즈는 일반적으로 44·55·66으로 나뉘며 그 이상부터는 빅 사이즈로 분류된다.

이 같은 사이즈 별 치수는 한국공업진흥청이 1979년 전국 1700여 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진행한 신체검사를 통해 치수를 집계한 후 1981년에 만든 의류제품 기준치수 호칭으로 144·155·166cm의 신장을 가진 여성의 평균 신체 사이즈로 표기한 것이다.

당시 한국여성의 평균 신장은 155cm였다. 이에 비해 현재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여성의 키는 약 162cm다. 통계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66사이즈가 평균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반 사이즈 중 가장 큰 66조차도 백화점 여성복 매장 중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곳이 흔하다.

40년 동안 급격히 몸집이 커진 대한민국에서 오직 여성만 이 치수에 갇혀 더 이상 자라지 말 것을 강요당했다.

다양한 사이즈를 사용하는 미국, 영국 등 외국에 비해 국내 여성복 사이즈는 매우 제한적이며 44·55·66 중 하나에 속하지 못하면 그 여성은 비만인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사회가 마치 "작고 예쁘게 포장하지 못한 여성은 비정상이니 어서 그 안에 너를 맞추도록 노력해"라고 비웃는 듯하다.

우리나라만큼 지독한 외모지상주의 국가가 있을까? 이는 매스미디어가 미친 영향이 가장 크다.

TV와 광고는 온통 44·55 사이즈의 아이돌이 장악하고 있고 심지어 뉴스에서조차 여성 앵커는 예쁘고 날씬해야한다.

특히 기상캐스터들의 고충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정도다.

‘왜 그렇게 타이트한 의상만을 고집하냐’는 질문에 어떤 기상캐스터는 "협찬 의상은 사이즈가 55뿐이라 어쩔 수 없다"며 "55사이즈보다 체형이 큰 사람은 옷이 타이트해질 수밖에 없다"고 답한다.

즉 55사이즈에 맞지 않은 체형은 기회마저 박탈당한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정상적’ 사이즈 범주에 못 들어간다는 것은 곧 외모지상주의 한국에서 그 만큼 '기회 손절' 당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학생 교복을 살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요즘 교복은 한마디로 학생용이 아니라 아동용이다.

처음엔 학생들이 자신의 몸매를 뽐내기 위해 스스로 줄여 입던 것이 이젠 아예 제조사에서 작고 타이트하게 생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단순히 예뻐 보이고 싶은 청소년의 호기심 문제가 아니다. 이 사회의 암묵적 강요이자 세뇌다. 이는 어릴 때부터 주입된 잘못된 사회 시스템과 가치관이 평생 후유증으로 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정규 사이즈 안에 들지 못하는 여성은 언제 낙오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다이어트로 자신을 학대하며 바비인형의 삶을 강요당한다. 거울 속에 비친 외모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가 규정한 ‘정상적’ 여성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사회 인식의 변화가 요구되는 때다. 여성들이 ‘맘 놓고 숨 쉴 수 있는 자유과 권리’를 구걸하는 3류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신유림 기자  in@one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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