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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바이올리니스트 여근하,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요”

전국 최연소로 시향 악장에 올라…29세 때 진주시립교향악단 악장
‘재능기부’란 표현은 위험…“마음 가는 곳에 기부하는 형식이 돼야”

바이올리니스트 여근하 <사진=SW아트컴퍼니 제공>

[위클리오늘=이주현 기자] “하얀 드레스를 입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어린 시절 사진이 있어요. 아마도 4살 때 같아요. 그게 제 첫 번째 공식연주죠. 바이올린은 음역대가 높은 독주 악기로, 다른 악기보다 앞에 나서 주요 테마를 연주해요. 어린 나이에 바이올린을 잡은 걸 보니 아마 제가 어릴 때부터 튀는 걸 좋아했나 봐요”라고 말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여근하의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다.

여근하는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 아래서 자랐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외부 레슨 없이 거의 모든 과정을 독학으로 깨우쳤다. 서울시립청소년교향악단에서 수석을 역임하고, 29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진주시립교향악단 악장으로 위촉됐다. 이는 전국 최연소 시향 악장으로, 그녀의 재능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그녀의 실력에는 끊임없는 노력이 밑거름됐다. 독일 청년오케스트라(Junge Deutsche Philharmonie) 단원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영역을 늘려나갔다. 방학이면 늘 세계 대가들의 음악캠프를 찾아다니며 견문도 넓혔다. 그녀는 여행 가방과 바이올린을 둘러메고 전 세계를 유람하며 다양한 연주인과 교류하며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공유했다.

"바이올린은 어떤 악기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바이올린은 나무로 만들어져 관리를 잘해야 해요. 연주하기 전에 꼭 꺼내놔야 하고, 끝나면 잘 닦아 보관해야 하죠. 또 습도 등 날씨에 민감해 연주하는 장소도 제한적이에요”라고 말했다.

다만 “그래도 어딜 가나 (소지하기 쉬운 바이올린을)들고 다닌 덕에 경치 좋은 곳에서 연주할 기회도 많이 얻었죠. 카자흐스탄에 있는 3163m짜리 침블락산에 올랐다가 세계 각국의 사람들 앞에서 연주했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라며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많은 이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즐기는 그녀지만, 요즘 자주 회자하는 ‘재능기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라는 속마음을 털어놨다.

“‘재능기부’라는 말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물론 마음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함께할 수 있죠. 다만 내가 나의 재능을 내 마음이 가는 곳에 기부하는 형식이어야지, 누군가가 ‘좋은 일을 하니 너의 재능을 기부하라’고 강요하는 건 곤란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저와 같은 음악인 뿐만 아니라 예술계통에 있는 모든 분에게 해당하는 얘기라고 생각해요.”

그간의 일로 인한 피로감과 고충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말은 한편에선 오해를 살 수 있지만, 강단 있는 이야기였다. 누가 들으면 ‘너무 냉정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재능기부’로 참여한  ‘제6회 속초국제장애인영화제’ 개막식 무대 위에서 혼신을 다한 그녀의 모습을 본다면 누구도 그녀를 냉정한 사람이라  호도할 수는 없다. 이날 그녀는 이 영화제에 재능을 나누기 위해 강원도 속초까지 한걸음에 달려갔다. 국내외 유수의 공연장 무대에 올랐을 테지만, 그녀는 이날 속초에 마련된 작은 무대에서 자신의 숨겨진 카리스마를 내뿜었다.

“이번 영화제에는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릴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특히 그랬죠. 물론 필요한 것들이 완벽히 갖춰진 축제가 아니다 보니 힘든 점도 있었어요. 총연출을 맡은 레이첼 곽 교수님이 개막식이 끝난 뒤 발이 뒤틀어지고 감각이 없다고 하셨는데, 저도 똑같은 증상이 있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보람뿐 아니라 고통도 나누어 갖는구나 싶어서요. 사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무대에 올라 제가 맡은 연주만 잘하면 임무는 끝이잖아요. 하지만 좋은 점도, 힘든 점도 함께 나누고 나면 무대가 크든 작든 간에 애착이 생기죠.”

그녀는 고아원이나 미혼모, 홈리스 시설 등에서도 무료 공연을 하고 있다. 연주를 통해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할 때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도 빛났다.

“클래식이 대중가요보다 ‘벽’이 높은 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클래식 음악이 ‘선택받은 자’만의 전유물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벽을 깨고 더 많은 사람에게 나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요. 클래식에는 클래식만의 즐거움이 있거든요.”

바이올리니스트 여근하는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와 독일 Weimar 'Franz Liszt' 음악대학 Diplom, 동 대학 최고연주자과정I(Aufbau-Studium)/Orchester Akademie을 졸업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시 홍보대사로 활동했으며 현재 미국 Oikos University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feat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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