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2009년 5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의 이행 권고결정을 통지받고도 만 4년이 다 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묵살한 것은 기가 막힐 일이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이행 권고결정을 내린 사건은 부지기수로 많지만, 한결같은 특징은 모두 권력에 희생된 사건이란 사실이다. 희생자들은 권력에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국회의원 직을 강탈 당했다. 한마디로 억울함이 뼈에 사무쳤을 법한 사람들이다.

2009년 5월 진실화해위원회가 이행 권고 결정을 내린 사건은 박영록 전 야당 국회의원을 포함한 4명의 전직 의원에 관한 건이었다. 이들 4명은 1980년 7월 전두환 군부가 연행해 의원직을 강제로 사퇴시키고, 재산을 강제 헌납시킨 사건이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군부의 불법감금, 부정축재 정치인으로의 매도, 위협 등 가혹행위, 국회의원 사퇴 행위에 대해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또 박 전 의원을 불법구금하고 그의 전 재산을 강제 헌납토록 한 재산을 반환하고, 피해에 대해 적절한 구제조치를 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조사 결과를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하고, 행안부에 통보했다. 행안부는 이행 권고 사항의 주체가 국방부라고 판단, 국방부에 권고 사항을 전달했다. 2009년의 일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4년이 다 되도록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사과의 주체와 시기, 방법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만 발표했다. 이 무슨 해괴한 발언인가. 사과 한마디 하는데 무슨 4년이나 소요된다는 말인가. 강제 헌납한 7만 평에 대한 답변은 더욱 괴이하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이행권고가 있기 전에 있었던 소송을 근거로 대며 소송에서 패했을 뿐만 아니라 소멸시효 경과됐다고 주장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이행권고를 이행할 의지가 전혀 없음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서 사범부의 판단을 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게 타당하다는 결론을 냈다.

국방부의 이런 태도의 이면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니 변명거리가 차고 넘친다. 우선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이 아무런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고가 강제규정이 아닌 임의규정이어서 권고를 따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인사가 없다는 뜻이다.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사실은 억울한 피해자의 울분과 분노를 생각하면 허언(虛言)이다. 자신들이 해결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사법부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꼼수다.

그러나 이 이면을 들여다보면 국방부의 소극적 태도는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군부의 잔재 탓이다. 여전히 전두환 군부의 수하에서 일하던 군인이 군내 요직을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히 과거 모시던 분(?)의 뜻에 반하는 결정을 나서서 할 인사가 없다는 것이다.

아픈 일이다. 언제쯤이면 대한민국이 군부 독재의 잔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가진 돈이 29만원 뿐이라고 말하던 전두환은 지금도 수십명의 전현직 국회의원과 골프를 치며 살고 있다. 먹이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따라다니는 견공과 다를 바 무엇인가. 군인이여. 그만 벗어나라. 군부독재의 서슬에서 벗어나라. 정의를 구현하는 일에 앞장 서보라. 군인답게.

저작권자 © 위클리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