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인 회신시한 지연 등 현행법 위반 '오락가락'

 
[위클리오늘=신상득 기자] 송사에 휘말리면 재산 날리고 신세 망치기 일쑤다. ‘송사에 집안 기둥뿌리 뽑힌다’는 말까지 있는 걸 보면 어지간해서는 송사를 삼가는 게 좋다. 하지만 송사가 어디 자신만 싫다고 연루되지 않는 법이던가. 22년이나 송사에 연루돼 가산탕진하고 신세 망친 김성예(71·여) 씨가 있다. 김 씨가 이렇게 오랫동안 송사에 휘말린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억울함 때문이었다.

김 씨를 억울하게 만든 곳은 검찰이다. 수사를 제대로 했어야 할 검찰이 대충 수사를 하면서 문제가 됐다. 삼척동자가 보아도 유죄임이 명백한 사건을 검찰이 ‘혐의 없음’으로 처리한 경우도 있다. 김 씨는 검찰청을 바라볼 때마다 치가 떨린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시민단체에 가입해 검찰의 공권력 횡포에 억울함을 당한 사람을 돕고 있다. 풍족한 살림은 아니지만 몇 푼이라도 검찰의 공권력에 당한 사람을 돕는 일에 기부한다.

검찰의 공권력 횡포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은 시민단체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해소하는 방법이 있다. 국회의 청원권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푸는 방법도 있다. 물론 검찰의 공권력으로 인한 피해를 구제받는 일은 간단치 않다. 김 씨의 사례를 통해 검찰의 공권력 횡포와 국회의 청원권 묵살 행위, 국민 인권을 외려 유린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 악연의 시작

1991년 김성예 씨는 경기도 과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평범한 49세 주부였다. 초등학교 중퇴 학력이 전부였지만, 훌륭한 요리 실력 탓에 그의 식당은 늘 손님이 넘쳐났다. 3월 어느 날 그는 식당에 자주 드나드는 부동산 업자 이재성(가명)에게 보증금 2500만원 규모의 식당 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게 22년간 송사에 휘말리는 시발점이 될 줄은 까마득히 몰랐다. 이 씨는 2500만원을 부동산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며 이성미(가명) 씨의 땅을 사자고 제안했다. 땅값이 4000만원인데 자신이 절반을 낼 테니 2000만원을 내라는 이재성의 말을 듣고 김 씨는 4월15일 2000만원을 건넸다. 그해 10월 이재성은 이자를 3부로 쳐 줄 테니 1500만원을 자신의 친구 조승연(가명)에게 1년만 빌려주자고 했다. 이재성은 김 씨의 돈 1500만원에 자신의 돈 700만원을 합쳐 조승연에게 건넸다. 김 씨는 조 씨의 땅을 담보로 잡았다. 이재성은 김 씨에게 땅을 담보로 잡았으니 1년분 영수증을 미리 달라고 요구했다. 이자를 줄 때마다 영수증을 받는 게 번잡하다는 이유였다. 이재성은 영수증 12장을 건네받으면서 금액은 쓰지 말고, 날인만 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재성이 조승연으로부터 이자를 받아 그중 45만원씩 통장에 넣기로 했다.
그러나 약속한 3부 이자는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1996년 4월까지 62개월 동안 찔끔찔끔 이재성이 보내준 돈은 300만원 뿐이었다. 1996년 4월20일 땅을 산 이성미 씨에게서 연락이 와 만났더니 땅값이 1800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재성은 김 씨가 건넨 2000만원 중에서 1800만원으로 땅을 사고 200만원은 자신이 가로챈 것이었다. 물론 땅의 절반은 이재성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 둔 상태였다.
이재성에게 속은 게 분했던 김 씨는 이재성을 고소함과 동시에 이성미에게 매매대금 반환소송을 냈다. 이재성은 사기 혐의로 법정 구속됐고, 이성미는 땅값과 이자 등으로 2300만원을 지급했다. 김 씨는 이재성에게 5년간 받지 못한 1500만원에 대한 이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수사과정에서 이재성이 백지영수증 1장에 200만원이라 기재한 사실이 발각됐다. 이재성의 구속되자 이재성의 처가 공탁금 500만원을 걸고 찾아와 합의를 요구해 900만원에 합의해 주었다. 자신이 받아야 할 이자에는 크게 모자랐지만, 백지영수증을 또 위조할 것 같은 걱정, 출소한 뒤 이재성이 죽이겠다는 협박 때문에 겁을 먹고 합의를 해주었다. 결국 이재성은 항소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 공갈죄로 억울한 벌금형

출소한 이재성은 처를 시켜 김 씨를 공갈죄로 고소했다. 900만원을 건넨 것이 협박을 받고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대편 변호사는 2선 국회의원을 지낸 장모 씨였다. 막강한 변호사가 힘을 발휘했다. 수사 과정은 물론 재판 과정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1심에서 400만원 벌금형, 2심에서 200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김 씨로서는 사기죄로 구속됐다가 합의해줘서 풀려난 사기꾼의 고소가 어떻게 유죄로 판결날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 사건을 수사한 조모 검사는 자신이 직접 공판까지 출두해 구형했다. 이재성은 벌금형을 근거로 법원에서 900만원 지급 결정문을 받아들고, 김 씨의 가재도구를 압류했다. 그러고는 민사 합의금으로 2600만원을 요구했다. 겁이 난 김 씨는 2600만원을 줄 수밖에 없었다.
사기를 당해 구속됐던 자에게 공갈죄 누명을 쓴 김 씨는 억울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평생 공갈죄를 저지른 전과자로 사는 게 싫었다. 그래서 혐의를 벗을 요량에 백지영수증을 위조한 죄에 대해 사문서 위조로 고소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실형까지 받는 과정에서 위조가 명백했음에도 이재성에게 대법원까지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무고죄로 고소했지만 마찬가지로 무혐의 처리됐다. 이번에도 국회의원 출신 장 변호사의 막강한 권력이 동원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 위조된 어음으로 공갈죄 누명 씌워

억울함 속에 12년이 흘렀지만,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은 김 씨는 2003년 이재성에게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을 냈다. 조승연으로부터 받은 이자를 중간에서 가로챈 돈을 돌려달라는 소송이었다. 김 씨는 재판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이 공갈죄 누명을 쓰게 된 결정적 이유가 이재성이 위조한 유가증권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재성은 문방구 어음 62장을 가져가 1장당 45만원씩 기재한 뒤 조승연에게 날인토록 했고 이를 공갈죄를 수사하는 검찰에 제출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조승연이 날인한 62장 어음을 김 씨에게 주었다가 45만원씩 김 씨에게 이자를 지불할 때마다 조승연이 김 씨에게서 1장씩 회수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기 위해 어음을 위조한 것이었다. 이재성은 위조 어음을 근거로 검찰에 제시하면서 김 씨에게 이자를 다 지급했는데, 김 씨가 처에게 공갈을 쳐 900만원을 뜯겼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김 씨는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공갈죄 누명을 쓴 것이었다. 김 씨는 매우 화가 났다. 당시 검찰이 62장 어음에 대해 김 씨에게 물었다면, 얼마든지 혐의를 벗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김 씨에게 그런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재판부도 한두 차례 심리로 바로 벌금형을 선고했다. 어떤 변명이나 주장을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 위조된 어음 두고 조승연, 횡설수설
김 씨는 2008년 시민단체인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의의 도움을 얻어 어음을 위조해 검찰에 고소한 이재성에 대해 사문서 위조 및 동행사 죄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냈다. 어음이 위조됐다는 사실은 관련 서류만 보면 누가 봐도 입증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62장 어음을 조승연이 김 씨에게 전달했다는 조승연의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승연은 1996년 김 씨를 고발할 당시 검찰에 제출한 인증서와 2003년 민사소송 인증서에서 “김성예, 이재성, 조승연 3인이 있는 자리에서 어음 62장을 김성예에게 주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2004년 11월 민사소송에서는 법정에 증인으로 출두해 “3인이 있는 자리에서 증인(조승연)이 피고(이재성)에게 주었으나, 피고(이재성)가 원고(김 씨)에게 건네준 것은 알고 있지만 직접 보지는 못하였다”고 말을 바꿨다. 앞에서는 조승연 자신이 김성예에게 주었다고 말해 놓고, 법정에서는 이재성에게 주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 2004년 민사소송에서 제출한 증인진술서에서 조승연은 “(법정증언은) 이재성을 통하여 김성예에게 주었다는 표현일 뿐이며, 개인으로 피고 이재성에게 준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이 진술을 종합하면, 어음 62장이 이상하다는 점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검찰의 명확한 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 검찰의 엉터리 수사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최모 검사는 무슨 일인지 2009년 2월 이재성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의 이상한 결정으로 인해 김 씨는 억울함을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완전히 차단당하고 만 것이다. 최 검사는 횡설수설하면서 말을 바꾸는 조승연에 대해 수사할 능력이 없었을까. 아니면, 외부 청탁 등의 이유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일까. 강력한 국회의원 출신 변호사에 대해 전관예우를 하느라 급급했던 것일까.
수사 과정을 들여다보면 검찰의 잘못은 더욱 극명해 진다. 최 검사는 고소장이 접수되자 이 사건을 서울 서초경찰서로 보내 수사토록 했다. 그러나 서초경찰서 이모 경사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최 검사가 수사를 지휘했기 때문이다. 최 검사가 시키는대로 이 경사는 ‘혐의 없음’ 의견을 검찰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 경사는 “검찰 지휘를 받아야 하는 거 잘 알지 않느냐. 그 사건(조 씨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지휘 사건) 이후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졌다”며 검사 지휘 때문에 자신은 당시 제대로 수사할 수 없었음을 에둘러 밝혔다. 이 경사는 수사 의견서에서 2003년 자격모용유가증권 작성죄를 고소하지 않고 뒤늦게 고소했고, 김성예가 62장을 위조했다는 입증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심한 결과를 보고했다. 자신이 해야 할 수사를 고소인에게 입증해야 한다는 어이 없는 수사보고서인 것이다. 최 검사의 사문서 위조 무혐의 처분은 김 씨에 대한 인권말살 행위였다. 기소독점주의를 악용한 편파수사였다. 김 씨는 항고했지만 기각처리했다. 김 씨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소송을 제기해도, 자신의 한을 풀 방법은 없었다.

# 국회, 국가인권위마저 청원·진정 묵살
국가기관의 공력권 남용 등으로 억울함을 당할 경우 헌법 26조의 청원권을 활용해 국회 차원에서 재조사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시민단체의 청원이 접수되면 국회는 토론회를 거쳐 사건 검토보고서를 작성해 해당 부처(여기서는 검찰)에 보내 재심하도록 돼 있다. 불법행위가 확인되면 해당 부처를 고발하든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청원인에게 90일 이내(1회 한해 60일 연장 가능)에 조사결과를 통보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국회도 믿을 바가 못 됐다. 국회는 관련법을 모조리 무시했다. 입법기관이 현행법을 마구 위반한 것이다.
김 씨는 부정부패추방실천시민회의의 도움을 얻어 2013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검찰의 공권력 남용, 억울한 수사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주축이 됐다. 이들은 하나같이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 집단 할복을 해서라도 공권력에 피해를 당하지 않는 국가로 만들어야 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이들이 제출한 진정은 국회가 현행법을 위반해 검찰에 피해 당한 사람들의 인권을 말살하고 있으니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 결과를 청원인에게 통지하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도 성의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진정서가 접수되면 3개월 이내에 처분하고 결과를 통보해야 하는데, 무려 9개월이나 지난 뒤 기각 결정을 내렸다. 회원들이 사무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자,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에 업무협조 요청을 냈다. 업무협조 요청 내용은 국회가 청원인에게 조사 결과를 통보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국회는 코웃음을 쳤다. 정식으로 기각 결정을 하고 나중에 업무협조 요청을 보낸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각하 결정 취소 소송 뿐이었다. 1심 재판부는 소송에서 엉뚱한 이유를 들이대며 기각했다. 피고가 국가인권위원장이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내용은 뒷전이고 피고 적격 여부를 갖고 기각 결정한 것이다. 이제 2심이 진행 중이다. 아울러 피고를 국가인권위원회로 바꿔 소송을 또 제기할 계획이다.
한국에서 억울함을 안고 사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특히 검찰의 편파수사, 부당한 수사, 엉터리 수사, 전관예우 수사 등으로 피해자를 양산한다. 하지만, 검찰에 맞서 싸울 국민은 거의 없다. 그러는 사이 피해자는 갈수록 늘어난다. 나아가 이들을 구제할 국회나 인권위원회마저 억울함을 풀어주는데 딴전만 피운다. 언제쯤 억울한 사람이 살만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을까. 김 씨는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며 “공권력이 횡포부리는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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