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이 잘 살아야 지역도 함께 잘 산다”

한우 2마리를 100배로 늘려…어릴 적 꿈이었던 축산업 일궈낸 농민운동가

함양·산청에서 오피니언 리더로서 그 소임을 다하고 있는 농민운동가 박종호씨. 박 국장은 “지역발전과 농업의 변화를 늘 모색하며 여전히 미래를 위한 도전과 꿈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김국동 기자>

[위클리오늘=김국동 기자] 지리산 엄천강의 빠른 물살도 함양 유림면 함허정(涵虛亭) 앞에서는 흰구름과 종달새 노래를 담아내는 정답고 순한 강물이 된다. 강둑 너머 시골 아재가 논둑을 거닐며 봄에 심은 벼와 담소를 나누고 검게 그을린 얼굴을 들어 환하게 웃는다.

마치 심훈(본명 심대섭)의 장편소설 ‘상록수’의 배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듯 오버랩된다.

1935년 9월10일부터 1936년 2월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심훈의 ‘상록수’는 ‘채영신’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불러일으킨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농촌계몽소설이다.

저자는 당시 지식인의 관념적 농촌운동과 일제의 경제적 침탈을 비판함으로써 현실 정세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과 극복이란 요소를 실천하자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농촌 계몽 운동가 두 남녀의 순결한 애정과 이들의 농촌 계몽을 위한 헌신적 의지가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마침 함양군에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 같은 이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유림면 국계마을에서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한우 아버지’ 박종호(57)씨를 만났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느낀 점은 농촌과 축산업에 대한 관심과 열의, 지역문화와 역사에 대한 애정을 듬뿍 가진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 그 자체였다.

유림면 발전협의회 사무국장 소임을 맡고 있는 그는 40도에 육박하는 찜통 더위 속에서도 ‘상록수’의 주인공 남녀처럼 아내 김성숙씨와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200두가 넘는 한우를 돌보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박 국장은 1961년 함양군 휴천면 금반리에 태어나 7살 때 외가가 있는 산청군 생초면 대포마을로 이사를 했다. 그 마을은 여흥 민씨 집성촌으로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했다.

가족들이 그곳으로 이사를 한 까닭은 농업계 학교를 나온 부친이 적합한 과수원 부지를 찾다가 외조부의 권유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케 된 것이다.

산청 생초면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군 복무를 마친 뒤엔 부산 성심외국어대학 근처에서 사회의 첫발을 내딛었다. 서류 복사와 등공예 지점토 일도 배우고 매장을 운영하기까지 도시청년으로서 나름 성공한 젊은이였다.

박 국장은 그곳에서 3살 아래 고향 처녀를 만나 결혼을 했다. 하지만 고향과 농촌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어 1992년에 다시 부모님이 계시는 대포마을로 돌아왔다.

박 국장은 어릴 때부터 ‘부자 농촌’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선진기술을 농업에 접목시켜 부가가치를 높여야 농민이 잘 살고, 지역도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농업과 관련된 선진기술이라면 ‘부자 농촌’에 대한 꿈과 목표 실현을 위해 어디든지 달려가 배우고 익혔다.

경남 산청에서 경기 수원까지 먼 길도 단숨에 달려갔다. 전국에서 최고의 시설을 갖춘 수원 원예시설에서 배나무 식재에 대한 교육을 받고 대포마을에 배나무를 심어 부농의 꿈을 키워갔다.

이런 열정 때문인지 주민들은 그에게 대포마을 이장을 맡겼다.

마을 주민들에게 추진 경과를 설명하고 있는 해피빌리지마을 추진위원장 박종호씨(왼쪽 사진)와 한우 200두가 넘는 함양군 유림면 소재 박 국장의 한우 농장. <사진=김국동 기자>

그 무렵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축산업에 대한 도전을 염소 30마리와 한우 2마리를 가지고 시작했다. 2년 정도 지나면서 낙농업에 대한 자신이 생기자, 경기 포천에서 젖소 송아지 22마리를 사들여 본격적으로 축산업에 접어들었다.

부족한 시설비는 농민후계자 자금 1500만 원을 융자받아 숨통이 틔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축산업을 시작한 1994년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진행되던 해라 우리나라 농업이 여러 차례 고비를 맞던 어려운 시기였다.

박 국장은 이 과정에서 낙우회, 농민회, 농업경영인회에 참가하면서 점차 사회의 현실적인 면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여러 단체에도 꾸준히 참여하면서 축산업과 사회생활을 병행했다.

박 국장은 이에 대해 “나 혼자가 아니라 농민들이 같이 잘 살아야 지역이 잘 산다는 마음이 절실했었고, 무엇으로 농촌의 소득을 올릴까 무척 고민하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그가 공동체의 씨앗을 뿌린 생초면 대포마을은 2008년 정부로부터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돼 사업비 2억 원을 지원받아 마을공동 체험장, 민박, 농가식당, 농산물 판매장 등 농촌체험 공간으로 조성됐다.

대포마을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경호강변에 위치해 천혜의 자연환경과 대포서원, 민씨 고가 등 전통문화 자산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농촌체험 관광 활성화를 통한 농외소득 증대와 도시·농촌 간 교류의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박 국장이 뿌린 씨앗이 결실을 맺게 됐다.

또한, 산청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동의보감촌’도 그의 노력과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최고의 힐링휴양지로 일컬어지는 경남의 명소 ‘동의보감촌’도 처음엔 경남약초작목반의 소규모 조직에서 시작됐다.

당시 회원은 박 국장을 비롯해 산청에서 10명, 함양에서 1명밖에 되지 않는 미약한 조직이었지만 여기서 시작된 생각들이 ‘산청한방테마파크’라는 큰 보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산청군에 생기를 불어넣고 지역경제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동의보감촌은 산청군의 새로운 관광수입 블루칩으로 각광받고 있다.

박 국장을 비롯한 약초연구회 회원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다고 생각됐다. (계속)

경남 산청군 동의보감촌 전경 <사진=산청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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