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표규 교수 / 단국대 군사학과

[위클리오늘신문사] 지난 번 게재된 ‘[칼럼] 창조적 해법…’이 보도된 후 독자 중 몇 분이 “북핵 위협이 상존(常存)하고 유사 시 남한에 사용가능하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북한이 아직 핵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100% 사용하지 않는다는 답을 내놓기 어렵다. 그러나 핵무기 개발이후 사용억제를 위한 인류의 노력, 핵전략과 위기 및 전쟁 시 핵사용 (위협)사례, 그리고 최근 연구결과에서 제시된 핵무기 사용 조건 검증을 통해 북한의 핵사용 가능성을 추론해보고자 한다.

핵무기 사용금지를 위한 노력은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미국이 처음 시작하였다. 미국은 핵무기가 보여 준 가공할 위력과 그 피해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더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종전 후인 1946년 바루크플랜(Baruch Plan)을 실행, 유엔의 통제 하에 핵을 두려고 하였으나, 독자적 개발목표를 가졌던 소련의 거부로 실행되지 못했다.

그 후 1957년 2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창설되어 핵분열 물질의 군사적 목적 사용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다. 또한 쿠바 미사일 위기 시 핵전쟁 가능성을 확인한 미·소 양국은 1963년 제한된 핵실험 금지조약(LTBT), 1972년 양국 핵무기 보유수를 제한한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1974년 지하 핵실험 금지조약(TTBT) 등을 체결함으로써 선언적이었지만 추가적인 핵실험을 금지하고 핵무기 보유 자체를 제한하고자 하였다.

이 와중에 1968년 7월 1일 세계 5대 핵보유국이 체결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이 196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되고, 1970년부터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IAEA와 연계되면서, IAEA는 핵개발을 원하는 비핵국가들에 대한 핵물질 사찰 기능을 보유하게 됨으로써, 핵 확산방지 노력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 인도·파키스탄 등이 NPT 체제를 이탈하여 핵보유국이 되기도 하였으나 199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핵무기 자발적 해체,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 독립 국가들의 경제적 안정을 조건으로 한 핵 포기, 그 후 리비아의 핵 포기 선언 등을 이끌어 내면서 국제사회 및 기구들의 노력은 효과를 발휘하였다.

특히 미국과 러시아는 제2차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체결, 2007년까지 2500개 이하로 감축하기로 서명함으로써, 확산방지를 넘어 기존 보유 수량 감축노력도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는 여러 가지 국제적 사건과 맞물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2019년 현재 양국은 각각 약 6000여 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오바마 대통령 제의로 ‘핵안보정상회의’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매2년 주기로 4차까지 개최되어 핵 사용방지를 위한 노력을 정치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전쟁이나 위기 시 핵을 사용하기 위한 핵 국가들의 전략은 '선제 불사용 원칙(No first use of nuclear weapons)'이지만, 적의 핵공격에 대해서는 핵으로 대응하기 위한 제2격 능력과 사용의 신뢰성을 확보하려는 노력 역시 멈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쿠바 미사일 위기 시 미국 케네디 대통령과 소련 흐루쇼프 서기장 간에 벌어진 협상을 보면, 핵보유국 간에는 핵 보유 수량이나 기술적 우위와는 전혀 무관하게 핵전쟁 예방이란 궁극적 목표를 지키고 있었다.

이것이 미국과 소련 간에 벌어진 진영 간 대결이 냉전으로 종료된 결정적인 이유이다.

이에 반해 미 해군대학원 전략교수를 지낸 마이클 헨델 교수는 1990년 걸프전에서 미국 등 선진국이 사용한 신무기체계 보유가 불가능하며, 안보가 불안한 저급 독재국가들인 북한, 시리아 등이 마지막 체제 보장을 위해 핵무기 보유를 추진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최근 카네기 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한 한 기관이 제시한 향후 핵사용이 가능한 조건은 ‘국가 체제 보존의 어려움’ ‘국가가 지향하는 이념 등 가치관의 말살’ 그리고 ‘국가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표상의 침해’ 등 세 가지로 압축되고 있다.

이들 요소를 북한에 대입하여 보면 첫째, 북한의 체제보장은 미·북 협상에 참가하는 북한의 전제 조건으로 협상이 진행되거나 설사 결렬되더라도 현재와 같은 지정학적 조건에서는 내부가 아닌 외부 위협 때문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둘째, 북한의 공산·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이미 냉전 종료와 함께 그 가치가 퇴색되었으며, 북한조차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취하고 있는 미국과 협상을 원하는 것을 볼 때, 이를 지키기 위한 핵사용 가능성 역시 전무하다.

마지막 조건은 북한 방송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존엄 훼손이 체제보존의 가치보다 더 크다고 느끼거나 참수작전 등으로 암살되기 직전, 즉 죽음의 공포가 극에 달하였을 때이다. 이때 사용 가능성에 대한 판단은 기존 독재자들의 최후를 통해 추정 가능할 것이다.

필자처럼 어릴 적부터 반공교육을 많이 받은 세대는 ‘북한지도자는 곧 독재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지난 6월 30일 남북미 판문점 정상회담, 싱가포르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등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과거 김정일과는 달리 은둔의 독재자라기보다는 국가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정상적인 정치지도자의 모습에 가까웠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러한 회담 자체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전쟁과 반전쟁’에서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과 피해 때문에 그 누구도 핵단추를 감히 누를 수 없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만큼 합리적 이성을 지닌 지도자가 핵을 사용할 가능성은 없다. 그래서 최악의 경우로 김정은을 독재자로 상정하고, 유사한 성향의 지도자들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취한 행동을 통해 그의 미래 결정을 유추해 보고자 한다.

우선 북한과 비슷한 이유로 핵을 보유하려고 노력하였던,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미국 등 서방세계의 압박과 경제제재로 고통 받는 국민들 때문에 핵무기 원료와 무기부품 및 암시장에서 구한 핵폭탄 설계도를 파기하였다.

태평양 전쟁 시 일본의 육군 및 총리대신, 육군참모총장 등을 겸직하면서 군부 독재체제를 구축하였던 도조 히데키는 본토 방어를 위한 최후의 방어선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권력을 내놓았다. 그 후 천황이 항복하자 권총자살을 시도하였지만, 미수에 거치고 전범재판을 통해 사형에 처해졌다.

인류 역사상 최대 희생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의 주범 히틀러는 연합군과 소련군이 베를린으로 진격해 오자 최후의 항전대신에 1945년 4월 30일 지하 벙커에서 자살을 택하였다.

이처럼 우리가 아는 역사 속의 독재자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더 많은 희생과 피해를 자초하기보다는 스스로 단죄의 길을 택하여 역사의 심판을 받고 있다.

앞에서 본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조건인 김정은이 최악의 상황에서 핵을 사용할 가능성보다는, 역사 속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핵사용보다는 다른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현재 한반도 상황은 북한이 6차에 걸친 핵실험을 하였기 때문에 그 능력과 위협은 현실화되었고, 우리는 실재하는 북한의 핵 위협 속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논리적으로 염출된 조건으로 검증해 보면, 그것이 사용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그렇기 때문에 핵사용 거부를 위한 인류의 노력, 즉 정의 추구를 믿는 필자는 오늘도 평상시의 삶을 편안히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북핵이 우리에게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 중 한명도 위협을 피해 한국을 떠났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이 글의 목적은 무조건적으로 북핵 위협을 과장하는 일부 주장에 현혹되어 생활의 리듬을 잃지 말자는 것이지, 북핵 비핵화를 위한 정부와 국제사회의 노력을 저평가하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북한 비핵화가 이루어져 온전한 평화를 느끼는 그날까지 대한민국 국민, 정부, 국제사회는 할 수 있는 일들을 빠짐없이 다해야 한다.

단국대학교 군사학과 이표규 교수

※ 본 기고는 <위클리오늘>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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