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그리는 사랑,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한 올도 남김없이 세상에 주고 가리라

 

 

 

하정민 한국용산문화예술인총연합회 회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가 및 동 대학원 졸업.
미국 LBU 명예박사학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성경통신대학교 수료.
㈔세계청소년문화교류협회 이사장.
㈔국가보훈문화예술협회 수석부회장.
한국용산문화예예술인총연합회


[위클리오늘=로즈박 칼럼니스트] 늦가을의 햇살은 유난히 반짝인다. 막 지려는 저녁 햇살을 작은 새가 물어다 주는 모이처럼 입술을 내밀고 받는 나뭇잎들을 보며 올라가는, 갤러리 쉐자르의 나무계단에는 노랑과 자주 가을국화가 곱게 피어 있다.

용산전쟁기념관 안에 있는 갤러리 쉐자르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화단의 서정시인’이라는 그의 별명처럼 몸에 딱 맞는 검정 수트와 화사한 꽃무늬 넥타이를 맨 하정민 (서울 용산구 미술협회 회장)이 환하게 웃으며 맞아준다. 매고 있는 넥타이가 인상적이라는 말에 그의 작품을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이미 오래 전 전공인 동양화가 지닌 전통의 규범을 탈피한 그의 작품은 21세기 문화 예술이 지향하는 융합으로 진화하는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향 짙은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그와 마주 앉았다.

꽃을 그리는 화가인 그는 베스트셀러가 된 ‘지선아 사랑해’, ‘긍정의 힘’, 이해인 수녀 시집 등의 표지와 일러스트레이션을 선보였다. 또 와인병을 디자인하거나 각종 사회봉사 활동을 벌이는 등 만능 엔터테인먼트로 그를 따라 다니는 수식어가 넘쳐난다.

활동범위가 지나치게 넓은 게 시각예술의 본질인 그림을 벗어난 게 아니냐는 말에 그는 손사래를 친다.

“현대 예술은 경계가 모호합니다. 연극·영화·공연 등 모든 것에 시각 예술인 미술이 접목되지요. 디자인을 넘어 심지어 순수 문학에 이르기까지 예술이 지닌 본질은 보존이 아니라 파괴이기에 솟아나고 또 솟아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술가는 늘 깨어 있어야 하고 한 순간도 자신을 늦출 수가 없기에 사회 참여가 필요합니다. 흔히 예술은 일상의 삶을 초월해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예술도 삶 속에 들어있기에 전업 작가는 작품을 팔아야 합니다. 일년에 한 두 점 파는 작품으로는 현상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재능과 노력을 인정받은 인기 작가라는 사실이 결코 부끄럽지 않습니다”

고교시절 그는 세계챔피언을 꿈꾸던 권투선수였다. 당시 교내에서는 대적할 상대가 없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 늦은 입시준비에도 불구하고 장학금을 받고 홍익대 미대 동양화과에 진학했다. 우선 입학을 하고 다시 권투를 시작할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그림에 깊이 매몰되어 갔다.

“잠을 자다가도 누군가 먹을 가는 소리가 들려 한밤중에 일어나 밤새워 그림을 그렸지요. 거의 잠을 자지 않고 대학시절을 보냈습니다. 권투를 포기하고 그림으로 세계 챔프가 되기로 목표를 바꾼 것이지요. 사각의 링은 물러 설 곳이 없는 곳입니다.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였기에 그 치열한 세계에서 생존의 법칙을 배웠고 그것을 지금까지 지켜 왔습니다.”

이후 그는1990년대 중반 이른 나이에 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고 이후 국전대상 작가가 되어 70여 회의 개인전과 수 백 회의 전시를 진행했다.

사십 대 중반의 늦은 결혼이 일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전에 사랑했던 사람과 피치 못해 헤어진 후 일에만 전념하다 결혼이 늦어졌다며 웃는다. 그는 결혼할 때 받은 축의금과 신혼여행비를 필리핀의 나환자촌에 교회를 세우는데 기부했다. 독실한 종교인인 그가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며 한 일이었다.

“딸아이를 얻은 건 내 삶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 그는 삶을 바라보는 모든 관점이 달라졌다. 그가 이른 시기에 얻은 모든 성공을 사회에 환원 시키고 싶었다. “홀트아동복지회 장애인 학교의 명예교사로 나가던 첫날 장애아이들과 같이 축구를 하면서 다짐을 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한 올도 남김없이 세상에 주고 가리라고….”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 그는 목사님인 아버지를 만나고 어머니와 좀 더 가까이 있으려 함께 갤러리로 출근을 한다. 좀 더 구체적인 나눔을 실천하려 최근에 다니는 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고 한다.

“더욱 확장된 작품을 발표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기획으로 미술시장을 확대시켜 작가들과 공유 하려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열 가지 이상의 일을 하더라도 링 위에서 싸울 때처럼 포기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 안에는 아이와 아내, 부모님이 함께 믿음으로 계시기에 가능하지요.”

인터뷰가 끝날 즈음 앞서 전시했던 청각 장애인들의 작품이 내려진 옆 자리에 걸린 작품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비니의 정원’이란 작품으로, 화려한 꽃들이 보색의 강렬한 대비에도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번져나가 보듬어 안고 있다.

“제 작품은 모두가 사랑입니다. 모든 사랑이 여기 담겨 있지요.”

작품처럼 수려한 그의 배웅을 받으며 갤러리 쉐자르의 나무 계단을 내려올 때 문득 고은 시인의 시 ‘그 꽃’이 떠올랐다.

“내려갈 때/보았네/올라갈 때/못 본/그 꽃”

어느새 떠오른 맑은 별 하나가 머리 위에서 또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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