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리더십’ 치명적 약점 해부

 

▲ 박근혜 후보가 11일 새누리당사에서 대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최종 인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발표문도 혼자 쓰고 결정도 혼자 내려        
“공주 이미지 벗어던질 과감한 스킨십 아쉬워”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선거대책위원회 인선을 마무리 짓고 정체에 빠진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신발끈을 고쳐맸다. 다행히 안철수 후보가 ‘무소속 후보’의 선명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와 티격태격하느라 지지율은 소폭 상승흐름을 타고 있다. 하지만 여권 인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박근혜 리더십’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많다. 박 후보 본인은 노력한다고 하는데도 왜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박 후보의 주변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반대편 진영의 말도 들어주는 소통과 배려 부족 
리더십에 변화 있어야 대선 승리 가능해

바둑을 두고 나서 자기가 둔 수를 복기하다보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실수를 발견하곤 한다. 박근혜 후보가 새누리당을 ‘사당(私黨)화’ 시킨다는 비판이나 ‘불통’(不通) 이미지가 덧씌워진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 ‘박근혜 리더십’의 실행파일을 분석해보자.    

지난 11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한양빌딩에 자리 잡은 새누리당사 4층 기자실은 입추의 여지없이 기자들로 꽉 찼다. 박근혜 후보가 2차 선대위 인선결과를 직접 발표하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 일간신문과 주요 방송사, 종편채널과 지방신문 등 새누리당 출입기자들이 제각각 노트북과 카메라, 방송카메라를 매만지며 박근혜 후보를 기다렸다. 박 후보실에서 배포한 일정표에는 ‘10시 기자실 방문’으로 적혀 있었다.

하지만 박 후보는 10시가 한참 지나서야 도착했다. 그동안 새누리당 조윤선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조금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정현 공보단장도 부지런히 통화하고 메모하며 자기의 ‘할 일’에만 충실했다. 격무에 바빠서 수업에 늦는 담임선생님을 한두 번 기다린 게 아니라는 듯 제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착한’ 학생들을 보는 듯 했다. TV채널 앞에서 생방송을 기다리고 있는 국민들과 약속한 10시는 그렇게 훌쩍 지나갔다. 국민을 윗자리에 놓고 봉사하는 이른바 ‘서번트 리더십’ 측면에서는 낙제점이나 다름없었다.    

서번트 리더십 낙제수준 
대변인실은 이번에도 사전에 박 후보의 발표문을 기자들에게 나눠주지 않았다. 박 후보가 마지막까지 직접 발표문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던 대변인실 관계자도 선대위의 최종 인선 내용을 알지 못했다. 지난 9월 24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박 후보의 기자회견 때와 마찬가지였다. 리더가 알고 있는 내용을 모르고 있으면 참모는 후보의 입만 쳐다볼 수밖에 없다. 조순형 전 의원이 지난 9일 새누리당 토론회 자리에 불려와 “박 후보가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문을 혼자 썼다고 하는데 공당에서 이게 될 일인가”라고 지적했지만 이번에도 개선된 점은 없었다. 박 후보의 입만 바라보는 당내 의사결정구조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지만 변화는 요원해 보였다.

10시 10분이 다돼 기자실에 들어선 박 후보는 “늦어서 죄송하다”고 짤막하게 말한 뒤 단상 앞에 서서 앞줄에 앉아 있는 몇몇 기자와 살짝 눈인사를 나눴다. ‘소통’을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리더의 보디랭귀지 측면에서 보자면, 박 후보는 상대방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활짝 웃는 표정도, 그렇다고 신뢰감을 주는 무게감 있고 기품 있는 표정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14년차 정치인이라는 경력이 무색할 정도의 감동이 없는, 어정쩡한 웃음이었다.      

어색한 미소와 보디랭귀지
 박 후보는 곧이어 “중앙선대위 인선을 보고 드린다”며 발표문을 낭독했다. 공식처럼 발표 뒤에 몇몇 기자들의 질의와 응답이 이어졌다. 하지만 박 후보 측에서 봤을 때 껄끄러운 상대일 수 있는 진보성향 매체의 기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질문이 제한됐다. 리더십 전문가들은 이와관련, 박 후보가 안철수 후보 캠프의 박선숙선대본부장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박선숙 본부장은 민주당 의원 시절에도 “‘조중동’과도 필요하면 인터뷰를 하는” 스타일로 유명했다. “미디어는 (후보가) 첫 번째 만나는 국민이다. 내 맘에 안 든다고 만나지 않으면, 조중동이 아니라 조중동의 독자인 국민까지 포기하는 것”이라는 것이 박 본부장의 소신이었다고 한다. 박 후보에게 필요한 것은 이 같은 소통능력이라는 것이다. 진영과 입장이 다른 인사를 영입해 자리를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후보 자신이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진정한 소통이라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박 후보는 여전히 소통 노력이 부족한 듯 보였다. 박 후보는 전날 경기도청을 방문해 김문수 지사와 면담하던 때도 ‘불통’ 이미지를 재확인시켰다. “박 후보의 그림(앵글)이 예쁘게 안 나온다”며 새누리당 대변인실이 기자들에게 ‘3미터 접근 금지령’을 내리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언론의 생리를 모르는 이 같은 과도한 충성심은 역작용을 불러왔다. 보수·진보 매체를 떠나 모든 기자들이 벌떼처럼 들고 나선 것은 당연했다.

과감한 스킨십 부족 여전  
 박근혜식 일방통행과 부족한 스킨십 문제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기자가 이재오 의원의 선대위 참여 가능성에 대해 묻자 박 후보는 “선대위에 모시려고 여러 번 연락을 드렸는데 아직 답을 못 얻었다”며 멋쩍은 듯 ‘허~ 허~’ 웃고는 “선대위 참여를 다시 제의할 것을 생각 중이다”고 답했다. 박 후보 발언의 핵심은 ‘여러 번 제의했다’는 대목에 방점이 찍혔다. 마치 ‘나는 할 만큼 했는데, 상대방이 응하지 않고 있다’는 뉘앙스였다. 박 후보의 이 같은 답변을 들은 대부분의 기자들이 ‘이재오 영입은 물건너갔구나’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진정성을 찾기 힘들었다. 

실제 박 후보는 최경환 전 비서실장을 통해 여러 번 이 의원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않아 실망했다고 한다. 최 전 실장은 국회 의원회관으로 이재오 의원을 찾아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정작 이 의원은 박 후보가 직접 전화해주기를 바랐다는 후문이다. 이재오 의원측 보좌관도 기자에게 “박 후보가 이 의원을 불렀다는데 부른 적이 없다. 노력했다고 하는데 진정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상대방이 정말 필요하다면 자기 자존심을 꺾고서라도 모셔오는 것이 영입의 기본이다. 2002년 대선 당시 젊은이들이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던 것은 ‘단일화 파기’를 선언한 정몽준 전 대표의 집을 찾아가 만나달라며 서성거리던 ‘바보 노무현’에 대한 안쓰러움과 진정성 때문이었다는 것이 선거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박 후보의 ‘불통’ 이미지나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앞서 제기한 이런 부분에서 기인한다. 그럼에도 박 후보는 물론이고 핵심 측근들도 ‘할 만큼 하고 있다’는 해명성 발언으로 점수를 까먹곤 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진념 전 부총리의 영입 불발 문제도 질문에 올랐다. 호남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때 경제수장을 지낸 진념 전 부총리는 하루 전에 대부분의 언론에 영입 사실이 알려져 지역화합 차원의 인선으로 대서특필됐다. 하지만 이날 영입 명단에서 빠져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언론이 오보를 한 셈이 됐다. 이와 관련해 박 후보는 “일부 언론의 추측성 보도로 그렇게 됐다. 그러니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것 역시 문제가 생겼을 때 잘못을 자신에게 돌리는 겸손한 리더로서의 모습으로는 아쉬웠다는 지적이다.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설득력 있는 해명이라기보다는 ‘이 정도 설명했으면 됐지 않느냐?’는 느낌을 갖게 했다. 박 후보는 새누리당 내분을 불러온 쇄신파 의원들의 인적 쇄신 요구도 ‘박근혜 위기론’을 타개하려는 ‘충정’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후보 흔들기’나 ‘권력다툼’으로 인식해 불통 논란을 가중시킨 바 있다. 
 
국민 눈높이에서 사력 다해야
박 후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선거의 여왕이다. 지난해부터 3자대결에서 지지율 1위를 빼앗긴 적이 없는 여당의 유력후보다. 하지만 박 후보로서는 이번 대선이 자신의 당선을 위해 뛰어야 할 최초의 전국선거나 다름없다. 그동안은 다른 사람들을 당선시키고자 도운 것일 뿐, 자신을 위한 선거는 자신의 근거지인 TK지역에서만 치러왔기 때문이다. 대선은 여야 진영이 5년을 두고 벌이는 건곤일척의 승부다. 대한민국에서 대선의 승자는 전부를 얻지만 패한 자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와 관련해 “박근혜 후보가 현재 자신이 단 한 표가 급한 ‘후보’라는 점을 잊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평론가는 “박근혜 후보가 선거 때 사력을 다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대선은 다르다. 나와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도 유권자다. ‘박근혜식’으로 사력을 다할 게 아니라 국민이 봤을 때 국민의 눈높이에서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스터 쓴소리’로 유명한 조순형 전 의원은 “박근혜 후보의 대선가도에 적신호가 켜져 있는 근본 원인은 1인 지배 체제, 박근혜 후보의 리더십에 있다. 사당화를 타파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친박 2선 후퇴론을 처음 제기한 남경필 의원도 “박 후보의 말에 당 간부들이 우르르 쫓아가는 듯한 의사결정 구조가 ‘불통’의 원인이며 이것을 깨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박 후보가 이 같은 충고를 받아들여 리더십에 의미 있는 변화를 보여야만 대선 승리를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변화의 시작은 박 후보의 결심 여하에 달려 있다.  
 

박스기사 / 인의 장막 ‘문고리 권력’은 철옹성?  

박 후보는 쇄신파가 제기한 이른바 ‘문고리 권력’의 2선 후퇴 문제에 대해서도 뾰족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당 안팎에서 ‘불통의 근원’이라고 지목하는 이들은 박 후보가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 당선돼 정치권에 입문한 뒤 14년간 그를 보좌해온 보좌관과 비서관들이다.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이재만, 이춘상 보좌관과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을 이른바 ‘보좌진 4인방’으로 꼽는다.

쇄신파 의원들에 따르면 이들은 통상적인 실무 보좌를 넘어 정무와 인재 영입, 일정 등 전 분야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김종인 행복추진위원장도 박 후보와 직접 통화하지 못하고 이들을 통해야만 통화할 정도로 ‘실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돈 비대위원 등 전직 비대위원들이 박 후보 비서진의 2선 퇴진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지만 이들에 대한 박 후보의 신임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후보 캠프 핵심인 이정현 공보단장도 “선거가 코앞인데 후보 보좌진을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정치를 모르는 사람들의 얘기”라고 잘라 말할 정도로 이들이 박 후보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하지만 보좌진 문제가 불거진  이상, 상징적인 의미에서라도 이들에 대한 2선 후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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