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수장학회’ 반전카드 막후

 

▲ 전국언론노동조합이 1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앞에서 최필립·김재철·이진숙 고소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정수장학회 문제는 박근혜 후보의 대선가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박 후보가 직접 나설수 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사진=뉴시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정수장학회 문제의 해법을 내놓았다. 종합하면, 대선가도에 부담을 주고 있는 최필립 현 이사장이 물러나고 정치적 색깔이 옅은 중립적인 인사로 이사진을 새로 구성하는 방법을 모색해달라는 메시지다. 장학회 이름도 장기적으로는 박 후보와 무관한 이름으로 바꿨으면 하는 기대를 나타냈다. 문제는 이사장직을 고수하고 있는 최필립 이사장이 박 후보가 ‘사퇴’를 권유했다고 해서 쉽게 물러날 수 있는 ‘간단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 이사장은 어떤 인물이기에 박 후보도 ‘눈치’를 보는 것일까. 

최필립 이사장은 박후보의 측근이자 은인 , 후원자
직접 사퇴 요구는 부담돼 애국적 충정으로 자진사퇴 호소

최필립 이사장(85)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가인 최능진의 장남이다. 경찰 출신인 그의 부친은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 당시 5·10 총선거에 이승만이 동대문 갑구에 출마하자 “이승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독재할 인간이다”며 동대문 갑구에 입후보했다가 이승만 후보 측의 방해로 입후보 등록 취소를 당하면서 이승만의 정적이 되었다.

최능진은 제헌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할 때 독립운동가 서재필을 옹립해 이승만에 대항하면서 완전히 이승만 대통령의 눈 밖에 났다고 한다. 결국 최능진은 대한민국 정부 전복 혐의를 뒤집어쓰고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고, 한국전쟁이 터진 뒤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1951년 처형당했다.

최필립은 독립운동가의 아들
최능진의 자녀들은 지속적으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2009년 9월 6일, 진실화해위원회가 이승만 정권하에서 군법회의를 통해 사형선고를 받고 총살당한 최능진이 부당한 죽음을 당했다고 결론짓고 국가의 사과와 법원이 재심을 수용해줄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아버지의 ‘꼬장꼬장함’과 ‘결기’를 그대로 이어받은 최필립 이사장은 외교관 생활을 하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발탁되어 박 대통령의 의전비서관으로 일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유신정국에서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하던 박 후보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박 후보로서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감탄고토(甘呑苦吐)할 수 없는 오랜 측근이자 은인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박 후보보다 나이가 25년이나 위다.

박 후보는 이런 인연 때문에 자신이 10년 동안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한 뒤 2005년 최이사장에게 정수장학회를 맡겼다. 박 후보가 직접 이사장직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최이사장을 잘 아는 인사에 따르면, 최 이사장은 이때부터 정수장학회를 자신이 지켜야 할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의 정치적 유산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박 후보를 대신해 정수장학회를 ‘관리’한다는 나름의 사명감을 가져왔다는 얘기다. 최 이사장이 장학사업 외에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을 지원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후보가 그동안 공개적으로 최 이사장에게 “물러나 달라”고 말할 수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다.

최 씨 형제, 박근혜 후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사진=뉴시스]
또 하나, 최 이사장은 오래전부터 박근혜 후보의 정치적 후원자였다. 최 이사장은 박 후보가 2002년 창당했던 한국미래연합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2008년부터 최 이사장과 가족 명의로 박 후보에게 3000만 원의 정치후원금을 냈다. 최 이사장의 동생인 최만립 씨(78)는 무궁화사랑운동본부 회장을 맡고 있는데, 무궁화사랑운동본부는 2006년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난 6월에는 <박근혜리더십-꽃으로 검을 베다>를 출판한 바 있다. 이처럼 최 이사장 일가가 모두 박 후보를 열성적으로 돕고 있는 마당에 박 후보가 최 이사장의 자진사퇴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이 박 캠프 쪽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박 후보는 9월 13일 “이사진이 잘 판단해 주셨으면 하는 게 제 개인적인 바람”이라며 최필립 이사장의 퇴진을 조심스레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최 이사장으로부터 별다른 응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후보는 최필립 이사장과 김재철 MBC 사장 측의 ‘MBC 지분 매각 비밀협상’ 사실이 공개돼 파문이 커진 뒤에도 “저나 야당이 이래라 저래라 할 권한이 없다”는 대답만 내놨었다. 

하지만 정수장학회 문제가 지지율에까지 민감하게 영향을 미치자 박 후보도 최근 전향적으로 생각을 바꿨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비롯해 국민대통합위원회 한광옥 수석부위원장, 중앙선대위 심재철 부위원장이 잇따라 “국가 발전을 위해 최 이사장이 사퇴할 것을 요청한다”며 최 이사장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동시에 물밑에서도 최 이사장의 자진사퇴를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채널로 여러 인사들이 움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10월 21일 박 후보 나름의 해법이 나왔던 것이다.

이사회 열어 최 이사장 거취논의
박 후보는 이번에 공개적으로 최 이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보다 이사회가 알아서 최 이사장의 사퇴를 결정하도록 모양새도 갖추어 주었다. 여기에는 박 후보가 직접 나서 최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할 경우 야당에게 공격의 빌미가 된다는 점도 고려됐다고 한다. 박 후보 캠프의 한 인사는 “정수장학회가 조만간 이사회를 열어 박 후보가 요구한 최 이사장의 거취나 공공성 강화 문제 등을 결정할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현재 5명의 정수장학회 이사 가운데 2명은 박근혜 이사장 시절 임명됐고, 나머지 2명은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 근무 경력이 있는 외교관 출신이다. 향후 이사진이 사퇴하고 중립적 인사들로 개편되면 형식적으로는 박 후보와 완전히 단절되는 셈이다.

박 후보의 요구대로 최필립 이사장이 사퇴하고 이사진이 개편되면 장학회 명칭 변경과 장학회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도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는 “정수장학회가 할 일은 장학회 이사진의 총사퇴와 명칭 변경 및 개편을 전제로, 이 문제를 다룰 독립적인 사회적 기구를 구성하는 일이다. 기구 구성의 구체적인 방안은 불필요한 정쟁을 막기 위해 여야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MBC지분 매각 물건너가
최필립 이사장과 MBC는 정수장학회가 보유 중인 부산일보 주식 100%와 문화방송 주식 30%를 매각하고 그 대금을 복지 비용으로 내놓는 방안을 비밀리에 논의한 바 있다. 하지만 비밀대화가 <한겨레> 보도로 유출되면서 이들이 논의한 MBC 지분 매각 문제는 이미 물건너갔다는 것이 정설이다.

부산일보 지분매각 문제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일보가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과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며 일인시위를 감행한 이정호 편집국장을 해고하는 강수를 두면서 부산일보 지분 매각문제는 개편될 차기 이사진에서 결정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수장학회 문제는 이번 대선에서 박 후보에 대한 평가의 준거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다.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 문제의 해법을 내놓았지만, 현 이사진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국민은 박 후보의 소통능력이나 국가경영능력에 대해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다. 어찌 됐든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 문제에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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