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불확실성 커지고 국내 정책 방향마저 묶여 답답하고 불안"

 
"정치가 경제 발목을 잡는 구태가 이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기업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부조직 개편안이 한 발도 진전을 이루지 못하자 엉뚱하게도 기업들이 심한 피로감을 쏟아내고 있다.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해 경제민주화 공약 이행의 후폭풍에 몸을 바짝 움츠렸던 기업들은 이젠 새 정부 조직개편 지연에 따른 정책 공백 때문에 투자 등 핵심 경영 방침을 확정하지 못한채 일명 '식물재계'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새 정부가 출범한지 벌써 보름가량 지났지만 기업들은 향후 정부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재계는 지금 미국의 시퀘스트, 중국의 긴축, 일본의 환율공세, 유로존 침체 지속 등으로 세계 경기가 어디로 움직일지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다"며 "가뜩이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국내 정책 방향마저 정부조직법에 묶여 답답함과 불안함이 중첩돼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정부와 기업은 서로 눈치를 보며 '탐색전'을 벌여왔다. 온갖 경제단체들이 새 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며 정책건의를 쏟아 내놓는 건 흔한 풍경.

하지만 올해만큼은 다르다. 아직 정부조직 개편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보니 향후 정부 정책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감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일제히 관전 모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내정자 사퇴에 따른 통신업계의 혼란. 여야는 아직도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주관하는 부처간 영역구분을 놓고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김종훈 후보자가 사퇴하면서 걱정이 커졌다"며 "주파수 할당 등 통신 관련 정책이 더디게 진행되는 것 같아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가짜석유 근절', '서민물가 안정' 등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진행되는 경제민주화 색채의 행정행위 등도 기업들에겐 헷갈리는 메시지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를 통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천명함에 따라 재계는 기업 활동에 대해 새 정부가 전향적인 시선을 보낼 것으로 기대했다. 새 정부는 하지만 처음부터 시장판단과는 다른 방향의 행정이 펼쳐지기 시작, "일단 엎드리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가장 대표적인 바로미터는 기업들의 '투자결정'.

통상 30대 그룹은 2월말~3월초 신년 투자계획을 밝혀왔지만 올해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마다 내부적으로 투자계획은 있지만 공표를 꺼리고 있는 것 같다"며 "정부정책에 맞춰 투자계획을 짤 수밖에 없는 데 정부조직법 통과가 안 되니까 관망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한상의 역시 "경제에서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것은 치명적"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역점 부처인 미래부가 표류하면서 통신 뿐 아니라 전체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칠것으로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5대 그룹의 한 임원은 "전 세계 시장에서 엔저를 무기로 한 일본 업체들과 치열한 전쟁중인데 우리 정치권은 여전히 정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정부 부처 업무가 공백상태가 되면서 기업들은 우리의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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