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安 단일화 요충지 ‘호남대첩’ 성적표

▲ 지난 5일 안철수 후보는 호남 민심의 마로미터인 광주 전남대학교 강연에서 후보단일화 회동을 제안했다. 사진=뉴시스

권토중래 文 - 집토끼 지키려고 광주에서 선물 보따리 풀어
성동격서 安 - 호남표 다져놓은 뒤 군부·재계·노동계 눈도장

호남은 야권후보 단일화 표심의 풍향계로 불린다. 문재인 후보 쪽 우상호 공보단장조차 “이번 범야권의 단일후보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호남이 키를 쥐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다. 후보단일화 합의 직후인 지난 8~9일 문 후보는 호남을 방문해 ‘집토끼’를 단속하며 ‘대세론’에 불을 지폈다. 반면 안철수 후보는 광주에서 단일화 회동을 전격 제안해 호남 표심을 흔들어놓은 뒤 군부와 재계, 노동계를 찾는 등 ‘산토끼’를 찾는 데 집중했다. 호남지역 권토중래(捲土重來)를 선언한 문 후보와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으로 실속을 챙긴 안 후보, 두 장수의 ‘호남대첩’ 성적은 어떻게 나왔을까.     

호남 표심 “文과 安 중 누가 박근혜 이길 수 있나?”에 달려   
광주 인사, “현재 광주·전남국회의원 중 文지지 6명뿐” 주목

장면 하나.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지난 8일, 광주시청에서 열린 광주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문재인 후보와 부인 김정숙 씨도 동행했고, 안철수 후보의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도 참석했다. 언론에는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부인 김 교수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이희호 여사의 양쪽에 서서 휠체어를 함께 밀고 가는 ‘훈훈한’ 모습이 공개됐다.

문제는 다음 장면에서 터졌다. 이희호 여사가 안 후보의 부인 김 교수를 놔두고 옆에 있던 문 후보에게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길 바랐는데 당선이 됐다. 우리도 미국처럼 민주당 후보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덕담을 한 것. 야권 후보 단일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나온 이 여사의 언급은 무소속 안 후보가 아닌 민주당 문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이희호 “민주당 후보가 됐으면”
덕담에 고무된 문 후보는 자신감이 넘쳤는지 곧바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의 뜻을 표했다. 문 후보는 영화제 축사에서 “김 전 대통령은 사상 최초로 문화예산 1%시대를 열었고 참여정부도 제2의 한국영화 중흥 기반을 닦았다.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뤄 광주 시민들과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며 호남민심에 구애했다. 광주지역 언론에 따르면, 이날 남편인 안 후보를 대신해 광주를 찾은 김 교수도 “광주는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라며 초등학교를 광주에서 다닌 인연을 소개하며 분전했지만 문 후보 쪽의 인해전술과 물량공세에 밀리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문 후보는 이튿날인 9일 5·18기념문화재단에서 열린 영·호남 지식인의 정책간담회에서는 참여정부시절 ‘호남 홀대론’에 대한 반성모드를 선보인 뒤 “(대통령이 되면) 국가사무를 과감히 지방으로 이양하고 지방재정을 대폭 확충해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실현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영·호남 교수 2,007명이 “김대중, 노무현에 이은 제3기 민주정부의 적통은 문재인 후보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는 성명을 내자 이에 고무돼 나온 발언이었다. 조선대학교에서 열린 광주·전남 9개 대학 총학생회 초청 강연에서는 “대통령이 되면 2년에 걸쳐서 전 대학에 반값등록금을 실천하겠다”고 공표했다. 집권 마지막 해에 반값등록금을 모두 실현하겠다는 안철수 후보와 차별성을 시도하는 발언으로 읽혀졌다. 문 후보 주변에서는 “구체적 프로그램 없이 말의 성찬에 그칠 수 있다”라는 우려도 나왔지만 호남민심을 잡으려는 공약발표 행진은 계속됐다.

문재인, 호남에 화력집중

▲ ‘영리한’ 안철수 후보가 타이밍 정치로 호남을
공략하면서 ‘착한’ 문재인 위기론이 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 후보의 광주방문을 전후로 민주당도 호남에 화력을 집중했다. 문재인 후보에 ‘운명’을 맡긴 박지원 원내대표는 ‘오전엔 여의도, 오후엔 호남’의 강행군을 하며 11월 들어 벌써 5차례 호남을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문 후보가 광주를 방문한 8일에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임위원장-간사단 회의에 참석한 뒤 곧장 호남선 열차에 올랐다고 한다. 호남인들에게 친숙한 추미애 국민통합추진위원장도 7일부터 2박3일 동안 광주를 방문해 민주당 바람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민주당 정책위는 ‘광주·전남 발전을 위한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의 약속’이라며 부산의 선물거래소에 비견되는 ‘광주 상품거래소 설치’ 등 큼직한 선물보따리(16개 공약)를 내놓았다. 하지만 의욕이 앞섰는지 헛발질도 했다. 대선 공약으로 “전남 목포~제주 간 해저터널 공사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제주도 쪽의 반발로 한 발 빼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광주 지역에서는 단일화를 앞두고 안철수 후보와 호남 민심 잡기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과욕을 부린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문재인 후보 쪽은 왜 호남 표심에 애가 달아 있는 것일까. 호남에서는 지난 9월 이후 두 후보 간 지지율 차이가 10%p를 넘는 등락이 2~3차례나 벌어졌다.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인 호남 표심이 파도치듯 출렁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호남정서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호남은 그 어떤 지역보다도 정권교체를 원한다고 한다. 박근혜 후보를 반드시 꺾을 후보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가 확실한 ‘보증수표’인지 미심쩍다고 한다. 급할 때만 ‘호남의 아들’이라 자처하면서 실속은 지난 노무현 정부처럼 ‘부산정권’이라고 주장하는 식의 ‘부도수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가 바로 이런 점을 파고들면서 ‘박근혜를 이길 수 있는 확실한 후보’라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각인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안철수 후보의 11월 5일 단일화 회동 제안은 그가 어느 정도로 고단수인지를 보여준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주단위로 조사하는 지지율 추이에 따르면, 10월 넷째 주와 11월 첫 주 호남지역 야권 단일후보 지지도는 ‘문재인 48%, 안철수 42%’였다. 문 후보는 호남지역에서 단일화 회동 전까지는 안철수 무소속 후보를 2주째 추월하며 상승세를 보여왔다. 안 후보는 그 기세를 꺾기 위해 호남민심의 바로미터인 광주에서, 그것도 자신을 가장 지지하는 젊은 층이 모여 있는 전남대 강연장에서 단일화 회동을 제안했다. 단일화를 가장 바라는 호남 지역에서, 문재인 후보의 거센 추격을 받는 시점에 광주에서 단일화 선언을 해 호남인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대선정국의 주도권을 일거에 장악했다.

안철수의 전략적 광주선언
안 후보는 이날 단일화 회동 제안 뒤 광주 지역 언론사 대표들과 비공개로 회동하는 등 현지 언론과 적극적인 스킨십을 시도했다.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도 광주로 급히 내려가 별도로 광주지역 편집·보도국장단과 모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가뜩이나 호남 언론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문 후보 쪽을 바짝 긴장하게 하는 소식이었다. 이런 양동작전 때문인지 단일화 회동 이후인 11월 둘째 주 갤럽 조사에서 호남지역 지지도는 ‘문재인 41%, 안철수 51%’로 다시 역전됐다. 문 후보가 단일화 회동 직후 급하게 호남을 찾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이틀 동안 호남에 묶어놓은 뒤 그동안 소홀했던 군부와 재계, 노동계, 방송계를 찾는 등 광폭행보를 통해 ‘성동격서’ 전략을 폈다. 안 후보는 단일화 회동 직후인 7일 경기도 평택의 공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해 “NLL(북방한계선)을 사수하고 전 방위 안보 태세를 확립하겠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결연히 나라를 지켜 국민의 생명과 영토 주권, 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며 불안해하던 군부를 안심시켰다. 안 후보는 또 “군 인사권을 국방부와 군에 환원하겠다”며 자신을 못미더워하고 있는 군부에 당근책을 내놓았다. 이튿날에는 “(집권하면) 남북정상 간 핫라인을 개설하겠다”는 등 거시적인 외교·통일 정책도 내놓았다.

안철수의 영리한 광폭행보 
문 후보가 광주에 가 있던 8일에는 대선후보 가운데 처음으로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 간부들과 면담을 가지는 성과를 거뒀다. 박근혜 후보캠프가 오후에 부랴부랴 경제단체장 회의를 성사시켜 맞불을 놓았지만 안 후보는 ‘재계와 맞상대한 첫 대선주자’라는 실속을 챙겼다. 특히 안 후보는 “정치권의 개혁안에 반대의사만 표하지 말고 스스로 개혁안을 내놓으라”며 재계에 당당히 요구하는 한편, “급변하는 세계 경제위기에 대처할 위기대응팀을 캠프 내에 꾸려놓았다”고 말해 재계 고위층에게 신뢰감을 주었다는 평가다.
안 후보는 이어 민주당과 가까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찾아 노동계의 현안을 챙기는 한편, MBC 노조의 ‘김재철 해임 촉구를 위한 철야투쟁’ 농성장을 방문해 “김재철 사장은 물러나야 한다”는 강성발언으로 MBC 노조에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MBC 노조는 2008년 촛불정국이후 야권과 시민사회, 재야진영을 결집시킨 화약고로서 민주당이나 진보당과 가까웠다. 그런데 안 후보가 인화성 강한 MBC 문제에 문재인 후보보다 먼저 개입해 진보진영에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호남 땅을 무대로 벌어지는 두 후보의 권토중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모른다. 현재 문재인 후보 쪽으로 조직과 세가 모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광주에 거주하는 40대 후반의 한 인사는 “안철수는 정체성이 모호하고 왠지 불안하다. 단일화는 문재인으로 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의 여론조사 추이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리얼미터의’ 지난 8~9일 야권단일후보 선호도에서 ‘문재인 44.3%, 안철수 37.5%’로 문 후보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민주당 호남의원들, 아직도 관망
그러나 호남의 밑바닥 정서는 좀 다르다. 광주의 재야인사 김 아무개 씨는 “호남 민심을 보려면 수면 위에 드러난 빙산의 일각보다 그 아래에 있는 빙산에 주목하라”고 귀띔했다. 그에 따르면 “광주·전남 민주당 의원 중 광주에서는 K 의원과 L 의원, J 의원, 전남에서는 박지원 원내대표와 L 의원과 O 의원 등 6명만 움직일 뿐 다른 14명의 의원들은 복지부동하고 있다”는 것. 박준영 전남도지사도 민주당 내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중도 탈락한 뒤 민주당에 서운한 감정이 있는 상태이고, 강운태 광주시장도 문 후보에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타고 갈 배를 불살랐다”며 ‘파부침주’(破釜沈舟)를 선언한 안 후보는 후보 단일화 최종 담판을 앞두고 다시 한 번 호남을 찾아 표심을 장악할 카드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국민이 원해 단일화 과정이 생긴다면 거기서도 이겨서 끝까지 갈 것이다”며 완주를 선언한 바 있다. 이순신 장군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호남이 없었으면 국가도 없었다)라고 했지만 올해 대선의 단일화 정국에서는 ‘호남이 없으면 단일화 후보도 없다’는 말이 나돌 지경이다. 그나마 文·安 두 후보의 합의에 따라 앞으로 다가올 정계개편의 태풍을 생각하면 이번 선거가 호남이 누릴 마지막 ‘호사’가 될지도 모른다. 
 

박스기사 / 박근혜의 호남공략, 이번에도…

▲ 호남공략에 나선 박근혜 후보. 사진=뉴시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국민통합’과 ‘동서화합’을 내걸고 호남공략에 갖은 노력을 쏟아왔다. 한광옥 전 김대중대통령 비서실장을 선대위에 영입하고, 김경재·안동선 전 의원 등 구 동교동계 인사들을 받아들인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노력이 김태호 의원(박 후보 중앙선대위 공동의장)의 ‘막말’로 빛을 잃었다.     

김태호 의원은 9일 기자들이 있는 공식 회의자리에서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 협상을 비판하며 “(대선이) 며칠 남지 않는 상황에서 단일화하는 것은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일이다. 이렇게 해도 국민이 속아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국민을 홍어X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부랴부랴 사과했지만 ‘홍어X’ 발언은 실시간 인터넷 검색어 상위에 오르고 트위터 등 SNS에서 비판 여론이 줄을 이었다. 

‘홍어X’은 어수룩하고 덜 떨어져서 이용해 먹기 좋고 깔보고 무시해도 그만인, 만만한 사람을 의미한다. 게다가 여의도 정치판에서 홍어는 호남을 상징하는 음식이다. 2005년 2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한화갑 민주당 대표의 취임 축하 선물로 홍어 2마리를 선물했다. 당시 민주당은 “박 대표의 선물을 지역통합·정치화합·국민통합을 기원하는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화답했다. 이런 역사를 깡그리 무시하고 김태호 의원에 의해 졸지에 ‘홍어X’로 전락한 민주당과 문재인·안철수 지지자, 호남지역민들의 분노가 빗발친 것은 당연했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광주지부의 한 인사는 “애써 모은 박근혜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허탈해했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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