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희, '용공조작 사형수'의 딸로 가시밭길 인생
한홍구, 권재희 부친 억울한 죽음 규명해 무죄 판결

 

▲ 탤런트 권재희(왼쪽)와 역사학자 한홍구 [DJ엔터테인먼트·뉴시스]
▲ 탤런트 권재희(왼쪽)와 역사학자 한홍구 [DJ엔터테인먼트·뉴시스]

[위클리오늘=전재은 기자] 중견 탤런트 권재희(58) 씨와 진보성향의 역사학자 한홍구(61) 성공회대 교수가 부부의 연을 맺는다.

19일 UPI뉴스에 따르면 두 사람은 오는 28일 모처에서 가족들만 참석하는 조촐한 혼례를 준비하고 있다.

많은 사람에게 얼굴이 알려진 두 사람 만혼에 대해 매체는 억울한 '사법 살인'으로 지난 1969년 44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던 권 씨의 부친인 권재혁의 신원(伸寃:원한을 풀어줌)이 계기가 됐다고 보도했다.

권재혁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50년대 말 미국으로 유학가 경제학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하고 돌아온 당시 최고의 엘리트 경제학자였다.

미국의 경제발전을 체험한 그는 후진국 경제모델의 원인을 짚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관한 연구에 앞장선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3선 개헌 후 병영 독재체제를 강화하던 박정희 정권은 60년대 말, 많은 용공 사건을 조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권재혁이 '수괴'였다는 가공의 단체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이다.

권재혁은 68년 다른 진보지식인 13명과 함께 연행돼 모진 고문을 받았고, 다음해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권재혁이 '사법 살인'으로 사라졌을 때 그의 딸 권재희는 겨우 7살. 이후 권재희와 그 가족이 걸어갔을 길은 여느 용공 조작 사건의 피해자 가족이 똑같이 걸어야 했던 가시밭길이었다.

권재혁은 2009년 과거사위원회에서 용공조작 사건의 희생자임이 규명됐고 이어 2014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는 과정에 한홍구 교수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에 몸담았던 한 교수는 박정희 시절에 벌어졌던 각종 용공 조작 사건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화해·치유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권재혁을 용공조작사건의 희생자로 최종 발표한 2009년 한 교수는 한겨레 기고문에 '권재혁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글을 쓰며 이렇게 매듭짓고 있다.

"정보부 지하실에 잡혀 와서야 자신이 '수괴'라는 남조선해방전략당의 이름을 처음 듣고, 죽은 뒤에도 전략당 사건의 권재혁이라 불려야 하는 젊은 경제학자의 40주기에 술 한잔을 올린다. 술 한잔이라도 올려야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정녕 그것뿐일까?"

탤런트 권재희는 지난해 8월 KBS다큐멘터리 '기억, 마주서다'에 '나는 사형수의 딸입니다'의 주인공으로 출연해 처음 공개적으로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같은 해 11월엔 '권재혁 선생 50주기 추도식 및 자료집 발간식'도 열렸다. 한 교수도 그 자리에서 술잔을 올렸다. 아버지와 딸의 '해원'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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