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만에 퇴장…표적수사로 국민불신 자초

▲ 2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10층 중앙수사부 앞에서 박유수 대검 관리과장이 중앙수사부 현판을 철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신상득 사회·문화전문기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23일 간판을 내리고 영욕의 32년 중수부 시대를 마감했다. 대검중수부는 검찰총장이 지명하는 이른바 하명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의 최고 수사팀이었다. 2010년 저축은행 비리사건, 2003년 ‘차떼기’ 불법대선자금 사건, 1995년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비자금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의 대명사로 불렸지만 정치적 중립성과 표적수사, 공정성을 둘러싼 국민의 불신을 이겨내지 못하고 마침내 현판을 내리고 말았다. 현판을 올린 지 32년 만이고, 그 전신인 대검 중앙수사국까지 계산하면 74년 만의 일이다. 현판이 내려지던 날 진보‧시민단체 등은 민주적 검찰개혁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논평을 냈다. 

현판 떼던 날 대검 중수부 표정

지난 23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하 대검중수부)의 현판이 내려지던 날. 채동욱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관계자와 박영수 전 고검장을 위시한 전직 중수부장 등 30여명이 참석해 영욕의 세월을 마감하는 대검 중수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이동렬 서울고검 검사는 ‘중수부 역사에 대한 회고와 검찰의 각오’라는 자료를 배포하고 “부패 척결에 대한 검찰의 자긍심, 그 맞은편에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자라고 있었고 그 불신을 해소하지 못해 중수부 폐지를 맞게 됐다는 뒤늦은 자각이 검찰을 아프게 한다”면서 “앞으로 국민이 원하는 특별수사 체계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 부패 척결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철거된 중수부 현판은 검찰 역사관에 보관된다. 대검 관계자는 검찰 역사관에 별도의 중수부 섹션을 설치해 중수부의 공과(功過)를 교훈으로 삼도록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대검 중수부 약사(略史)

대검 중수부는 1949년 12월 검찰청법에 중앙수사국 설치 규정이 생긴 뒤 1961년 세워진 대검 중앙수사국에서 출발했다. 이어 1981년 5공화국 당시 대검 중수부로 명칭을 바꾸고 현재 모습을 갖췄다.
대검중수부는 특히 검찰총장 하명사건을 주로 담당하면서 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사기 사건, 5공 비리, 율곡 비리,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한보그룹 사건,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김현철 씨 사건, 이용호 게이트,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홍업·홍걸 씨 사건 등 정·재계의 굵직한 사건을 수사하며 ‘검찰의 상징’으로까지 불렸다.
하지만 대통령 등 정권 의중에 따른 표적수사 논란을 일으키며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주역이기도 했다. 2009년에는 중수부 수사 도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정치권이 주장하던 대검 중수부 폐지론이 힘을 받았고, 마침내 지난해 12월 박근혜 후보가 대선 과정에서 대검 중수부 폐지 내용의 검찰 개혁안을 공약한 바 있다. 여기에 국회의 폐지 동의가 나면서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대검 중수부 사라진 뒤에는?

대검중수부의 빈 자리는 향후 새롭게 설치될 ‘상설특검’과 검찰 내부에 새로 설치될 ‘특수수사’ 부서가 맡게 된다. 김준규 전 검찰총장 시절부터 가동됐던 ‘특임검사’도 중수부의 공백을 메울 것으로 보인다. 또 일선 검찰청의 특수수사를 지휘. 지원하는 업무는 새로운 기구가 설치될 때까지 ‘검찰 특별수사체계 개편 추진 태스크포스’가 맡게 된다.
그동안 중수부에 소속됐던 검사와 수사관 등 수사인력은 모두 일선 검찰청에 배치했다. 대검중수부 소속이었던 차장‧부장검사급 15명과 수사관 18명은 일선 검찰청에 배치했으며 마지막까지 중수부에 남아있던 수사인력 10여명은 ‘증권범죄 합동수사단’ 등에 배치했다.

대검중수부 폐지 바라보는 각계 시각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대검중수부 폐지를 반겼다. 그러나 전직 대검중수부장은 대체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대검중수부 폐지는 검찰개혁의 첫 발걸음을 뗀 것”이라고 환영했다. 또 민변 소속의 한 변호사는 “편향된 수사로 악명 높았던 대검중수부 폐지는 검찰 개혁을 위해 한걸음 나간 것”이라며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므로 지속적으로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측 관계자는 “대검중수부 폐지는 예정됐던 일이고 잘된 일”이라며 “검찰 내부에서 특수수사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의 문제와 상설특검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가 남겨진 과제”라고 언급했다.

반면, 199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 씨를 구속한 심재륜(69) 전 중수부장은 “중수부는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거악(巨惡) 척결 기능을 했다”면서 “지금이 현판 강하식을 할 때인가. 중수부 폐지가 검찰 개혁인지 개악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간 정치에 약하다는 이유로 중수부가 비판을 받았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 수사를 질질 끌며 잘못해서 그랬다”며 “또 전 총장이 자기 관리 책임을 제도 문제로 떠넘기면서 중수부를 나락으로 빠뜨렸다”고 말했다.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사건을 지휘하다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하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던 이인규(55) 전 중수부장은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다는 단 한마디밖에 할 게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 중수부장 김경수(53) 대전고검장은 “검찰에서 귀중한 역할을 해 온 기관을 지켜내지 못해 죄인 된 심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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