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작사, 아이돌 가수에 목매는 복잡한 속사정

▲ 일본에서 최고의 한류스타로 부상하고 있는 배우 장근석. [사진=뉴시스]

“드라마 성공하려면 아이돌 가수를 잡아라.”
올 들어 드라마의 아이돌 가수 등장이 대세다. 올해 방송된 드라마에 아이돌 가수가 주연 또는 조연으로 등장한 드라마만 해도 <옥탑방 왕세자>의 박유천(JYJ), <사랑비>의 윤아(소녀시대) 등 10여 편에 이른다.
3, 4년 전까지만 해도 이벤트성이 짙었던 아이돌 가수의 드라마 조·주연 출연이 최근 갑자기 늘어난 까닭은 무엇일까.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홍보 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엔 해외 판권을 둘러싼 보다 복잡한 손익계산서가 숨겨져 있다.

드라마 수익 30~50%가 해외판권
일본서 인지도 높은 한류 가수 찾기

▲ 드라마를 통해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 '미스 에이'의 수지. [사진=뉴시스]

아이돌 스타가 출연한 드라마는 위에 소개한 작품 외에도 수두룩하다. <더 킹>의 이승기, <닥터진>의 김재중(JYJ), <빅>의 수지(미쓰에이), <오작교 형제들>의 유이(에프터 스쿨) <아름다운 그대에게>의 설리(에프엑스) 민호(샤이니) 광희(제국의 아이들), <해운대 연인들>의 남규리 강민경(다비치),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오연서 강민혁(씨엔블루), <응답하라 1997>의 서인국 정은지(에이핑크) 등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드라마 제작사가 아이돌 가수를 캐스팅하는 것은 우선 ‘이름값’을 하기 때문이다. 이미 가수 활동을 통해 인지도가 높은 아이돌 가수가 드라마에 나올 경우 신인 배우를 출연시키는 것보다 더 높은 홍보효과와 ‘흥행’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 더욱이 아이돌 가수는 청소년에게 인기가 높아 10대들의 시청이 가능한 드라마는 아이돌을 캐스팅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다. 신인 배우를 유명 배우로 성장시키는 모험보다, 아이돌 가수의 인기를 활용해 시청률을 확보하는 ‘안전책’을 선호하는 셈이다.


하지만 단순히 아이돌 가수의 국내 인지도가 캐스팅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드라마 제작사가 아이돌 가수를 캐스팅하기 위해 목매는 속사정은 따로 있다. 다름 아닌 해외 판권 수익 때문이다. 

대다수 드라마 외주 제작사는 태생적으로 열악한 수익구조를 안고 있다. ‘갑’의 위치에 있는 공중파 방송사로부터 제작 지원비를 받긴 하지만, 그 액수가 총 제작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머지 손실분은 드라마의 해외 판권을 통해 어떻게든 채워야 하는 입장이다. 말하자면 해외 판권 수입을 늘려야 제작사의 수익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상당수 드라마의 해외 판권 수입은 전체 매출의 30~5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제작되는 드라마 판권은 일본을 중심으로 중국, 대만,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등 대다수 아시아 국가에 수출된다. 이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큰 것은 일본 시장이다. 제작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외 판권 수익의 50~70%를 일본 판권이 차지한다. 제작사들이 드라마의 주연과 조연을 캐스팅하면서 일본 현지의 기류를 먼저 체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에서 비교적 인지도가 높은 아이돌 가수들에게 제작사의 러브콜이 쏠리는 것도 이런 냉정한 시장논리의 탓이다.


대박 드라마 VS 쪽박 드라마

드라마 제작사들 사이에서 소위 대박 났다고 하는 작품들은 결코 시청률만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다.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수익이 동반 상승하지는 않는다. 시청률 20% 이상을 기록해 성공한 드라마인데도 제작사가 태생적 손실을 메우지 못해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안방극장의 히트 드라마가 현실 세계에선 ‘쪽박 드라마’로 전락한 셈이다.
그렇다면 제작사들 사이에서 ‘대박 났다’고 평가하는 드라마는 어떤 것일까. 해외 판권을 통해 제작비를 충당하거나 넘어설 수 있는 드라마다. 국내에서 드라마가 종영되어 대중에게 잊혀져도 나중에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하면 제작사의 수익 구조는 전혀 달라진다. 2010년 5~8월에 SBS에서 방영된 드라마 <나쁜 남자>는 지난 9월 5일부터 일본 NHK에서 정규방송으로 방송되고 있다. <나쁜 남자>에 출연한 김남길, 한가인 등 배우와 제작사, OST 제작사 등이 일본 현지의 기류에 민감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제작사-가수 관계 ‘역전’

3, 4년 전만 하더라도 드라마에서 인기를 끈 신예 가수가 가요계에서도 인기가수로 자리매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 정용화의 ‘씨엔블루’를 들 수 있다. 지금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미남이시네요>에 멤버 중 정용화가 등장해 큰 인기를 누렸고, 그 인기를 바탕으로 그룹 ‘씨엔블루’가 가수로 공식 데뷔했기 때문이다. 씨엔블루는 정용화의 드라마 덕분에 인지도가 상승했고, 데뷔 이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가요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몇 해 전에는 아이돌 가수를 꿈꾸는 신인 그룹이나 가수들이 드라마 캐스팅 오디션에 자원해 참가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멤버 중 한 명만이라도 드라마에 캐스팅되어 대중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용화의 씨엔블루, 유이의 에프터 스쿨 등 아이돌 가수를 만드는 기획사 입장에서는 멤버 중 어느 누구라도 한 명만 유명해지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속한 그룹에도 대중들의 관심이 모아질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류 열풍이 거세게 몰아치는 요즘에는 반대로 수많은 드라마 제작사들이 아이돌 가수들을 캐스팅하기 위해 기획사에 구애작전을 펴고 있다. 기획사나 아이돌 가수들의 입장에서는 음반, 공연 활동과 더불어 드라마 스케줄까지 조정해야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된 셈이다.

▲ SBS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의 구재희 역으로 열연 중인 그룹 'fx'의 설리와 강태준 역을 맡은 '샤이니'의 민호. [사진=뉴시스]

아이돌 캐스팅의 허와 실

일부에서는 아이돌 가수들의 드라마 캐스팅에 대해 많은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부족한 연기력은 줄곧 도마 위에 오르고, 드라마의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비난도 거세다. 특히 작품성이 요구되는 드라마에서 옥의 티로 작용할 우려도 크다.
그러나 인기 있는 가수를 등장시켜 드라마의 시청률을 올리려는 의도, 해외 판권을 통해 수익구조를 개선할 수도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런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아이돌 캐스팅’을 통해 한류 열풍과 더불어 일본을 비롯한 외국의 팬에게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관심을 유발하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연기력? 해외에선 문제 되지 않아

과거 국내 드라마의 주인공 배역은 연기자 출신으로 크게 성공을 이룬 배우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서서히 아이돌 가수가 드라마의 조·주연으로 자리매김을 하는 추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선호하는 배우는 이병헌, 송승헌, 이준기, 원빈, 소지섭 등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한류 배우들이었다. 하지만 요즘 추세는 JYJ, 동방신기 등 아이돌 가수 출신들로 전반적으로 선호도가 바뀌고 있다.
해외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에 아이돌 가수가 출연한 경우 연기력은 거의 문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현지 언어로 더빙되어 방영되기 때문이다. 목소리 연기도 연기력에서 중요한 요소인데 전문 성우나 현지 배우가 대신하니 연기력 논란이 일 소지가 없는 셈이다. 제작사들이 해외 판권을 염두에 두고 드라마를 만들 경우 굳이 베테랑 연기자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려 애쓰지 않는 배경이기도 하다. 국내 드라마 팬들에게 아이돌들의 연기력이 주요 관심사라면, 해외 팬들에겐 이들의 외모, 드라마 스토리 등이 주된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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