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트렌드 이끄는 9000세대 뜯어보기

1998년도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1997년 11월 어느 날. 이날 오후 생방송된 KBS 2TV <가요톱10>에서 MC 손범수는 “지금 방금 수능을 마치고 돌아온 이지훈 씨입니다”라고 외쳤다. 홀가분한 표정의 이지훈이 <왜 하늘을>을 부른 직후 손범수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파 씨는 1교시 언어영역을 보던 도중 복통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당시 ‘모범생 가수’로 알려졌던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꽤 안타까운 일이었다. 대중 연예인들의 입시 소식까지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아이돌의 원년이라 일컬어지던 1997년이었다.

▲ 9000세대의 향수를 자극한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한 장면.

1997년. 그 해는 대중문화계를 넘어 전 사회적으로 참 뜨거웠다. 이제 갓 신인을 벗어난 HOT와 젝스키스가 가요계 정상의 자리를 놓고 다퉜고, 인동초로 불렸던 김대중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으며, 인고의 IMF시대가 열렸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대 중반 사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며 IMF로 인해 상처 받고 ‘오빠’에 울고 웃던 이들. 요즘 동시대를 살았던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독 반가운 그들은 바로 ‘9000세대’다.


9000세대는 ‘7080’세대, ‘8090’세대에 이어 대중문화의 주류로 떠오른 90년대~2000년대 학번 세대를 일컫는 조어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이들의 정서와 코드가 ‘뉴 트렌드’로 등장하는 일이 빈번하다. 올해 초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귓전을 울리는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며 추억에 잠겼던 9000세대들은 요즘 케이블 채널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열광하고 있다. 그 안에는 단순히 HOT와 젝스키스로 대변되던 초창기 아이돌 문화를 넘어 삐삐와 PCS의 공존, 콤비 콜라와 축배 사이다, 주옥같은 라디오 사연과 게스 청바지 상품권이라는 당대의 아이콘이 담겨 있다.

시대가 만든 문화소비자

<응답하라 1997>의 제목처럼 1997년은 이 시기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IMF로 상징되는 외환위기 시대가 열리면서 낭만과 풍류를 이야기하던 이전 대학생들과 달리 90년대 중반 학번들은 갑자기 좁아진 취업문을 뚫기 위해 도서관으로 몰려들었다. 더불어 경제상황 악화라는 직격탄을 맞은 후 자녀들의 등록금을 구하기 위해 고심하는 부모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릴 거라 생각했던 9000세대들은 바짝 졸아든 마음과 궁핍해진 주머니 사정, 그리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취업전선에 뛰어들 준비를 하며 잔뜩 웅크렸다. 경제력이 떨어지고 소심해진 9000세대가 가장 쉽게 소비할 수 있는 것은 대중문화였다. 별다른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TV와 라디오만 켜면 불특정 다수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문화야 말로 이들의 탈출구였다.


9000세대가 다양한 대중문화에 관심을 기울인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구심점을 잃었기 때문이다. ‘문화 대통령’이라 불리던 전무후무한 가수인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한 기간은 고작 3년. 1992년 등장한 그들은 1996년 1월 공식 은퇴를 선언하고 사라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빈자리는 컸고 그 공백을 다수의 가수들이 메워가기 시작했다. HOT와 젝스키스를 비롯해 기획사가 탄생시킨 맞춤형 아이돌이 등장하면서 팬 문화 역시 덩달아 조직화 ·전문화됐고 단순한 ‘팬질’을 넘어 공식을 갖춘 ‘팬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막연하게 스타를 좋아하고 좇던 시기를 넘어 팬들이 스타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보호하는 시대를 연 것도 9000세대다.
치열한 학창시절을 보낸 9000세대는 어느덧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이 사회의 허리가 됐다. 직장을 구하고 물질적으로 여유가 생긴 그들은 본격적으로 문화를 향유하기 시작했다. 아이돌 가수가 대세가 된 요즘 가요계에 염증을 느낀 9000세대는 그들이 즐기던 문화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전자음 없는 클럽에 열광

홍대를 시작으로 강남 등지에 문을 연 클럽 ‘밤과 음악 사이’. 이 곳에는 ‘클럽’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전자음은 들리지 않는다. 자라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익숙하고 대중적인 멜로디가 흐르는 ‘밤과 음악 사이’는 1990년대부터 2000년 초반을 풍미한 노래들이 흘러 정겨운 곳이다. 최근 <강남 스타일>로 ‘대박’을 터트린 싸이. 그는 최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밤과 음악 사이’에 갔더니 그 곳에서는 내가 아이돌이더라. 엄청난 열광을 받으며 좋은 기운을 받고 왔다”고 말했다.


어느덧 30대에 접어든 9000세대는 강남 일대에서 성행하는 클럽은 졸업했을 나이거나, 출입할 수조차 없는 나이가 됐다. 이를 역으로 이용한 ‘밤과 음악 사이’의 성공은 9000세대들이 얼마나 뜨거운 문화를 가졌었는지를 일깨우며 잠자고 있던 그들의 세포를 자극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여름 동안 대성황을 이룬 ‘청춘 나이트’ 콘서트 역시 이런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청춘 나이트’ 콘서트에 가서 만날 수 있는 가수들은 ‘반쪽 그룹’이 많다. 신정환 없는 컨츄리꼬꼬, 박철우 없는 R.ef, 이하늘 없는 DJ DOC 등이 무대에 오른다. 하지만 객석의 대부분을 차지한 9000세대에게 이가 하나 빠진 그룹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대에 오른 추억(?)의 가수들의 노래를 모두 섭렵하고 있는 9000세대들은 스스로 신정환 박철우 이하늘이 돼서 뛰고 즐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예전 가요계는 참 체계가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 가요계는 정말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재미와 정은 줄어든 것 같다. 지나친 경쟁과 1시간짜리 ‘음원 1등’이 난무할 뿐이다. 이런 상황 속에 1990년대와 2000년 초반을 풍미한 가수들이 다시 각광을 받고 그들에 열광하던 팬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사실이 정말 반갑다”고 말했다.


9000세대는 쎄시봉과 함께 각광받던 7080세대와는 다르다. 7080세대가 시대 의식을 중시하고 대중문화와 사회문제를 연결시켰던 반면 9000세대는 대중문화와 사회문제를 분리시킬 줄 알았다. 놀이를 유희의 수단 자체로 만끽할 줄 알았다는 의미다. <건축학개론>과 <응답하라 1997> 등을 통해 뜨거웠던 과거와 다시 만난 9000세대는 이제 경제력까지 갖춘 문화 주체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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