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상임위 배정거부 등 자기 목소리

▲ 존재감을 높이고 있는 강창희 국회의장. <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한기주 기자] 강창희 국회의장이 요즘 여의도 정치권에서 부쩍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자문그룹인 ‘7인회’의 일원이기도 한 강 의장은 충청도 출신으로 원만하고 합리적인 성향의 원로 정치인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육사 교수 시절로 돌아간 듯 깐깐하게 원칙과 법을 내세우는 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강 의장은 최근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보건복지위원회 배정을 단호하게 거부해 파란을 일으켰다. 당선된 지 한 달 가까이 상임위를 배정받지 못한 안 의원은 결국 강 의장을 찾아 처분에 따르겠다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역대 국회의장 중 가장 활력있는 행보
지난 15일 강창희(68) 국회의장은 바쁜 일정을 보냈다. 오전에는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9차 아태 여성의원 장관회의’에 참석, 기조연설을 통해 “앞으로 대한민국 국회도 국제사회에서 성평등이 구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의도 국회로 돌아온 강 의장은 오찬을 위해 다시 서울 시내 한 호텔로 이동해 한사모(한국어를 사용하는 외국대사모임) 회원들을 만났다. 한사모의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강 의장을 초청해 마련된 이 자리에는 성 김 주한 미국대사, 비탈리 편 우즈베키스탄 대사, 미클로쉬 렌젤 헝가리 대사, 둘란 바키셰프 카자흐스탄 대사, 강볼드 바산자브 몽골대사 등이 참석해 강 의장과 환담했다.
 
강 의장은 앞서 8일에는 방한 중인 롱위샹 중국국제문화전파중심 집행주석 일행을 접견하고, 오후에는 쏨삭 끼얏쑤라논 태국 하원의장 일행을 접견, 양국간 교류협력 강화 방안 등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하루 전인 7일에는 국회 내 직원식당에서 국회 조경‧원예 업무 종사자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노고를 치하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하기도 했다. 이처럼 강 의장은 19대 국회 전반기 의장으로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3부 요인으로서 원로 대접만 받으려 하지 않고 역대 어느 국회의장보다 활력 있게 움직이는 국회 수장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안철수 상임위 문제에 ‘법대로’ 원칙 천명
최근 강 의장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상임위 배치 문제와 관련해 ‘법대로’를 강조해 단박에 정치권의 이슈메이커가 됐다. 강 의장은 지난 9일 상임위 문제로 자신을 찾아온 안철수 의원에게 “국회법에는 의장이 어느 교섭단체도 속하지 않은 의원들의 상임위원회를 배정하게 돼 있다. 그런데 나는 언론을 보고 (안철수 의원의 보건복지위 배정 논의를) 알게 됐다”며 기자들이 보는 가운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나타냈다. 안 의원은 애초 국회 관례에 따라 서울 노원병 지역구 전임 의원이었던 노회찬 전 의원의 상임위였던 정무위를 배정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럴 경우 공직자윤리법 규정에 의해 안 의원과 직무 관련성이 있는 안랩 주식 186만주(약1100억원)를 모두 백지신탁하거나 매도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게 돼 이래저래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학영 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상임위인 복지위를 양보할 뜻을 밝히면서 안 의원의 복지위 배정이 여야간에 합의돼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지만 돌연 강 의장이 제동을 걸고 나오면서 상임위 배정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결국 안 의원은 절차상 잘못에 대해 강 의장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답변했고 “앞으로 상임위 배정 문제에 관해 의장님과 계속 상의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여야 원내대표에 따끔한 일침
강 의장은 안 의원의 사과를 받아낸 뒤 9일 오후에는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 안 의원 상임위 문제를 다시 거론했다. 강 의장은 두 사람에게 “안 의원의 상임위 배정 권한은 국회법 상 국회의장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과 협의도 하지 않은 채 언론을 통해 안 의원의 상임위가 보건복지위원회로 결정된 것처럼 알려진 것은 잘못”이라고 매섭게 지적했다. 평소 점잖은 데다 말을 아끼는 성향인 강 의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목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여야 원내대표들도 강 의장의 갑작스런 브레이크에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강 의장은 이날 또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추가경정예산안 통과에 앞서 의장 직속으로 개헌문제를 논의할 ‘헌법개정연구회’를 두기로 합의한 데 대해서도 ‘거부’ 의사를 밝혔다. 개헌은 엄연히 국회의장과 함께 추진해야 하는 게 맞는 일인데 여야 원내대표들끼리 알아서 하고 나한테는 확실하게 설명도 없이 통보만 하는 것은 큰 문제라는 게 당시 강 의장이 화를 낸 이유였다고 한다.
 
정치권은 강 의장의 이레적인 강경조치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강 의장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기류도 있었고,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적법한 행동이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대선후보를 지낸 유력의원이라는 이유로 국회에서 기자들을 몰고다니는 ‘초짜’ 안철수 의원에게 국회의 수장이자 6선 의원인 강 의장이 매서운 신고식을 치르게 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다. 헌법개정연구회 설치를 유보한 것을 두고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흔들 수 있는 개헌 논의를 ‘친박계 핵심’인 강 의장이 앞장서서 가로막은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강 의장이나 국회 사무처는 여야 원내대표에게 ‘법대로’를 말하며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양당의 원내대표가 국회의장과 상의하지 않고 결정한 ‘절차적인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강 의장은 국회법 준수를 환기시킨 것이다. 강 의장은 개인적으로 개헌 논의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 걸로 안다. 헌법개정연구회도 여야가 절차를 밟아 수정해 다시 진행하면 된다”며 개헌 기구 설치도 재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강 의장의 원칙과 소신행보 주목
현재 강 의장의 갑작스런 강경조치에 무엇보다 다급해진 쪽은 안철수 의원이다.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강창희 의장을 설득해내야 될 옹색한 처지가 된 안철수 의원은 13일, 결국 강 의장을 다시 찾았다. 안 의원이 다시 기자들을 구름처럼 몰고오자 강 의장은 국회의장의 승인을 받지 않은 안 의원의 ‘맘대로 복지위행(行)’을 재차 따끔하게 힐난했다. 안 의원은 “국회 규정에 따라서 처음부터 절차를 다시 밟고 (의장에게 상임위 배정을) 부탁드리겠다”며 한껏 자세를 낮추었다. 안 의원은 강 의장에게 “교육, 보건복지, 환경노동 세 가지 상임위 중 한 곳에 배정되길 희망한다”고 정중히 부탁했다.
 
19대 국회 전반기 의장으로서 임기 1년을 남겨두고 부쩍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강 의장의 소신 행보가 또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다. 안 의원처럼 강 의장의 행보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정당이나 의원들이 속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야 모두 요즘들어 국회의장이라는 자리의 무게를 새삼 느낀다는 목소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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