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난이 가득 놓인 '좋은이웃 법률사무소' 복도에서 배재철 변호사가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각종 '난'이 가득 놓인 '좋은이웃 법률사무소' 복도에서 배재철 변호사가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위클리오늘=감미사 기자] 섬진강 詩人 김용택 님의 ‘가을밤’을 특히 좋아한다며 자신은 그저 ‘좋은 이웃’이자 ‘이름 없는 변호사’라며 몸을 낮추는 이가 있다. 주인공은 22년째 법조인으로 외길을 걷고 있는 배재철 변호사다.

배 변호사는 법대를 졸업하고 군법무관으로 국방부 법무관리관실, 고등군사법원 등 주요 군관련 기관에서 10년여를 보냈다. 1999년 6월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수석군판사를 끝으로 화려했던 군법무관의 길을 마쳤다.

현재 배 변호사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똬리를 틀고 법조 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을 소개하던 말처럼 법률사무소 명패도 ‘좋은 이웃’이다.

배 변호사는 경상북도 고령에서 태어났다. 고령은 거슬러 올라가면 ‘가야금’으로 유명한 우륵 선생의 고향이자, 대가야의 수도였다. 고령의 유유한 정기를 받아서인지 배 변호사는 인터뷰 내내 여유롭고 정겨웠다.

그는 “보수적 성향의 경북 산골에서 태어나서인지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공무원 같은 관료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한다.

배 변호사는 매주 일요일 휴일 오후에도 사무실을 가득 메운 난을 가꾸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낸다.
배 변호사는 매주 일요일 휴일 오후에도 사무실을 가득 메운 난을 가꾸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낸다.

수십 년 법조 인생. 으레 딱딱할 것이라 예상한 그에겐 무언가 다른 부드러움과 향기가 있었다. 사무실 안팎 가득 둘러싼 사군자 가운데 하나인 ‘난(蘭’)이 기자의 눈을 유혹한다.

배 변호사는 “난(蘭)을 가꾸는 것은 일상의 행복”이라며 은근슬쩍 난 이야기로 빠져든다. 고시 준비할 때부터 난을 좋아해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 ‘마사토’에 뿌리를 내린 난은 물만 먹고 자라 가장 깨끗한 실내 식물이라는 이야기. 일 년에 2주 정도만 인고(忍苦)의 꽃을 피운다는 이야기며 기자가 말리지 않으면 인터뷰 주제 자체가 ‘난’으로 바뀔 듯했다. 그런데도 배 변호사는 “저 난(蘭)은 올해만 두 번째로 꽃을 피웠어요”라며 ‘난 삼매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느냐는 질문에 “일 년에 한두 건은 꽤 오래 기억에 남아요”라며 회상에 잠긴다. 한참 후 배 변호사는 ‘현주건조물방화치사’ 사건으로 재판에 회부 된 피고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흥업소 직원 2명이 사건에 계류됐는데 1명은 사망, 나머지 1명은 피고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당시 20대의 꽃다운 청춘이었던 피고인은 시종일관 재판부에 억울함을 주장했지만, 1심에서 18년형을 선고받았다. 만약 이 판결이 최종심까지 유지되면 젊은 시절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무죄를 확신한 배 변호사는 서울고등법원에서 사건을 수임받아서, 피고인 구제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특히 배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법의학자·의사의 의학적 의견뿐만 아니라 휴대폰 위치가 담긴 기지국 현황 등 다양한 실증적 현황을 재판부에 제출하는 등 헌신적인 변론을 이어갔다.

이에고등법원에서도 현장 검증에 나서는 등 성의를 보였고 결국 피고인은 항소심에서 무죄, 대법원에서도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지금도 생각하면 뭉클해요. 최초 1심판결이 대법원까지 이어졌더라면 억울한 젊은이의 삶이 순식간에 망가질 수 있었어요”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 외에도 배 변호사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여러 사건을 수임해 성실한 변론으로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다. 법률사무소의 명패와 같은 ‘좋은 이웃’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배 변호사는 삶의 최고 덕목을 ‘성실’이라고 단언한다. 아무리 큰 재능도 성실함을 능가할 수 없다는 그만의 지론이다. 어쩌면 매일 자정이 넘도록 그의 사무실 등이 꺼지지 않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는 수임한 사건 기록을 꼼꼼히 챙기고 훑어보는 꾸준한 성실함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고도 말한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기본적으로 봉사 정신이 밑바탕 되어야 해요”, “의뢰인하고 같은 맘을 가져야 해요”, “당장 득이 없어도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복으로 돌아와요”라는 말로 자신의 신념을 설파한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배 변호사는 대전교도소에 수감 된 70대 노인이 보낸 편지를 기자에게 건넨다. 편지는 배 변호사의 성실함을 교도소 내의 동료 수감자로부터 건네 들은 수감자가 자신의 변론을 맡아달라며 보내온 편지다.

“대형로펌이 즐비한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개인 변호사 사무실로 산다는 건 어쩌면 도전에 가까운 일이예요”라며 “하지만 봉사한다는 맘으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이렇게 소개 소개로 사건을 수임하는 때도 있어요”라며 웃는다.

경북고등학교 동문이 함께 하는 '57북한산회'
경북고등학교 동문이 함께 하는 '57북한산회'

베이비붐 세대인 배 변호사는 76학번이다. 60대 중반의 나이지만 겉모습은 아직도 환갑은 멀어 보인다. 이런 자신을 “스트레스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봉사하는 맘으로 사니 일 자체가 힘들 수 없고 애초 낙천적인 성격이니 매사 긍정적이라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도 현대사회에 살면서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질문엔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지요. 가끔 생기는 스트레스나 짜증은 매주 오르는 북한산에서 친구들과 함께 모두 털고 와요”라고 답한다.

배 변호사는 30여 년간 경북고등학교 57회 동창들과 함께하는 ‘57북한산회’ 모임에 매주 참석하고 있다. 하산 후 자주 가는 구기계곡 입구에 있는 '능금산장'에서 친구들과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힐링’이란다. 술·담배도 멀리하고 매주 즐거운 동행과 산을 오르고 내리니 어쩌면 배 변호사가 나이보다 10년쯤 젊게 보이는 건 당연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배 변호사가 한예종을 졸업하고 작가로 활동하는 작은딸의 전시회에서 작은딸과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배 변호사가 한예종을 졸업하고 작가로 활동하는 작은딸의 전시회에서 작은딸과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배 변호사는 딸 바보인 듯하다.
영국에서 공부한 큰딸은 미디어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한예종을 졸업한 작은딸도 미술작가로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 딸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가엔 뭔지 모를 행복감이 가득 차 있다.

늦은 시간까지 용산구 작업실에 작품에 몰두하는 작은딸을 픽업하기 위해 매일 하는 운전도 그에겐 즐거운 일상이자 휴식이다. 두 딸의 재능 원천을 묻자 “내게도 예술적 소양이 있겠지만, 사실은 음악 선생님이었던 아내의 DNA를 물려받은 듯해요”라며 귀띔한다.

“예전엔 변호사 사무실만 열어놓으면 사건이 알아서 굴러들어 왔지만, 지금은 무한경쟁 시대예요. 법정도 칼만 안 들었지 전쟁터와 흡사하죠. 한 사람의 인생이 좌지우지하는 곳이니 말이죠. 법조인은 어차피 봉사를 천명으로 여기고 살아야 해요. 경쟁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좋은 이웃 변호사’로 남았으면 좋겠어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다양한 사회참여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색의향기 문화원 감사, 국가안보포럼 감사, 성동경찰서 경찰발전위원회 부위원장, 서초경찰서 발전위원회 청문분과위원장, 서초 경제인협의회 부회장 겸 사무총장 등 대부분 10년 넘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그는 언젠가 ‘한식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정갈한 옷과 쉐프 모자를 쓴 배 변호사를 떠올린다. 그가 걸어온 길이나 한식 요리사 모두는 한 곳을 향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본질적 궤는 같다.

미래의 가을밤, 배재철 쉐프가 정갈하게 내놓은 한식을 음미하며 김용택 시인의 ‘가을밤’을 함께 낭송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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