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알고 싶다-사모님의 이상한 외출’ 후유증 일파만파

 

[위클리오늘=신상득 전문기자] 지난달 25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사모님의 이상한 외출’이 방송됐다. 사모님(?)은 청부살인으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윤길자(68) 씨. 윤 씨의 청부살인은 2002년 전국을 깜짝 놀라게 한 여대생 공기총 살인사건이었다. 윤 씨는 당시 조카 등을 시켜 이화여대 법대생 하모(당시 22세) 씨를 공기총으로 살해했다. 살해 이유는 자신의 사위인 판사가 하 씨와 불륜이라고 의심한 데 따른 것이었다. 윤 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그런 그가 웬 일인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유방암과 파킨슨씨병을 이유로 수감생활을 할 수 없다는 세브란스병원의 진단서를 검찰이 받아들여 ‘형 집행정지 처분’을 내린 데 따른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10년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무려 10여차례나 ‘형 집행정지 처분’이 내려졌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병원에서 외출까지 서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청부살인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죄인이 어떻게 10여차례나 형 집행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세브란스병원 의사는 어떤 진단을 내렸던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해 이는 검사와 의사의 ‘봐주기’에서 비롯된 악행이었다. 방송이 나가자 검찰은 재빨리 형집행 정지 처분을 중지하고 윤 씨를 교도소에 수감했다. 하지만 돈이라면 살인자까지도 뒤를 봐주는 검찰과 병원의 기가 막힌 결탁을 바라보는 국민 가슴은 피멍이 들어가고 있다.

세브란스 병원의 과잉처방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윤 씨가 그동안 12차례나 형 집행정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의사의 과잉처방이었음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윤 씨가 형 집행정지를 받으려면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했다. 세브란스병원의 의사는 진단서에 유방암, 파킨슨증후군, 우울증 등 무려 12개 질병을 기재하고는 이로 인해 수감생활이 어렵다는 소견을 냈다.

하지만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취재한 내용을 보면 수감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윤 씨는 병실에서 자연스럽게 걸어다니고 혼자 화장실도 무리 없이 오갔다. 그러다가 취재진이 들이닥치자 간병인의 부축을 받는 척했고, 침대에 앉아서는 팔을 벌벌 떨며 파킨슨씨병 환자처럼 행세했다.

제작진이 대한의사협회의 협조 아래 과별로 전문의들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이들의 답변은 하나같이 “말이 안된다”였다. 어떤 의사는 “이건 말이 안 되는데요. 진단서 써 준 의사가 환자하고 잘 아시는 분인가요?”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유방암도 1년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소견을 냈다. 나머지 질병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넷에는 윤 씨의 편의를 봐 준 세브란스병원에 대한 비난이 고조됐다. 담당 주치의 신상까지 떠돌았다. 이에 대해 세브란스병원의 한 관계자는 “허위진단서는 아니다”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는 “해당 환자는 실제로 파킨슨씨병과 유방암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진단서 처방은 의사 고유의 권한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뭐라 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병원 차원에서 내부적으로 과잉처방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둘러댔다.

이 관계자는 또 “형집행정지는 검찰의 권한”이라며 “진단서를 첨부해도 형집행정지를 허락 안 해준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의사의 과잉처방임이 밝혀지면 어떤 징계를 받느냐는 질문에 “지금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만약’이란 말을 쓰고 싶지 않다”며 “지금까지 비슷한 사례로 병원 차원에서 징계를 받은 의사는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실제로 형집행정지는 일반 재소자에게는 꿈같은 일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한 사례자는 “암 치료의 휴유증으로 형집행정지를 받는 데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고 진술했다. 이렇게 힘든 형집행정지가 살인청부죄를 지은 무기수에게는 어찌 이리도 쉬웠던 것일까. 윤 씨가 부산의 중견기업인 영남제분의 사모님(물론 이 사건 이후 이혼했다)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검찰도 윤 씨의 형 집행정지 처분에 일조

검찰은 왜 ‘하늘의 별따기’라는 형집행정지를 윤 씨에게는 계속 허가해 준 것일까? 검찰은 방송을 나흘 앞둔 지난 5월21일 윤 씨의 형집행정지를 전격 취소하고 그녀를 재수감했다. 보도자료까지 뿌렸다. 방송의 뭇매를 피해보고자 하는 꼼수였다. 형집행정지 허가 기간이 6월17일까지인 걸 감안하면 형 집행정지 전격 취소는 이례적이었다. 피해자 하 씨의 아버지는 “기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며 “앞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일이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며 애절함을 드러냈다.

새정부 들어 검찰개혁이란 구호가 요란했다. 하지만 제 식구 감싸기에 익숙한 검찰을 향한 개혁 구호는 공중에 흩어지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주지하다시피 검찰에는 여전히 전관예우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고위직을 지낸 검사는 연봉 수억원, 수십억원에 유명 로펌에 스카우트된다. 효과 없는 곳에 투자할 바보는 어디에도 없다.

무기수이지만 ‘사모님’은 여전히 돈의 힘을 갖고 있다. 그 돈은 어떤 방식이든 자신을 비호하는 데 쓰이게 된다. 무기수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질병을 이유로 형 집행정지를 받고 병원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윤 씨가 누구와 어떤 뒷거래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10여차례나 형 집행정지를 받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사생활을 이유로 잦은 외출도 허락됐다.

이해할 수 없는 형 집행정지와 잦은 외출을 보는 국민의 가슴은 피멍이 들어간다. 네티즌들은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 돈 없는 서민들은 서럽네요” “저 사모님 법의 심판을 제대로 받으셔야 할 것이다.” “저런 흉악범도 돈이 있으니 자유롭네요” “21세기에도 유전무죄는 여전하네요”라고 입을 모았다. 네티즌은 심지어 검찰과 국회를 싸잡아 비난하고, 윤 씨의 전 남편 회사인 영남제분 불매운동까지 앞장서며 맹비난했다.

검찰의 형집행정지 남용 막는 법안 국회 발의

검찰이 행사하는 형집행정지 권한 남용을 막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령 개정안이 조만간 발의될 전망이다.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이 알려지면서 국회도 발빠르게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이목희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여대생을 청부살인하고도 병원에서 호화생활을 누려 사회적 논란이 된 일명 ‘사모님 사태’의 재발방지를 위해 형집행정지 절차를 강화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조만간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개정안은 현재 각 지방검찰청에 설치돼 있는 ‘형집행정지 심사위원회’를 법무부 소속 정부위원회로 확대해 형집행정지 심사의 객관성과 투명성, 전문성을 높이자는 내용이 핵심이다. 또 ‘허위진단서’ 발급 가능성을 막기 위해 형집행정지 소명용 진단서의 경우 종합병원급 의사 2명이 일치된 소견을 보인 경우에만 인정토록 요건을 까다롭게 했다.

이 의원은 “현행법에는 형집행정지에 관한 허가를 검사장에게만 부여하고 있어 검사장의 자의적 판단과 권한남용 소지가 있다”며 “형집행정지의 근본취지를 살리고 형집행정지 적용에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키 위해 ‘형집행정지심사위원회’를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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