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 옛지명 '가마골', 인근 1km 이 내 또 다른 가마 터 두 곳 더
분청·백자 파편 대량 발견...고려말, 조선 초 중요 도예 학술 자료
첫 발견 이상봉 3사관학교 우체국장...도예 문화 지역 자원화 기대
안진석 교수, 부리=태토·땔감·산 경사·수질·바람 등 천애 가마 터
市, 국립박물관 매장문화재 신고...공납 도자기 학술 사료 가치 높아

▲ (왼쪽) 영천시 고경면 부리에서 발견된 '영천장흥고' 파편...(오른쪽)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실제 '영천장흥고' 접시 (사진 편집=장지수 기자)
▲ (왼쪽) 영천시 고경면 부리에서 발견된 '영천장흥고' 파편...(오른쪽)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실제 '영천장흥고' 접시 (사진 편집=장지수 기자)

[경북 위클리오늘=장지수 기자] 경북 영천시 고경면 부리에서 15세기 조선초(1420~1470)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영천장흥고'가 새겨진 도자기 파편이 발견돼 학계와 지역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영천장흥고'가 발견된 부리 138번지 일대의 지명은 옛부터 가마 부(釜)자가 붙은 '가마골'로 불려지는 곳이다. 

▲ 부리 '영천장흥고' 도자기 파편을 최초 발견한 이상봉 3사관학교 우체국장이 '장흥고' 발견 장소인 가마터 부리 138번지에서 또 다른 가마터(원 내)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 장지수 기자)
▲ 부리 '영천장흥고' 도자기 파편을 최초 발견한 이상봉 3사관학교 우체국장이 '장흥고' 발견 장소인 가마터 부리 138번지에서 또 다른 가마터(원 내)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 장지수 기자)

최초로 가마터를 발견한 이상봉(57) 3사관학교 우체국장을 가마터가 발견된 현장에서 15일 만났다. 그는 이곳 부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거주하고 있다.

평소 도자기 수집을 취미로 300여 점의 옛 도자기를 소장하고있는 이 씨는 문득 어린 시절 뛰놀던 뒷산에 사금파리(도자기파편)가 많았던 기억을 더듬어 2년 전 우연히 이곳에 들렀다가 대량의 백자와 분청사기 파편을 확인하고 영천시와 경주국립박물관에 신고했다.

경주박물관은 '영천장흥고'가 새겨진 파편을 분석한 결과 이 씨는 "600년 전 고려말에서 조선초기 제작된 '장흥고' 도자기가 확실하다"는 답변을 듣고 도예가와 학계로 발품을 팔며 연구와 공부로 '장흥고'에 대한 지식을 넓혀 왔다.   

장흥고는 옷감과 종이 등을 관리하는 관청이다. 소멸된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립박물관은 "1308년(고려 충열왕 34)에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존속해왔다"고 기록돼 있다. 

안진석 교수에 따르면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영천 동쪽 원산 곡리(原山谷里)에 가마터가 있다"는 짤막한 한 줄의 기록이 있다.

분명한 것은 현재 중앙박물관에는 ‘영천장흥고’ 가 새겨진 대접(조선 16세기) 2점이 전시돼 있어 이곳 고경면 부리가 옛 가마터임을 짐작케 한다.

▲ 현재 국립박물관에 보관된 '영천장흥고' 가 새겨진 분청사기 인화문 대접
▲ 현재 국립박물관에 보관된 '영천장흥고' 가 새겨진 분청사기 인화문 대접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고을별로 지방관의 등급과 인원, 연혁, 고을 경계까지의 거리, 호구, 군정의 수, 성씨, 토질과 전결(田結), 토공(土貢), 약재, 토산 등의 일정한 항목에 따라 자세히 기록했다.

세종실록 지리지는 1424~1432년 세종의 명에 따라 편찬을 위한 자료 수집이 전국적으로 실시됐고, 1454년에 이르러 『세종실록』이 편찬될 때 간행된 부록이다.

지리지에는 각 지방 토산 혹은 토공 조에는 당시 자기와 도기를 생산하던 곳을 반드시 자기소나 도기소로 구분해 기재돼 있다. 이들 자기소와 도기소는 팔도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의 군청을 중심으로 동, 서, 남, 북으로 그 위치가 표시되고 또 상, 중, 하품으로 구분하여 기록했다. 

지리지에 의하면 전국의 자기소가 139개, 도기소가 185개로 모두 324개소의 자기와 도기 생산지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안 교수는 "영천장흥고는 1390년부터 가마터가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장흥고와 인수부에 납품됐다는 고증이 확실해 이곳 분청사기의 품질이 매우 띄어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천장흥고'는 파편의 경도가 매우 강해 맑은 소리가 나고, 1420~1470년까지 60여 년간 최고 전성기로 추정되는 한편, 장흥고에 공납된 사실로 보아 영천지역 도자기 공납 제품의 완성도가 최상질의 그릇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발견으로 오는 23일 영천창작스튜디오에서 '영천장흥고'  재현 전시회를 갖기로 했다.

이어 "발견자 이상봉씨가 수집한 도자기 파편을 연구해 당시 기법을 추정해 만든 300여 점과 가마터에서 수집한 파편,  '영천장흥고'가 새겨진 실제 수집품 등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전시회에 각 기관장과 예술단체장 등을 초청해 실제 '영천장흥고'의 존재와 영천의 도예 문화 유산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일조를 하겠다" 며 '영천장흥고' 재현 전시 계획을 설명했다. 

▲ '영천장흥고' 첫 발견자 이상봉씨가 자택에 보관하고 있는 분청사기 수집 파편. (사진=이상봉씨 제공)
▲ '영천장흥고' 첫 발견자 이상봉씨가 자택에 보관하고 있는 분청사기 수집 파편. (사진=이상봉씨 제공)

첫 발견자 이상봉 국장은 "'영천장흥고'로 우리지역 도예문화의 우수성을 확인한 만큼  영천의 미래 관광 먹거리가 될 수 있도록 부리 마을을 도자기 마을로 스토리텔링화 하는 한편, 도자기 체험장 등으로 영천 브랜드화 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적극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이 국장은 또 "가마터는 이미 사라지고 겨우 파편만 남아있는 것을 더이상 가마터가 훼손되지 않도록 지자체가 서둘러 부리 마을의 사적지 지정 이나 보호조치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영천시는 이번 '영천장흥고' 발견과 관련해 지난 2월 문화재청에 매장문화재신고를 했다"면서 "빠르면 내년 초까지는 추가 행정적 절차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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