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오늘=김보근 기자] 존경하는 창원지방법원 가족 여러분.

2015년 2월 12일 이 자리에서 취임사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오늘 이렇게 이임사를 하게 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저는 배우자와 함께 창원에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자연환경과 도시미관이 빼어난 이 지역을 고향으로 둔 분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저나 집사람에게는 여전히 타향이었으므로 지내는 동안 어느 정도의 고독감은 피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2년 동안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일이 뭐냐고 물으시면 2015년 4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장장 18회에 걸쳐 지원 가족 및 시민들과 함께 한 낙남정맥 228 킬로미터 종주산행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낙동강을 조망하면서 출발한 신어산에서부터 법원 뒷산인 비음산, 정병산을 지나, 산죽터널의 신비로움과 이 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설산의 풍경을 아낌없이 보여준 지리산 구간에 이르기까지, 아기자기하고 장엄한 자연의 위대함을 만끽하면서 심신의 평온을 유지하고 활력을 보충할 수 있었던 뜻깊은 산행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종주대원들께 소중한 추억을 같이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법원에 들어온지도 어느새 28년이 되었는데 법원장 2년,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2년 경력을 제외하고는 24년 간 재판부서에만 근무하여, 지방법원 및 지원에서 판사로 8년, 부장판사로 6년 합계 14년, 고등법원에서 판사로 2년, 부장판사로 8년 합계 10년을 지냈습니다. 법원장으로 나오기 전 지원장이나 수석부장을 해 본 적이 없어 법원장 일이 만만하지 않았고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때처럼 불편하게 느껴진 적도 있습니다만, 여하튼 법원장으로 나오기 전에 장차 기관장으로 나가면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떠오른 생각이, ‘정규 업무 외에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방법은 없는가, 또 재판에서 사랑의 정신을 구현해 볼 수는 없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법원의 특성에 잘 들어맞는 봉사의 방식이 공중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법 교육, 대학 강연 등이라고 생각해서 이를 실천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제1회 판사, 시민과 함께 하다’ 라는 제목으로 일과 후에 공단, 시민회관 등으로 찾아가는 법 교육 프로그램을 연인원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1회에 걸쳐 진행하였고, 대학 등에서 ‘법원장과 나누는 따뜻한 법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법률 강의를 8회 하였으며, 경남 지역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주말 축제 형식의 ‘제1회 경남 청소년 법률왕 퀴즈대회’ 를 개최하여 케이블 TV에 방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봉사활동은 봉사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당연히 이롭지만 봉사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아도 자아실현의 욕구충족과 자기만족도 향상의 측면에서 매우 유익한 것이고, 따라서 그 종류와 내용에 관계 없이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재판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의를 선언하고 집행하는 것이지만, 정의라는 개념이 이해관계나 시대적 상황,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상대적으로 파악될 때가 있어 ‘정의’ 보다 더욱 보편적이고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랑’ 과 ‘평화’ 라는 개념을 떠올렸습니다. 재판의 과정에서도 ‘사랑’ 과 ‘평화’ 의 울타리 안에서 대화와 설득이 이루어지고 재판의 결과도 그 울타리를 한층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갖게 되었고, 그 것이 치유적 정의, 회복적 사법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사랑 법원, 따뜻한 법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4편의 공익 광고를 제작하여 1년간 공중파 TV에 방영하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2년 간 법원을 대표하여 각종 대내외 행사에 참석하며, 사무분담, 근무평정, 인사, 회계, 감사, 민원회신, 청사관리 등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하면서, 법원장이 하는 일은 법원 구성원들이 각자 맡은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법원 구성원들과 더 깊이 있는 만남을 가졌어야 했는데 제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저에 대한 법원가족 여러분들의 평가가 그다지 후하지 못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제 퍼스낼리티의 한계를 깨닫게 해 준 여러분들께 더욱 감사드리며, 제 허물로 인하여 불쾌감을 갖거나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는 너그러운 양해를 구할 뿐입니다.

정든 고장, 정든 법원을 뒤로 하고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지만 새로 오시는 훌륭한 법원장님과 더 활기차고 믿음직한 법원을 만들어 나가시리라 믿고 가벼운 마음으로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겠습니다. 인생은 추억만 남기고 가는 여행이라고 하는데 작별의 시간은 언제나 빨리 오고, 이제 그만 여러분과 나누었던 가슴 뭉클했던 추억을 뒤로 한 채 총총히 떠나야 하겠지요. 떠날 때는 말없이 가야 하는데 쓸데 없는 말이 길어져서 송구합니다. 부족한 저와 함께 해 준 여러분들로 인하여 무탈하게 법원장 생활을 마칠 수 있었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부디 다시 만날 때까지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2017. 2. 8. 창원지방법원장 이강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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