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오늘신문사] 

▲신을 닮았네-15. 너희가 이 땅에 내려온 이유.(일러스트=이하연)
▲신을 닮았네-15. 너희가 이 땅에 내려온 이유.(일러스트=이하연)

오랜만에 커피를 직접 내립니다.

사실 웬만한 일들은 직원들이 다하기에 제가 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 커피를 내리는 것도 신에게 드리기 위해 만드는 것입니다.

신께선 입맛이 무척 까다로우셔서 제가 만들어 드리지 않으면 도통 드시질 않습니다.

커피가 빵처럼 부풀어 오르며 방울방울 터집니다.

제가 만든 커피지만 참 훌륭한 맛입니다.

 

전 일곱 살 때부터 커피를 만들었습니다.

그보다 어릴 적 기억은 잘나진 않지만 가족들이 말하길 미각과 후각이 남달라서 고기 굽는 냄새만으로도 무슨 고기인지를 맞추었다고 합니다.

발달한 미각과 후각 덕분에 저희 집에 방문하는 엄마의 친구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는 건 언제나 제 몫이었습니다.

전 저만의 비법으로 맥심 커피 한 스푼, 초이스 커피 한 스푼 그리고 프림 세 스푼에 설탕 세 스푼을 넣어 커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비법을 알려달라고 하는 어른들의 장난스러운 성화에 잘난 체하며, 그 누구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았지요.

지금 생각해보니 커피의 맛보다는 고사리 손으로 커피를 만드는 모습이 어른들이 보기에 무척 귀여웠나봅니다.

 

저희 집은 지역에서도 소문난 굉장히 큰 부잣집이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은 지극히 풍요로웠고 행복하였습니다.

전 지금도 그 시절이 가장 그립습니다.

모든 것이 제 곁에 있었을 때가 말입니다.

그러나 행복한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저의 성장기는 매우 초라했고 아픔이었으며 슬픔이었습니다.

있는 자가 없는 자가 되었을 때, 주변으로부터 받는 따가운 눈총과 모멸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저는 높은 하늘에서 추락한 새였으며, 그렇다고 낮은 땅에 저의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과거로의 회기 본능 때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강한 열망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고통과 아픔들이 절 성장시키는 촉진제였던 것 같습니다.

 

전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신께서 저의 곁에 있으며!

어린 왕자와 장미 그리고 음악과 커피 속에 파묻혀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가 원하는 저의 모습이 완성되면 모든 걸 내려놓고 전 진실을 찾아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고 있느냐?”

 

아차!

저의 옆에 계신 걸 깜빡했습니다.

 

“그냥 예전 생각이 나서요”

 

“그래!”

“추억이란 체험의 일부이며 성장의 발판이기도 하지”

 

“하지만 많이 아픈 추억인데요?”

 

“네가 아프다고 생각하는 건, 그렇지 않았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란다”

“행복이 충만한 곳에선 그것이 행복인 줄 모르고, 불행이 가득한 곳 역시 그것이 불행인 줄 모르지”

“또한 선이 가득한 곳에서도 그것이 선인 줄 모르며, 악이 가득한 곳 역시 그것이 악인 줄 모른단다”

“그래서 이 땅에서 너희의 의식이 낮은 것에서부터, 높은 것까지 체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이것은 너희가 이 땅에 내려온 여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단다”

“진실을 개념으로 알고 있는 것과 경험으로 알고 있는 건 전혀 다른 것이거든!”

 

“그럼 이 모든 것을 다 체험하면 완벽해지는 건가요?”

 

“아니란다”

 

“네?”

“아니라고요!”

“그럼 그 뒤에도 뭔가 또 있는 건가요?”

 

신께서 절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십니다.

 

“물과 불 그리고 바람과 흙의 조화로움에서 태어난 너희는 이미 완벽하단다”

“너희는 나의 조각들이지 않니!”

“다만 너희가 이 땅에 내려온 가장 큰 이유는 너희의 완벽함을 스스로 체험을 통해 깨닫고 확인하기 위해서일 뿐이지”

 

▲이태완 작가
▲이태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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