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출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김성현 기자] 한명숙(73) 전 국무총리가 만기출소하면서 이른 바 '한만호 정치자금 사건'의 실체에 다시 관심이 모아진다. 한 전 총리가 여전히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고 여권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강한 만큼 재수사나 재심이 이뤄질 지도 관심거리다.

한명숙 전 총리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한만호 정치자금 사건'은 1,2,3심을 거치면서 담당 판사들 사이에서도 판단이 극명하게 갈렸다.

한명숙 전 총리는 이 사건으로 1심에서 무죄, 항소심에서 유죄, 대법원에서 8대 5로 상고기각 2심 확정 판단을 받았다.

1심과 2심의 판단이 정반대로 나온 것도 이례적이지만, 대법원에서도 8대 5라는 보기 드문 편갈림이 발생했다.

23일 한명숙 전 총리가 2년간의 형을 마치고 만기출소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한 전 총리 본인은 물론이고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 사건이 박근혜 전 대통령 치하에서 정치적으로 다뤄졌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8월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도 당시 대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두고 “검찰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법원에 직격탄을 날렸다. 문 대통령 성격 상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강한 발언이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22일 "기소도 잘못됐고 재판도 잘못됐다"며 "기소 독점주의 폐단으로 한명숙 전 총리가 사법 부정의 피해를 입었다. 사법 개혁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추미애 대표 모두 법조인 출신이다. 이런 발언이 사법부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물론 삼권분립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점을 모를 리 없다. 

이들이 이런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법원을 정면 공격한 것은 한명숙 전 총리 사례가 그만큼 논쟁거리를 남겼기 때문이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종친인 한만호(구속 중) 전 한신건영 대표로 부터 2007년 3월~9월 세차례에 걸쳐 3억원씩 총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애초 별건으로 구속된 한만호 전 대표가 검찰조사에서 스스로 진술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만호 전 대표가 한명숙 전 총리의 1심 재판에서 9억원을 한 전 총리에게 줬다는 검찰에서의 진술을 뒤집으면서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한 전 대표는 검찰에서는 조성자금 모두 한명숙 전 총리에게 직접 공여했다고 진술했다가, 1심 법정에서는 한명숙 전 총리의 동생에게 빌려주거나 공사 수주를 위한 로비자금 등으로 사용했다는 취지로 진술을 바꿨다. 

결국 재판은 한만호 전 대표의 검찰에서의 진술을 믿을 것이냐, 아니면 공판 과정에서의 진술을 믿을 것이냐의 문제로 집약됐다.

1심은 한만호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한명숙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무죄판결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했는데, 핵심 증인인 한만호 전 대표를 법정에 부르지 않고 직접 신문도 하지 않은 채 판결을 내려버렸다. 

한만호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을 의심할 여지가 없고 금융자료 등 관련 증거도 넉넉하다는 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대법관 13명 전원으로 구성되는 전원합의체에서 이 사건을 심리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등 대법관 8명이 상고기각에 손을 들어주면서 징역 2년, 추징금 8억8천만원의 2심 유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하지만 나머지 5명의 대법관들(이인복, 이상훈, 김용덕, 박보영, 김소영)은 다수의견에 찬동하지 않았다.

"어떤 수사를 동원하였든 다수의견은 법정 진술보다 검찰 진술에 우월한 증명력을 인정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어서 이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도처에 허점이 보이는 관련자들의 진술이나 신빙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장부를 끌어다 한만호 전 대표의 검찰진술을 통째로 믿는 바탕으로 삼은 원심(2심)의 판단이 옳다는 다수의견은 기록에 나타난 증거들을 깊이 분석하여 따져보지 않은데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소수의견에는 시민단체 성명서 같은 격한 표현까지 동원됐다.

5명 대법관들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라는 명제와 증거재판주의 원칙을 그저 헛된 구호에 그치게 해서는 안된다"며 "비록 진범이 처벌을 면하더라도 적어도 무고한 사람은 처벌받지 아니하도록 하는 것이 형사재판의 기본원칙이고 법원의 이유이기도 하다. 다수의견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고 증거재판주의에 정면으로 어긋난다"고 다수의견을 정면 공격했다.
  
한명숙 전 총리도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 직후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저는 무죄다. 비록 제 인신을 구속한다 해도 저의 양심과 진실마저 투옥할 수는 없다"며 "역사는 2015년 8월20일을 결백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한 날로 기록할 것"이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2년형을 마치고 23일 오전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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