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선인의 인사스타일 집중분석


[위클리오늘=나권일 기자] 동장군의 위세에 여의도 새누리당사도 얼어붙었다. 맹추위 탓도 있지만 새정부의 임명직 인사를 앞두고 당 주변에 함구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직간접으로 인사권을 행사하게 될 자리만 1만여 개에 이른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의 인사보안과 비밀주의로 인해 여의도 국회와 새누리당사 주변은 집권당의 실세들과 연줄을 만들려 북적대던 5년 전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인수위 출범을 계기로 본 ‘박근혜 인사스타일’을 분석했다.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새누리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황우여 대표 등과 함께 건배를 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친박계 인사들에게 논공행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진=뉴시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다. 인수위 인사를 보면 박근혜 정부 5년이 보인다. 박근혜 당선인의 인사스타일은 첫째, 박 당선인이 인사 후보자를 꼼꼼히 살피고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형으로 요약된다. 이번 인수위 구성이 과거보다 1주일 이상 지연된 것은 박근혜 당선인이 인수위원 후보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거쳤던 이유가 컸다. 과거 정부는 인수위원에 대해서는 특별한 검증 절차가 없었고,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 인사 때 집중 검증이 이뤄졌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이번 인수위원들에게 엄밀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댔다. 이 과정에서 유명 대학교수나 입각이 점쳐졌던 유력 국회의원이 낙마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당선인, 장관후보자 직접 검증

4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박 당선인은 3일 밤 9시 김용준 인수위원장의 자택에 직접 전화를 걸어 인수위원 후보로 두 명의 인사를 언급하며 김 위원장에게 알아볼 것을 지시했다. 박 위원장의 지시에 김 위원장은 “아침에 일찍 나가서 백방으로 알아볼게요. 내일 나가서 10시 이전에 연락드릴게요”라며 박 당선인에게 답했다고 한다. 박 당선인이 이처럼 인수위원 인사를 직접 챙긴 것은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인선의 실패가 반면교사가 된 것으로 보인다. 박 당선인은 새정부의 총리후보자와 국무위원 인선도 직접 챙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은 “새 정부의 조각은 인수위에서 하지 않는다. 박근혜 당선인이 직접 할 것”이라며 박 당선인이 직접 챙기고 있음을 강조했다. 새누리당의 친박계 인사도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수석들, 또 국무총리나 장관들 인사에서 결격사유가 나오면 국민들도 심각하게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에 박 당선인이 더 신중하게 인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같은 신중한 인사검증은 박 당선인이 직접 최적의 인물들을 찾아낸 뒤 이들에게 주요 업무와 하위 인사까지 과감하게 위임해 책임행정을 이루게 하려는 원려라는 분석도 있다. 인선 과정은 꼼꼼히 거치되 일단 임명 된 뒤에는 권한을 대폭 위임해 총리와 장관급 인사를 명실상부한 국정의 ‘책임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기대이다. 때문에 사문화돼 있는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을 이번 정부부터 실효성있게 바꿀 것이라는 기대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윤창중 인수위대변인의 사례에서 보듯 한번 임명한 뒤에는 여간해서는 인사를 철회하지 않는 박 당선인의 스타일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인사가 이무리 대통령 당선인의 ‘고유 권한’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인사권’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극도의 보안, 밀실인사 지적도

박 당선인의 두 번째 인사스타일은 철저한 보안유지와 비밀주의로 개념지을 수 있다. 친박계인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당선인은 비밀주의, 보안을 중시하는 인사스타일이다”고 확인했다. 극도의 보안은 ‘깜깜이 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선 직후 현재까지 박 당선인의 인사와 관련해 ‘특종’을 한 언론사는 전무하다. 인수위원장 유력이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내보낸 신문사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오보였다. 과거 정부는 당선인 측 실세정치인이 일부 언론에 정보를 주고 그 사람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간접적으로 평가한 뒤, 공식 인선을 하는 수순을 밟아왔다. 언론사에 단독기사가 될 정보를 나눠주면 그것을 보도한 언론사들은 자신들의 정보력을 과시했고, 실세정치인과 언론사의 유착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발표 때까지 철저히 보안을 강조해왔다. 때문에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인수위원장과 부위원장 이름이 담긴 봉투를 밀봉한 뒤 기자들 앞에서 공개해 ‘밀봉인사’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박 당선인의 이같은 스타일은 지난해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비대위원 인선이나 선대위 인사 때 선보였던 모습이기도 하다. 박 당선인의 이런 스타일 때문에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인사철에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인물은 오히려 중용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충청권 출신의 한 친박계 인사는 “당선인이 인선할 때 제일 싫어하는 게 언론플레이다. 지금 언론에 나오는 사람들은 오히려 불리하다. 박 당선인은 언론에서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해서 떠밀려 인선하는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지나친 비밀주의는 국정운영에 대한 타임스케줄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이번 인수위원회는 유례없이 해를 넘겨 구성됐고, 인수위원들의 면면도 출범 하루 전에야 발표됐다. 이런 거북이 걸음은 좋게 말해 신중한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듣기 십상이다. 

당 대표로서 혹은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해온 인사스타일을 국정운영자의 위치에서까지 유지해선 곤란하다는 의견도 당내에서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정당 인사는 청와대 인사에 비하면 구멍가게 수준이다. 정당에선 보좌진 몇명 가지고 철저한 보안 속에서 인사를 할 수 있었겠지만, 한 나라를 상대로 하는 인사는 비밀리에 진행할 수 없다. 때문에 인력 풀을 대폭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와 관련해 “인사에서는 보안만이 능사가 아니다. 임명권자가 모든 걸 다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서 세간의 여러 여론이라든가 이런 걸 수용하고 보완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밀실인사’라는 비판을 피하려면 중요한 인사 때는 언론과 국회 등 여론이 개입될 여지를 만들어 필터링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논공행상 없애자 친박계 실망 역력

세 번째, 전문성을 우선으로 하고 ‘논공행상’이 사라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지난 3일 박 당선인 측과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당선인은 최근 구두로 친박계 인사들에게 인수위 인선은 물론 향후 있을 청와대·내각 인선과 관련해 “인사 천거도 하지 말고, 인사 부탁도 하지 말라”며 함구령을 내렸다고 한다. 최근 선대위에 참여한 핵심인사들에게 인사 관련 민원이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자 박 당선인이 불필요한 기대와 잡음을 차단하기 위해 이런 지시를 내렸다는 전언이다. 이같은 박 당선인의 당부는 대선 당시 선대위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사들에게 줄줄이 전달됐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온 친박진영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 친박계 의원은 “대선이 끝난 뒤 친박의원들이 집단으로 모여서 밥 한끼 먹은 적이 없다. 인수위원과 국무위원 인선을 하는 민감한 시기인만큼 친박의원들이 모여 있기라도 하는 모습이 언론에 비춰지면 당선인의 눈밖에 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최근 MB정부 청와대 인사들의 공기업 감사 임명 등에 대해 ‘낙하산 인사’라고 정면으로 비판한 바 있다. 현재의 김용준 인수위원장이나 박선규 대변인,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등은 박 당선인과 이렇다 할 인연이 없었던 인사들이다. 이를 보면 논공행상보다 전문성을 고려한 인사에 대한 당선인의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가는 국가 나름대로 국민을 위주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선거에 관한 논공행상은 당에서 책임지고, 당에서 배려하고, 당에서 예우를 통해 해소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선거에 대한 논공행상은 정부가 아닌 당에서 하겠다고 못박은 것이다. 하지만 일부 친박계 인사들은 아직도 “국무위원은 몰라도 청와대는 당선인의 뜻을 잘 아는 사람으로 채울 것”이라며 은근히 기대를 나타내기도 한다.

‘인수위원들 청와대행’ 오랜 관행 사라질 듯

네 번째는 이번 인사를 통해 인수위원들이 행정부나 청와대로 옮겨가는 관행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박 당선인은 1일자로 인수위로 파견 발령이 난 당직자 28명에게 청와대 인사 발령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점을 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인수위에 포함된 인사 중 청와대로 직행하는 사례는 정책실무를 담당하는 일부 인사들로 한정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28명의 당직자 중 30%만이 청와대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인수위원으로 참여하는 외부 실무위원중에도 국무위원으로 발탁되는 경우는 몇몇 사람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용준 인사위원장도 지난달 31일 “인수위원, 전문위원 등은 임무가 끝나면 원래 상태로 복귀하는 게 원칙이다. 차기 정부로 옮겨가는 것을 전제로 임명되는 게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에도 김 위원장 발언이 개인적인 생각이라기보다는 박 당선인 의중이 들어간 것이라는 분석들이 나왔다.

이번 인수위는 여러모로 전임 정부의 인수위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2007년 이명박 당선인 때는 12월26일에, 2002년 노무현 당선인 때는 12월30일에, 1997년 김대중 당선인 때는 12월27일에 인수위가 발족됐다. 그에 비하면 이번 인수위는 인수위원 인선에 시간이 걸리면서 전임 정부보다 출범이 1주일~10일 늦어졌다. 인수위가 차기 정부 요직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관례도 깨졌다. 역대 정부에서 인수위 출신 상당수는 정부와 청와대 요직으로 직행했지만 이번 인수위원은 상당수가 임무가 끝나면 원래 상태로 복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를 두고 100여명 안팎의 ‘실무형’ 인수위로 요란하지 않게 정권을 인수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긍정론이 ‘거북이 행보’라는 부정론보다는 우세하다.

진정한 탕평은 지역 아닌 능력 고려

박근혜 당선인의 이같은 인사스타일과 관련, 정가에서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변화와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능력있는 사람에게는 자리를 주고,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상을 주는 것’이 고금을 통틀어 인사의 원칙이라는 점에서 방향은 잘 잡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인사 문제에 있어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만기친람형 스타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기보다 해당 직책의 인물에게 맡기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박 당선인이 총리후보와 국무위원 인사에서 앞으로 보여줄 인사의 모습은 스스로 약속한 ‘대탕평인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정한 탕평인사는 “지역이 아니라 능력을 고려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호남인사는 무조건 영남인사보다 많아야 한다는 식의 기계적 균형을 뛰어넘어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두루 채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도 있어야 하지만 박 당선인과 비전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 실제 필요한 능력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청와대와 행정부가 엇박자를 내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위클리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