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같은 특수 분장…한국 특수미술 세계화 선도

▲ 신재호 메이지 대표. 사진ⓒ위클리오늘

[위클리오늘=로즈박 칼럼니스트] “속이는 게 재미있어서….” 노란색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환하게 웃는 모습이 모험을 즐기는 소년처럼 보인다.

갓 태어난 태아와 목이 잘린 무사의 머리, 살아 움직일 듯 노려보는 거대한 괴물. 온갖 형상들이 모여 있는 특수미술 전문업체 메이지의 신재호 대표를 만났다.

특수미술이란 어떤 분야인가.
=특수미술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건 영화 속에서 배우를 작품 속의 인물로 완벽하게 분장해 주는 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단지 얼굴 분장뿐만 아니라 배우가 입는 보통 의상과 구분해 신체의 모든 부위까지 분장의 분야로 들어간다. 문신과 상처 총상, 신체의 훼손 등. 게다가 초현실적인 캐릭터까지. 그래서 이 분야는 또 하나의 예술이다.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고 진짜가 오히려 가짜처럼 보이게 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더미라고 부르는 시체 작업을 할 땐 실제 시체 모습이 아니라 관객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에 맞춰 작업을 한다. 그래서 관객들이 영화 속의 허구를 현실로 믿게 하는 것이다. 영화 속의 특수미술은 늘 감쪽같이 관객을 속이는 작업이고 잘 속여야 캐릭터가 살아난다.

언제부터 특수미술을 했나.
=어렸을 때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화지 한 장을 다 칠하기가 힘들었다. 고교 시절 형이 그리던 갈매기의 꿈이란 그림에 매료돼 따라 그렸는데 눈썰미가 있었는지 꽤 멋진 작품이 됐다. 부모님께 장차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씀 드렸다가 호되게 혼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 영화의 매력에 빠져들어 중고 비디오기기를 샀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에서 본 특수한 장면들을 직접 만들고 싶었다. 수없이 많은 영화를 보던 중 ‘토탈리콜’에서 분장자체가 전체 극의 흐름을 끌고 가는 것을 보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히 깨달았다.

1988년 분장계의 대부로 알려진 KBS 방송국의 전예출 분장실장을 찾아갔다. 당시에는 특수미술과 분장이라는 분야가 없었기에 분장에 관련된 외국서적을 보며 독학을 해야 했다. 화교 골목을 샅샅이 뒤지며 책을 구해 읽었다. 달리 방법이 없어 책에서 나온 것을 하나씩 따라하며 터득해 나갔다. 1990년 아동영화의 대부 김청기 감독을 만나 ‘우뢰매’를 찍을 때 국내 처음 매카닉 장치를 도입해 수없이 새로운 괴물을 만들었다. 재료를 구하기 위해 3일씩 서울과 경기 주변 일대를 돌아다녔다. 그 무렵 15일간의 현장 견학을 프랑스로 가게 됐고 비행기에서 첫 눈에 반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시련도 찾아오지 않았나.
=흥행가도를 달리던 김청기 필름이 부도가 났다. 결혼식을 목전에 두고 있던 터라 막막했다. 어렵사리 결혼식을 하고 장인의 사무실 한쪽에 작은 작업실을 마련했지만 재료의 냄새 때문에, 지인의 한옥 뒷방과 벽 사이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간이 작업실을 마련했다. 비가 오면 작업장 가운데 있던 나무를 타고 물이 흘러 들어왔다. 거의 바깥과 다름없는 이 공간은 한없이 쓸쓸했다. 이런 환경에서 탈출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세 시간을 자며 영화와 CF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한 적도 있다. 수 없는 시행착오를 하는 동안 어느 작품은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가 없어 일을 그만 두고 싶었던 갈등에 빠졌을 무렵 영화 ‘텔미썸씽’을 만났다. 그때 주 계약사인 일본 회사가 제작한 결과물보다 그가 제작한 배우 한석규의 머리가 훨씬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잘 만드는 것도 중요했지만 감독의 요구를 정확히 이해하고 영화의 핵심을 표현하는데 주력했다. ‘무사’, ‘태극기 휘날리며’, ‘혈의 누’, 중국영화 ‘적벽대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화들이 특수분장을 통해 매 순간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일에 대한 열정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나.
=많은 영화작업들이 CG 와 3D를 통해 진행되면서 영화 속의 특수분장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영화 속 특수분장뿐 아니라 또 다른 분야를 만들어 나가며 디지털 특수분장 특수미술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디지털 특수분장이란 모든 특수분장의 프로세스를 디지털화하는 것으로 인물에 대한 스캔부터 가능하며, 몇몇 공정을 빼고 모두 디지털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는 할리우드에서도 아직 진행 되지 않는 것을 메이지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이 기술을 영상만이 아니라 현실 속에도 접목 시키고 싶어 살아 움직이는듯한 공룡을 제작했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감성을 지닌 공룡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형태를 이루는 조형뿐 아니라 전자공학, 물리학, 미술, 법리학, 기계에 대한 메커니즘까지 모든 분야의 지식을 습득해야 하며 타고난 감각과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 과학과 예술, 그리고 환상을 현실로 끌어내는 마법 같은 기술까지. 그래서 회사명이 마법을 상징하는 ‘메이지(mage)’이다.

앞으로 영화 속의 인물과 장면들을 현실로 가져와 관객들과 공유하는 공연으로 대규모의 공룡들이 직접 싸우고 공연을 하는 공룡 테마파크를 계획하고 있다. 우리 전설 속의 용과 해태 등 신화 속의 동물뿐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까지 살아 움직이며 교감할 수 있게, 그래서 늘 새로움에 새로움을 덧대어 찾아간다.

그는 언제나 상상 속에 있다. 생각 한 것들을 만들고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낸다. 자신이 왜, 이 일을 하는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에 오늘도 유쾌한 속임수를 찾아 세상을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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