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리듯 해석한 소설 ‘무녀도’…“문화의 전위 돼 앞에서 뛸 것”

 
[위클리오늘=로즈박 칼럼니스트] 한국 문학의 거목 김동리의 원작인 ‘무녀도’의 뮤지컬 공연을 준비 중인 경주시립예술극단 엄기백 예술감독을 국립중앙박물관 용 극장에서 만났다.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배우들에게 반은 목이 잠긴 듯 한 음성으로, 연기 지시를 하는 엄 감독의 흔들림 없는 눈빛은 과녁에 꽂힌 화살과도 같이 날카로워 보였다. 김동리 선생의 소설 무녀도는 액자 속의 액자로 알려질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다.

어떻게 구성하고 연출했는가.
어려운 건 맞다. 그래도 어려운 얘기를 어렵게 풀어서는 안 된다. 원작 그대로 액자 속에 집어넣어 맨 앞과 끝의 내용을 연결해 만들고 종교 갈등을 간결하게 풀었다. 극 중 모화와 욱이의 갈등을 종교 간의 대립이 아닌 문화의 충돌로 표현해 어느 쪽의 승리도 아닌 사라지고 새로 들어오는 것에 대한 충돌로 해석했다. 또한 어린 학생들이 봐야 하기에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는 낭이와 욱이의 근친상간을 암시하는 장면은 아예 빼 버렸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악극이 되기에 의상과 무대를 세심하게 연출하고, 특히 음악을 세련되게 표현했다. 아울러 모화의 역할을 극대화시켜 최하층에 있는 주막의 주모 보다 더 낮게 천대받는 무녀인 모화가 굿을 할 때만은 가장 행복하게 보이게 했다. 그러기에 함께 술을 마시던 화랭이(악사)의 겁탈을 물리친 모화가 집에 들어와선, 수국 신의 화신이라 믿는 딸 낭이 앞에서는 고통을 감추고 웃는다. 그런 극 구성을 통해 원작에는 없지만 있을법한 이야기로 모화의 희로애락을 그려냈다. 물론 원작은 최대한 비껴가지 않으려 했다.

 
무녀도를 뮤지컬로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나.
무녀도는 고교 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로 한국문학의 대표성을 갖고 있으며 김동리 선생이 세 번에 걸쳐 원작을 수정할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소설이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아 많은 사랑을 받고 널리 알려졌다. 아직은 국내에서 뮤지컬로 만들지 않았던 것을 김동리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경주시와 문화예술재단이 야심차게 준비해 초연으로 올린 공연이다. 9월 경주예술의 전당 6회 공연의 모든 자리가 매진될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엄 감독은 2011년 경주예술의 전당 관장으로 첫발을 디디던 날부터 ‘무녀도’의 연출을 준비해 왔다. 경주 안에는 김동리와 박목월이 있고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을 쉬고 있다. 경주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내게는 경주를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이 있다. 1979년 방송연출을 하던 선배가 한편의 시나리오 주었고 그게 무녀도였다.

이후 KBS에서 TV문학관, 형사 25시 등, 장르를 넘나들며 수많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등을 연출 하는 동안 틈틈이 무녀도를 구상했다. 그렇게 무녀도는 내겐 운명을 넘어선 숙원이었고 이번 공연에 전념하기 위해 모든 직위를 사임했다. 문화의 진정성을 갈망하는 경주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모든 것에 경주의 색을 입혔다. 지방색이 묻어나는 사투리와 출연진에 이르기까지 경주의 힘으로 똘똘 뭉쳤다. 그 결과물로 지방이라는 문화의 한계를 벗어나 40대1이라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국립중앙 박물관 용 극장의 공모전에 선정되어 서울공연을 올리게 됐다.

그렇게 만든 뮤지컬 무녀도를 해외에서 공연할 계획이 있나.
그러기 위해서는 다져지고 다시 또 다져져야 한다. 뮤지컬의 본고장은 미국과 영국이 아닌가, 그들에게 꽹과리만 두드리는 한국적인 소재만으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 무녀도는 아직 낯설지만, 문학성과 충분한 이야기, 역사성을 갖추었기에 그들의 문화와 잘 섞여 들 수 있다. 물론 시간이 필요하다.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맘마미아도 완성되는 기간이 수십 년이 걸렸다. 그러나 무녀도의 내용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정서에는 잘 맞아, 해외공연의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철저한 준비를 하면서 향후의 방향성을 가늠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또 다른 무녀도 동리와 같은 공연을 계획하고 있는가.
차기작으로 박목월시인의 시를 오페라로 구상하고 있다. 아마 무녀도동리처럼 전 과정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이다. 예산을 받아야 하고 다시 미쳤다, 뻔뻔하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큰 눈을 뜨고 멀리 바라보는 예술감독이 되고 싶다. 십 년 후에도 문화의 전위가 되어 맨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맞으며 뛰고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쳤을 때 밖은 저녁 어스름이 낮게 내리고 있었다. 문화와 그것을 이루어내 세상과 공유하려는 강한 열망은, 그에게 어떤 역경에도 맞설 수 있는 원천으로 나아가는 강렬한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수정=2013/10/14 11:15:20)

 

저작권자 © 위클리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