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4대강 사업 등 감사원 감사 의결 파장

▲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후 검찰에 고발당하는 등 수난을 겪게 될 전망이다. <사진- 뉴시스>

[위클리오늘=나권일기자] 박근혜대통령이 취임한 다음날인 지난달 26일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권력교체’를 실감하기에 충분한 두 가지 중요한 표결이 이뤄졌다.

우선 이명박 정부가 치적으로 내세운 4대강 사업이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다시 감사원의 감사를 받게 됐다. 또 전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한식 세계화 지원 사업’에 대한 감사요구안도 이날 통과됐다.

MB정권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이같은 발빠른 선긋기 작업에 대해 정치권은 사실상 ‘MB 사법처리’에 대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50%를 돌파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MB사법 처리를 내우외환의 탈출구이자 희생양으로 삼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MB “퇴임 후 사람 사는 맛”

장면 하나. 5년의 임기를 마치고 평범한 서울시민으로 돌아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퇴임 후 일상생활을 처음 공개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삿짐 상자에서 꺼낸 책을 한권 한권 펼치며 책장에 꽂다보니 책속에 담긴 추억이 새삼스럽네요”라고 짐 정리 소식을 전했다. 그러고는 “서재 정리로 한나절을 후딱 보내고 아내와 함께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시장기를 달랬습니다. 후루룩 한 젓가락 입안 가득 넣어 먹다보니 ‘이게 사람 사는 맛이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 함께 쳐다보며 웃었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전 대통령의 보좌를 맡은 임재현 비서관은 “이 전 대통령이 비서진과 함께 직접 짐을 정리하는 등 일상의 삶에 적응하고 있다. 김윤옥 여사와 먹은 자장면과 탕수육도 동네 중국 음식점에서 시킨 것”이라고 전했다.

친이(親李)계인 조해진 의원은 주호영· 정병국 의원 등과 이 전 대통령의 논현동 사저를 방문한 뒤 “손님들에게 음식 시중을 드는 세 따님과 외아드님도 행복해 보였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안기는 손주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고 전했다. 그는 “두 분의 앞으로 삶이 지난 5년 못지 않게 기대가 된다. 대통령님, 영부인님, 참 수고 많으셨다.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적었다.

국회, 4대강 입찰담합 조사요구

퇴임 직후 사저로 돌아온 전직 대통령 부부는 홀가분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부부의 이런 ‘호사’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 전 대통령 부부가 일상의 평화를 만끽하던 2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해 4대강사업 국정감사 때 증인출석을 하지 않은 정수현 현대건설 대표이사와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두 사람은 4대강사업의 각종 공사와 관련해 담합 의혹을 받아왔다. 증인으로 불출석한 대형 건설사 사장들을 검찰에 고발키로 여야가 합의한 것은 MB정부가 최대 치적으로 자랑하는 4대강사업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여야 공조(共助)가 본격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루 전인 26일에는 ‘4대강 수질 개선을 위한 총인(總燐)처리시설(하천이나 호수의 부영양화를 초래해 녹조류 발생의 원인이 되는 인(燐) 성분을 약품 처리해 일정 농도 이하로 만들어 방류하는 시설) 입찰 관련 감사요구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 법안은 4대강 수질 개선을 위해 추진된 총인처리시설 설치사업과 관련한 입찰 과정에서 사전 담합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한 감사요구안이다. 감사원이 이미 두 차례 발표한 4대강 사업 감사는 수질과 보 구조물 안전성, 공사 담합 등 전반적인 사항을 감사한 것이고, 이번 감사는 4대강 수질개선을 위해 2010년부터 추진해 온 총인처리시설 설치사업을 둘러싼 낙찰 비리다. 이날 통과된 감사 요구안의 내용은 꽤 구체적이다.

“평균낙찰률 97.5%는 담합”

요약하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총 3400억원의 국비를 지원해 4대강 사업 34개 권역에 182개의 총인처리시설이 설치됐다. 총인처리시설 설치업체 선정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체적으로 선정하거나 환경부 산하기관인 한국환경공단에 위탁해 선정하는데, 조사결과 턴키 방식으로 발주한 36개의 사업의 평균 낙찰률이 97.5%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요청을 주도한 신계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평균 낙찰률 97.5%는 업체들이 사전 담합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비율이다”고 말했다. 통상 80%대의 낙찰률을 보이는 기타공사 등의 입찰방식보다 10%이상의 낙찰률 차이가 발생하고, 입찰에 참여한 업체 간의 입찰가가 거의 같아 사전에 예정금액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 총인처리시설 발주업체인 (주)코오롱워터앤에너지의 낙찰률은 98.9%, (주)효성에바라엔지니어링의 낙찰률은 99.7%, (주)태영건설의 낙찰률은 99.9%, (주)한솔이엠이의 낙찰률이 99.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구안에 따르면 총인처리시설 입찰과정에서 환경신기술 가산점이 적용된 과정도 일관성이나 기준이 없었다고 한다. 여야는 이에 따라 “50명에 불과한 턴키 심사위원들이 수시로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들의 환경 신기술 가산점을 다르게 평가하고 적용업체가 뒤바뀐다는 것은 담합에 의한 환경 신기술 고의 누락 등 조작 의혹이 있다”며 감사원의 집중 감사를 요구했다.

총인처리시설 위탁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환경공단은 2011년부터 2년간 발주한 1조원 규모의 턴키공사 업체 선정과정에서도 34차례에 걸쳐 5억여원의 뇌물에 연루된 사실이 검찰에 적발된 바 있다. 때문에 감사원이 조사를 통해 입찰 과정에서 사전 담합이 있었다는 의혹을 사실로 밝혀낸다면 4대강 사업 전반에 대한 수사로 이어지고 이 전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이 심판대에 서게 될 가능성도 커진다.

 환경부장관 “4대강 중간평가”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이명박 후보와의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4대강사업의 전신인 ‘한반도대운하 사업’에 강력 반대하는 등 4대강사업에 대해 여러 차례 부정적 의견을 낸 바 있다. 이같은 사정과 최근의 정국 흐름을 감안하면 22조원의 거액을 투입한 4대강 사업은 이 전 대통령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와 MB정부의 ‘정치적 무덤’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같은 관측은 4대강 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의 ‘복심’을 엿볼 수 있는 환경부장관 인사청문회에 발언으로도 뒷받침된다. 윤성규 환경부장관 후보자는 지난달 27일 “감사원이 잘 지적했다. 낙동강 같은 곳은 인 농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앞으로도 조건이 되면 녹조가 발생할 소지가 높다”라며 4대강 사업을 ‘총체적 부실’로 규정한 감사원 감사를 높이 평가했다. 윤 후보자는 이에 앞서 민주당 장하나 의원실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 자료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전국적으로 일시에 시행함으로써 환경 파괴 논란과 함께 졸속 시행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환경부가 나서서 4대강 사업에 대해 ‘중간 평가’를 할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친박계의 한 인사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중간평가 결과 전문가들이 보 해체 필요성을 제기하고 여론이 그 방향으로 모아지면 박 대통령이 보 해체 작업을 지시할 것”으로 내다봤다. 윤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한 민주당의 한 의원도 “박대통령이 최소한 MB의 4대강 사업만은 확실하게 파헤칠 생각인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신구정권 권력투쟁 시작?

새누리당 내 친이계 의원들도 ‘MB 죽이기’를 본능적으로 눈치 채고 조직적인 반발에 들어간 양상이다. 특히 친이 직계 의원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하자마자 4대강사업을 통과시키고 윤성규 환경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MB 5년을 비판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자 최근 박대통령의 불통리더십과 인사실패를 거론하며 반발하고 있다.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정의화 의원을 비롯해 김용태, 정병국 의원 등 친이계 의원들은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에 대한 자진사퇴를 줄지어 요구한 상태다. 이는 새누리당내에서 인사권자인 박대통령에 대한 조직적인 ‘항명’으로 읽혀지는 모양새다.

급기야 이들의 반발을 참지 못한 친박계 유기준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28일 “새 정부 출범부터 새누리당 일부에서 야당과 비슷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며 친이계를 공개 비판했다. 이에 대해 당내 비주류를 대표하는 친이계 심재철 최고위원도 “무슨 고구마 줄기도 아니고 자고 나면 문제 사항들이 하나씩 줄지어 터져 나오고 있다. 더이상 새정부에 부담 주지 말고 하루 빨리 자진사퇴하기 바란다”고 응수해 당내 신구권력의 충돌로 번졌다. 박 대통령과 이한구 원내대표가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 강행을 시사한 상황에서 김 후보자의 처신과 관련한 이같은 발언은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집단적 반발로 풀이되고 있다.

참여연대, MB고발

어찌됐든 퇴임 후 면책특권과 불체포 특권이 사라진 이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 말고도 법정에 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내곡동 사저 구입과 관련된 불법행위로 이 전 대통령을 5일 형사고발했다. 퇴임 이후를 대비해 신축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논현동 사저는 붉은 벽돌로 올려졌는데, 담높이만 3m가 넘는 난공불락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가에서는 불을 보듯 예상되는 박근혜정부의 ‘MB정권 죽이기’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이 사저에 칩거한 채 좌시(坐視)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재임기간 중 페이스북을 하지 않았던 이 전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퇴임 직후부터 자신의 동정을 전하기 시작한 것만 봐도 그렇다. 때문에 앞으로 이 전 대통령이 4대가 사업과 공기업 낙하산 문제 등 정국의 현안에 대한 입장도 속속 밝히면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고 저항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하지만 권력의 속성상 살아있는 권력을 당할 구(舊) 권력은 없다는 점에서 승패는 이미 정해졌다는 것이 정가의 관측이다. 한국 정치사의 전례가 그렇다. 김영삼 대통령은 군정종식을 내걸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임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다. 노무현 대통령도 대북특검을 단행해 김대중 대통령의 ‘입’이자 ‘소통령’으로 불리던 박지원씨를 사법처리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을 검찰 소환했고, 이는 결국 초유의 노 전 대통령 자살로 이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퇴임 후만 좋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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